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틈과경계 Oct 03. 2024

며느리 자살 사건

어린 여성의 죽음과 진실


   “농가의 부녀는 농사일하고 식사를 마련하느라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쁜데,

    또 스스로 옷까지 짜서 입어야 하니 그 옷 짜는 것이 막히고 잘 나가지 못한다”       


  유수원의 <迂書> ‘論閑民’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병자일기>에도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돌샘골 올벼논을 매러 수야하고 용수 아내와 계집 안 종 넷이 갔다”

   “돌샘골 올벼논을 두 번째 매러 집의 종 아홉과 정수 부처까지 열하나가 갔다”

   “거리실 논을 수야가 마저 매러 갔다”     


  여성은 김매기 같은 농사일을 기본으로 하면서 매끼 방아를 찧어 식사를 준비하고 밤에는 길쌈과 바느질로 옷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지루하고 긴 노동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노래 덕분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불규칙하고도 고된 노동을 하면서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부른 노래가 여성민요라 칭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평민 여성이 직면한 가혹한 현실을 말해주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18세기말 즈음 경상도 거창 적대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시집간 지 석 달도 안 되어 목을 맨 평민 여성에 관한 기록입니다. 사건과 관련된 검시 결과 보고서에는 어린 신부가 시부모와 남편의 무관심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지내다 시어머니가 손찌검을 하자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맨 사건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역은 경상도 거창의 적대 지역인데 담당관은 거창 현령이었다. 관련자의 신문 부분은 모두 8건으로 그 가운데 검시결과 보고서를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다. 검시 결과 보고서(신해 6월 초 2일)

   “모든 사람들이 초사 하였다. 동 시신은 그곳에 그대로 두고 회로 5곳을 봉하고 답인하고는 이에 주위를 봉표하여 이정 등에게 인계하라고 수직토록 했고 본현 운자호의 시장에 3건을 작성해서 1건은 현에 올리고 1건은 시친(고발인)에게 주고 1건은 첨부하여 감영에 올려 보냈다. 이 옥사는 고부간의 다툼에서 비롯되어 인명이 치사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그 시친으로서는 반드시 이 부검을 한 연후에 옥사를 행하고자 한 것인즉 목매달아 죽은 것이라도 그 목맨 흔적과 더불어 명확하지 않을 수 없다...(중략)... 소위 김조이는 마을에서 무식한 여인으로 그 며느리를 박대하여 참을 수 없게 했으며 종종 실로 절통한 바 있어 며느리를 본 지 3개월도 되기 전에 매사를 책망하고 꾸짖으니 이는 인정상으로는 할 수 없는 바이고 27일에 서로 다툴 때에도 그 며느리의 순종여부는 알 수 없으나 순종했든지 어떠했든지 간에 꾸짖고 독려함이 부족하여 분을 못 이겨 구타하여 그 며느리가 나가서 통곡하게 한 요망하고 나쁜 정상은 불문가지이다. 한 차례 뺨을 때렸다고 했는데 간증한 두 여자의 초사에는 두 차례 뺨을 때리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고 하니 그 며느리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맨 연유가 이와 같으니 그 죄상을 가히 알 수 있다. 그 며느리 대악지도 상놈들이 말하는 이른바 예부(경제적인 사정으로 시집갈 나이가 되지 않아 시집간 여자)로서 이미 부부의 즐거움이 없었다고 하며 고부간에도 서로 즐거움을 얻지 못하여 종종 비정하게 꾸짖고 책망한즉 그 말로써 조아린 상황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27일 서로 다툴 때 그 시어미가 뺨을 때리고 꾸짖은 것은 극히 요악하며 비록 상인이나 천인이라도 엄연히 고부간에는 구분이 있는 것인 즉 뺨을 맞고 밖에 나가서 우는 것은 가히 맹랑함이 극에 달한 것이며 끝내 그 분을 참지 못하고 나가서 목을 매고 죽은 것은 그 성품이 흉악하고 맹랑하여 죽음도 족히 애석할 것이 없으니 만약 죽은 자의 죄악을 논할 것 같으면 산자보다 더할 것이며, 피고는 그 시어미가 두 차례 뺨을 때린 것이 비록 반드시 그를 죽이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데도 그 며느리가 이로 인해 스스로 목을 매니 만일 치사의 근원을 논해서 우리의 율로서 시행한다면 그 시어머니가 어찌 책임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하략).”

   이 문서에서는 자살한 며느리와 손찌검한 시어머니의 죄상을 고하면서 그 궁극적인 책임은 집안의 가장에 있다고 판결 내리고 있다.      

      안승준,「평민 생활」, 한국고문서 학회편,『조선시대  생활사』, 역사비평사, 2002, 281-314면.     

  


 어린 신부가 시집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례는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향랑’ 노래에서도 발견됩니다. ‘며느리 자살 사건’ 혹은 ‘며느리 가출 사건’은 이후로도 상당 기간 계속되었습니다. 천혜숙 선생님은 고된 시집살이 때문에 더러는 도망의 충동을 느끼고, 유혹도 받고, 실제로 첫아이를 몰래 유산시키고 여러 차례 가출을 시도하다가 나중에는 남편과 함께 분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 사례, 도망하려고 말을 꺼냈다가 남편의 위협이 무서워 거두어들이거나, 시집 문을 나서다가 아이 때문에 주저앉거나 친정까지 갔어도 받아주지 않아서 결국은 되돌아오고 만 최근 사례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성민요의 대표적인 노래 시집살이 노래는 ‘며느리의 자살’이라든가 ‘가출’을 내용으로 담은 노랫말을 잘 보여줍니다. 시집살이를 참을 수 없어서 집을 뛰쳐나와서 중이 된 이야기, 시집식구의 모함으로 자살을 한 며느리 등의 사연이 노래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이런 사연과 노래를 천천히 소개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 16화 생활문학으로서의 여성민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