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거울이다(1편) : <스미스씨, 워싱턴 가다>(1939)
한 시골 청년이 우연히 의원이 된다. 사실 그가 의원이 될 수 있었던 건, 일부 언론 재벌과 정치인들 덕분이다. 그들은 그가 그저 거수기 노릇이나 할 촌뜨기라 생각하고 의원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의 행보는 정반대다. 그 청년은 중앙정치 무대에서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타락한 언론 및 정치인들을 상대로 싸운다. 혼자서 외롭게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자 그들과 치열하게 싸운다.
위 내용은, 82년 전 프랭크 캐프라 감독이 만든 <스미스 씨 워싱턴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 1939년)의 스토리지만, 시대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 덕분에, 지금 봐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은 정치 코미디 영화다. 최근에 나는 영화과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고 단평을 올리라는 과제를 낸 적이 있었는데, 흥미로운 답변들이 올라왔다. 많은 학생들이 옛날 흑백영화는 재미없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 잘 안 보다가, 과제라서 마지못해 그 영화를 봤는데, 너무 좋았다고 썼다. 요즘 영화보다 훨씬 재밌고 세련되었다고 말한 학생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80여 년 전 미국 영화의 주제나 내용이 지금의 우리 정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놀라웠다는 단평들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스미스 씨 워싱턴 가다>는 미국의 한 소도시에서 ‘보이 레인저스’(일종의 보이스카웃)의 대장으로 활동하던 순수한 청년 제퍼슨 스미스가 우연히 상원의원이 되어 타락한 언론과 정치인들이 들끓는 의회의 모순과 부패를 폭로해 미국의 독립정신과 자유의 가치를 드높인다는 내용이다.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정치와 언론 권력 풍자 영화 : 스미스 씨 워싱턴 가다
최근에 나는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판의 다양한 공방전, 비난전, 폭로전, 그리고 부도덕한 재벌과 언론의 가짜 뉴스 문제 등을 보면서, 이 영화가 생각 나 다시 보게 되었다. 역시 걸작은 국가와 시대를 초월해 공감을 주는 영화라는 걸 실감했다. 최근에 계층 간의 갈등을 다룬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전 세계적으로 큰 평가를 받게 된 원리와 비슷하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시공간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주제와 세련된 미학, 그리고 유머가 존재한다.
이 영화를 얘기하기 전에, 프랭크 캐프라(Frank Capra, 1897-1991)를 먼저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캐프라는 이탈리아 이민 1세대로, 그야말로 아메리칸드림의 전형이다. 그는 1930~1940년대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사람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3회나 수상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영화들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2006년, 미국영화협회(AFI)가 선정한 ‘영감을 주는 영화 100편’에 그의 영화가 4편이나 올라가 있을 정도다. 그중 <멋진 인생>(1946)이 1위이고, 오늘 얘기할 <스미스 씨 워싱턴 가다>는 5위에 기록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멋진 인생>을 더 좋아하지만, 그 영화 얘기는 나중에 따로 다루고자 한다. 그의 대부분 영화는 다루는 소재나 주제만 보면 다소 무겁게 느껴지지만, 막상 보면, 지금 세대들조차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캐릭터나 스토리에 유머가 가득 차 있고, 확실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매우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 덕분이다. 그의 영화는, 봉준호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항상 코미디 장르가 부수적으로 활용된다.
나는 예전에 처음 정치판에 등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5.18 청문회에서 펼친 거침없는 활약과 그 후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스미스 씨 워싱턴 가다> 영화의 주인공 스미스가 겹쳐서 떠올랐던 적이 있다. 노무현처럼 스미스는 순수한 이상주의자다. 영화에서 기존의 타락한 정치세력들과 타협 않고 싸워나가는 스미스의 이야기는 의회의 극한 대립에서 극적인 승리로 마무리되지만, 그 이후 상원의원 스미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종종 궁금해지곤 했다. 그렇다고 속편을 기대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스미스는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좌파인가?
영화는 일종의 거울이다. 인간과 역사 및 사회의 한 단면을 2시간 전후 정도로 축약된 영상 속에 투영해 보여준다. 거기에 비친 모습은 결국 나, 우리, 또는 사회나 역사이다. <스미스 씨 워싱턴 가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제퍼슨 스미스를 통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현대 미국이나, 한국 등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여전히 유효하다. 스미스는 민주주의, 정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 의회 정치인들의 추한 민낯을 거리낌 없이 폭로한다. 그래서 당시만 해도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워싱턴 정가에선 할리우드가 어떻게 감히 미국 상원의원이 부패했다고 까느냐며 매우 불쾌해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의 반응은 좋았고,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에 작품상을 내주긴 했지만, 각본상을 받았다. 영국 주재 미국대사는 제작사에 편지를 써서 미국의 위신을 떨어뜨릴 거라며 <스미스 씨, 워싱턴 가다>의 유럽 배급을 만류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유럽에서 개봉되었지만, 몇몇 나라에선 왜곡된 더빙을 해서 공개되었다. 독일 나치 정부, 이태리 파시즘, 소련, 스페인의 파시스트 정권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를 두려워하며 아예 상영 금지시켰다. 그들 국가들은 평범한 국민들이 스미스처럼 되는 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스토리만 언뜻 보면, 감독이 좌파 진보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진정한 보수주의가 뭔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선 보수주의자 하면 태극기 부대나 극우 보수를 떠올리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영화에선 보수주의자 캐릭터를 마치 진보 좌파인 듯이 착각하며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명백히 스미스는 미국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애국가와 성조기를 사랑하는 순수한 보수주의자다. 실제로 프랭크 캐프라 감독은 평생 공화당 정책을 지지하고, 그 자신도 공화당원이었을 정도로 보수주의자다. 그는 1, 2차 대전 모두 미국을 위해 참전했다. 2자 대전 당시엔 주로 영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정훈 장교로 참여했던 그의 미국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다. 그의 영화에선 자주 미국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미국 초창기 민주주의 기초를 마련한 토마스 제퍼슨, 새뮤얼 애덤스, 링컨 등 미국의 독립과 민주주의 기초를 쌓은 정치인들의 동상이 과할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주로 평범한 시골 청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의 영화들은 소시민들을 대변해 거대 자본가나 정치인들과 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런 그도 초창기 좌파 성향의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 작업을 했다는 이유로 1950년대 매카시즘이 정계를 강타했을 때 요주의 회색분자로 정부의 사찰을 받기도 했다.
캐프라의 주인공 스미스는 사회 변혁보다는 그저 원론적인 민주주의와 정의, 자유, 평등을 지지하고, 링컨이 주장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신봉할 뿐이다. 스미스는 그러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여느 나라의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탐욕스러운 자본가에 지배당한 언론과 권력자들과 치열하게 싸운다.
의회에서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는 주인공 제퍼슨 스미스(제임스 스튜어트)
스미스는 또한 환경론자이자, 어린이를 사랑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상원의원이 되자 첫 안건으로 테리 계곡의 월레트 샛강에 어린 소년들을 위한 캠프를 만들자고 내놓는데, 그 장소는 이미 자본가 짐 테일러가 자기 사업을 위해 댐 건설계획을 가진 장소다. 그렇기에 스미스는 테일러의 지원을 받은 타락한 의원들과 극한 대립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언론과 거대 자본을 소유한 테일러라는 인물은 국회의원들과 기자들을 수족 부리 듯한다. 스미스가 의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하면서 자신의 발언권을 놓지 않자, 테일러는 자신의 신문사를 이용해 스미스에 대한 가짜 뉴스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한다. 그렇게 해서 정의와 민주주의 지키려는 스미스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정말 거대 자본 권력이 정치와 언론으로 여론을 좌우하곤 한다는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다. 영화 속에서 악덕 자본가 짐 테일러는, ‘여론은 내가 만들 테니, 스미스를 당장 끌어내라’며 페인 상원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압박한다.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와 언론 재벌을 이기기 위한 조건 4가지
영화는 미국의 정치가 비록 부패하고 타락했을지라도, 결국은 순수한 시골 청년 투쟁 덕분에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가 지켜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스미스는 그것을 독불장군처럼 혼자만의 투쟁으로 지켜내는가? 결코 아니다. 영화는 스미스가 어떻게 악덕 자본가와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정치인들과 싸워 이겼는지를 보여준다. 어쩜 우리 현실 정치에서도 적용될만한 부분인데, 영화를 통해 그 몇 가지 요소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혁하려는 사람 본인의 확고한 신념과 포기하지 않는 패기
주인공 스미스는 지방 소도시에서 보이 레인저스 대장을 하면서 자연 친화적인 순수한 정신과 미국의 초기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 물론 그런 캐릭터 형성에는 어머니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둘째, 신뢰할만한 조력자 및 절대적 지지자들
아무리 신념과 패기가 있다 해도, 혼자 정의를 이룰 순 없다. 반드시 조력자와 지지자가 필요하다. 스미스에겐 다행히 몇몇 조력자가 있다. 스미스는 정치가 처음이기에 의회 규칙 등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사실 그가 의회에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의 여성 비서관 클라리사 손더스의 조력 덕분이다. 물론 손더스는 정치판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려 하다가 스미스에 감화되어, 그를 돕기로 하고 남는다. 스미스와 그녀 사이에 멜로라인이 형성되지만, 그것은 부차적이다. 손더스는 스미스를 지지하며 그가 모르는 의회 규정을 모두 옆에서 알려주고 일일이 코치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스미스가 난관에 부딪혀 다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할 때도, 과거 링컨이 겪은 고초를 얘기해주며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신념 하나로 밀고 나가야 그 열매가 값진 거다.’라고 설득한다. 손더스 덕분에 스미스는 필리버스터를 알게 되고, 그것을 이용해 싸우게 된다.
조력자이자 지지자는 또 있다. 스미스의 어머니와 보이 레인저스의 아이들, 그리고 극소수의 정의로운 기자들이다. 스미스의 어머니와 보이 레인저스의 아이들은 짐 테일러가 언론 권력을 이용해 스미스를 왜곡시켜 나쁘게 선전할 때, 어린이 신문사를 이용해 진실을 전파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면서 스미스가 말한 진실을 알리려고 애쓴다. 보이 레인저스의 아이들은 스미스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고, 그들로 인해 그의 부모들도 종종 설득된다. 그리고 극소수지만 손더스와 친한 기자도 그들 조력자들과 함께 하면서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세 번째, 중립에 서서 공정한 룰을 진행하는 사람
이 영화에서 주인공 외에 인상적인 인물은 상원 의회를 주관하는 의장이다. 그는 의원들이나 스미스 중 어느 누구에게도 기울지 않고 의회법에 따라 공정하게 사회를 진행한다. 그는 다른 의원들의 웃음거리가 되면서 왕따 당하고 있는 스미스에게도 공정하게 발언권을 주게 되고, 그 덕분에 스미스는 그 유명한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게 된다. 영화에선 의장의 캐릭터를 상세히 묘사하지 않지만, 그의 공정한 진행 역할이 중요했다는 것은 스미스가 결국 승리하자, 미소 짓는 그의 얼굴 표정에서 영화가 끝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현실 정치에서 은연중에 강자 편에 서서 불공정한 의사 진행하는 의장을 종종 볼 수 있지 않은가?
네 번째, 자기 잘못에 대해 반성하면서 양심선언하는 사람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최근에 내가 연출한, 광주 5.18 가해자의 반성과 복수를 다룬 <아들의 이름으로>(2021)라는 영화를 만들 때, 그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바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나라의 역사에서 정말 크게 잘못한 사람들이 반성하는 일이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조셉 폐인이라는 상원의원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고 양심선언하지 않았다면, 스미스는 결국 패배하고, 그의 정의로운 행동은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폐인 의원은 스미스의 아버지 옛 친구이기도 하면서 스미스를 의원으로 만든 정치적 스승이다. 그는 스미스의 순수함을 좋아하면서도, 짐 테일러의 자본과 언론권력을 이용해 대권 욕망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는 마지막에 스미스가 필리버스터를 하다 기절 하 듯 쓰러지자, 마침내 가책을 느끼고 권총으로 자살 소동까지 벌이며 의회에서 양심선언한다. “내가 잘못했소. 나는 의원 자격이 없소. 날 추방하시오. 월레트 댐은 협잡입니다. 제가 국민을 배신했어요. 반성합니다. 스미스의 말이 진실입니다!”라고 외치면서...
사실 마지막 장면에서 폐인의 갑작스러운 반성과 양심 고백은 다소 뜬금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종종 갈등하는 그의 내면 묘사가 있었고, 그가 반성하고 양심선언하도록 몰아붙인 것도 결국 스미스였기에 충분이 납득이 된다. 문제는 우리 현실에서 과연 그렇게 용감하게 반성하는 정치인들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영화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역할이 뭔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영화에서나마 실현시켜서 관객에게 대리 만족을 주면서, 은연중에 풍자를 통해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거 아닌가? 무엇보다는 캐프라 감독은 많은 영화에서 순수한 주인공을 통해 ‘이상적 낙관주의’를 현실화시켜 보여주려 애쓴다. 그리고 진심으로 개인의 용기와 열정이 사회와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항상 희망찬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난 충분히 이해한다. 보수주의자이자 애국자인 캐프라는 <스미스 씨 워싱턴 가다>라는 영화를 통해 정계 비리를 다루면서 오히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미국 정치제도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스미스 씨 워싱턴 가다>는 주제뿐 아니라, 영화적으로도 매우 뛰어나다. 솔직히 이 작품만큼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룬 수준 높은 현대 미국 영화는 흔치 않다고 보인다. 당대 톱배우였던 제임스 스튜어트의 연기 역시 지금 봐도 너무 대단하다. 특히 마지막에 의회에서 쓰러지는 연기를 보라. 과장되고 폼 잡는 연기가 대세인 요즘의 우리 한국영화 입장에서 봐도 당시 배우들 연기는 정말 돋보인다. 현대 영화보다 훨씬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편집이나 카메라 워킹, 그리고 적절한 음악도 볼만하다. 영화 전공자들도 이 영화를 통해 영화의 기본을 다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이나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도, 반드시 이 영화를 보고,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해 다시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실제로 프랭크 캐프라는 <스미스 씨 워싱턴 가다>를 본 후 영감을 받아 정치를 시작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랫동안 편지를 받곤 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유튜브에서 제목만 검색하면 누구나 자막 있는 영화 전편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