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영화들: <스가타 산시로>, <요진보>, <쯔바키 산주로>
사실 요즘은 <기생충>을 비롯한 우리 K-무비및 드라마의 위력 때문에 일본영화가 별 볼일 없어 보인다. 요즘 젊은 영화학도들은 <어느 가족>(2018)으로 봉준호보다 1년 먼저 칸 국제영화제를 점령한 바 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외에 다른 감독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과거 일본의 영화 역사는 대단했다. 특히 1950년대는 황금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구로사와 아끼라, 오즈 아스히로, 미조구찌 겐지등의 거장들이 걸작들을 만들어 세계무대에서 각광받았다. 그후로도 일본은 고바야시 마사끼, 이마무라 쇼오헤이, 구로사와 기요시, 기따노 다께시 등 좋은 감독들이 많아, 내가 영화공부하던 시절, 부러움과 감탄의 시선으로 그들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그때 그들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에, 소위 일본 거장들 영화를 분석하며 공부했다. 그중 구로사와 아끼라 감독에 관해서는 책까지 쓸 정도로 특히 집중했다. 구로사와는 그야말로 미국의 대표 감독이라 할 스필버그, 루카스, 코폴라 등의 감독들도 존경하며 영향을 받을 정도로 대단했다. 지금의 봉준호가 서구에서 누린 영광을 구로사와가 이미 30여년전에 먼저 누렸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내 관점에선, 현대 일본영화 역사는 구로사와, 오즈, 겐지등과 같은 거장들을 극복하려다 실패한 역사처럼 보인다..
199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구로사와 아키라(가운데) 감독이
조지 루카스(왼쪽),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기념 촬영한 모습
1998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구로사와 아끼라 감독은 1910년에 태어났다. 그는 영화 매체가 예술과 산업으로 한참 꽃 피우던 시기인 1943년 <스가타 산시로>(姿三四郞)로 감독 데뷔한 이후, 1993년 유작 <마다다요>를 만들기까지 50년 동안 30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구로사와 아끼라는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를 비롯한 유럽의 예술영화들과 거대한 산업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존 포드, 윌리엄 와일러, 프랭크 카프라 등과 같은 미국 영화들의 영향을 받고 감독에 입문하였다. 하지만 후에 그의 영화가 역으로 수많은 유럽 예술영화와 할리우드 상업영화들에 끼친 영향은 훨씬 더 컸다. 그의 많은 영화들이 할리우드를 비롯한 자국 내에서 여러 번 리메이크 된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영화가 전 세계 어디서나 환영받은 이유는 그의 휴머니즘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의식과 알기 쉬우면서도 매우 세련된 영화언어 사용 덕분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영화는 결투 및 대결을 중심으로 한 시각적인 역동성과 극적인 드라마투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후기 작품인 <8월의 광시곡>(1991)이나 <꿈>(1990), <마다다요>(1993)처럼 정적인 영화도 있지만 구로사와 전성기 시절의 많은 작품 대부분은 사무라이 액션이 그 축을 이룬다. 그 동안 할리우드에서 빈번히 리메이크 된 <나쇼몬>(羅生門), <칠인의 사무라이>, <요진보>(用心棒)등과 같은 작품이 모두 사무라이 액션(活劇)이 주요 모티프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구로사와 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코드는 사실상 ‘결투’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전통 무술인 유도를 소재로 한 <스카타 산시로>나 사무라이 액션을 소재로 한 <칠인의 사무라이>, <쯔바키 산주로>(椿三十郞)등, 그리고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대립(갈등)구도를 다룬 <악인이 더 편히 잔다>, <스캔들>, <천국과 지옥>, 그리고 자연 및 운명과 대립하는 <데루스 우살라>, <난>(亂,1985) 사제간의 대립 구도를 다룬 <붉은 수염>, <조용한 결투>등 그의 작품 중 3분의 2에 해당되는 20여 편이‘결투’와‘대립 및 대결’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스토리를 이끌어 간다.
그래서 어쩌면 구로사와 아끼라 영화 미학을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의 결투 장면들에 대한 분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는 편의상 결투에 관한 분석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구로사와 영화의 많은 작품 중 <스가타 산시로>와 <요진보>, 그리고 <쯔바키 산주로>를 중심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작품들은 구로사와의 대표작이나 다름없는 <나쇼몬>(1950), <칠인의 사무라이>(1954)등에 비해 메시지의 심도나 미학적인 완성도에 있어 저평가 된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주로 언급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액션인 ‘결투’가 영화를 끌고 가는 핵심 모티프로 활용되고 있기에 그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스가타 산시로>는 유도 시합을, <요진보>와 <쯔바키 산주로>는 사무라이 결투를 다루고 있는데, 그 영화들은 모두 최후의 결투 장면에 영화적인 역량이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그 결과는 매우 뛰어난 영화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스가타 산시로>를 제작 직후 내무성 검열실에서 처음 보게 된 선배 감독 오즈 야스히로는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며 축하해주었다고 한다.
일본의 유명 잡지 키네마 순보에 의하면 <요진보>와 <쯔바키 산주로>는 영화 개봉 당시 일본 내에서 흥행 기록에서 4위와 1위를 기록하였고, 걸작 순위에선 2위와 5위를 기록할 정도로 작품성과 대중성 양면에서 고루 인정받았다. 특히 주인공 미후네 도시로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요진보>, <쯔바키 산주로>로 두 번 연속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투(Duel)’는 액션영화나 스릴러 영화 등의 장르영화에선 주로 사용되는 액션의 모티프다. 결투란 승패를 결정하기 위한 싸움으로 기본적으로는 일 대 일, 시각에 따라서는 일 대 집단, 집단 대 집단, 그리고 크게는 국가대 국가의 전쟁까지 그 범주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대부분 스포츠 형태로 승화되어 거의 사라졌지만, 서구 역사에서 200년 전 까지만 해도 일 대 일의 결투는 귀족이나 상류사회 남자들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1975)을 보면 그 시대 결투의 속성이 잘 묘사되고 있듯이 서구 유럽에선 중세 때부터 결투는 분쟁을 해결하거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실제로 재판을 거치지 않고 사법적인 결투 형식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그와 같은 결투 형태는 봉건제도하의 일본에서도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만연하였다. 이 글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구로사와의 사무라이 영화 <요진보>와 <쯔바키 산주로>는 그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스가타 산시로>의 경우도 18세기말을 배경으로 현재 일본의 국기인 유도를 다루고 있지만 칼만 없을 뿐이지 기본적인 결투의 모티프는 동일하다 할 수 있다.
구로사와 영화에서 마지막 결투 장면은 전통적인 기승전결의 구성 단계로 보자면, 결말에 속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위기와 절정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구로사와 영화는 <나쇼몬>이나 <이끼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복합적이거나 실험적인 구성방식 보다는 기승전결식의 서사적 드라마투르기를 선호한다. 세 편의 영화 <스가타 산시로>, <요진보>, <쯔바키 산주로> 역시 그렇다. 스토리가 단순해진 그런 구성에선 장르를 불문하고 당연히 결말인 위기와 절정은 그 자체의 씬 만으로 완성되진 않는다. 그 전 단계인 기와 승, 그리고 전개의 과정을 통해 철저히 이야기가 구축되고, 복선이 깔리고, 캐릭터가 잘 쌓아져야만 비로소 결말다운 마지막 장면이 완성된다. 그러기에 결말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자연스레 그 전의 구축 단계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전체 스토리의 대강을 알면 결말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보다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스가타 산시로라는 한 젊은이가 ‘유도’라는 무도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고 열심히 수련한 덕분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되나 싸움판에서 그 능력을 소진하자 스승이 호되게 질책한다. 그런 와중에 히가키라는 거친 유도인이 공식 결투(시합)를 신청해 도장내의 다른 동료들을 넘어뜨리지만 근신 중이던 산시로는 싸울 수 없게 된다. 스승의 가르침 덕분에 진정한 무도의 세계에 새롭게 눈을 뜬 산시로는 나중에 시합에 나가게 되는데, 시합 중 상대 무도인이 죽게 되자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 후 더 큰 시합에 출전하게 되고, 하필이면 그의 상대가 자신이 사랑에 빠진 여자의 아버지 무라이다. 하지만 갈등을 이겨내고 무라이와 정당하게 싸워 이긴다. 그러자 예전에 자신의 도장에 찾아왔던 히가키라는 실력자(알고 보면 그는 무라이의 수제자다)가 산시로에게 정식 도전해 해오게 되고, 둘은 산 능선에서 죽음의 결투를 벌인다. 결국은 주인공 산시로가 결투에서 이기고 사랑하던 여자도 얻게 된다.
이름 없는 떠돌이 사무라이가 한 마을에 나타난다. 그 마을은 주류상과 비단상 패거리의 갈등으로 무법천지다. 상호 적대적인 두 집단의 싸움에 정부 관리도 힘을 못 쓴다. 주인공이 뛰어난 칼 솜씨를 선보이자 양 집단에선 그를 서로 자기들의 요진보(경호원)로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어차피 둘 다 악의 집단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역이용해 왔다 갔다 할 뿐이다. 그 무렵 마을에 당시로선 신무기인 총을 든 남자가 등장한다. 그 총잡이와 주인공 사무라이는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경계하지만, 바로 대립하진 않는다. 막상막하였던 두 집단의 대립이 그 총잡이로 인해 비단상 패거리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 와중에 주인공은 그들 두 집단 사이에서 희생당할 뻔한 농부 가족을 구해주었다가 비단상 패거리에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한다. 주인공은 극적으로 탈출하여 총에 맞설 대비를 한다. 그리고 비단상 패거리와 마지막 결투를 벌여 그들을 모두 죽인 후 마을을 떠난다.
이 작품은 <요진보>의 연작처럼 떠돌이 사무라이 캐릭터가 그대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원래 야마모토 슈고로 원작을 각색했지만, <요진보>의 대성공으로 3분의 2이상을 개작해 다시 쓴 것이다. 한 고을에 의협심은 많지만 아직은 사리분별이 어두운 젊은 9인의 사무라이들이 부패관리들에 대항하기 위해 모였다가 오히려 그 부패관리들에게 죽을 뻔 한 것을 떠돌이 사무라이인 쯔바키 산주로 나타나 구해준다. 산주로는 젊은 사무라이들을 도와 부패관리 패거리에 붙잡힌 정직한 성주대신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다. 산주로는 여기서도 <요진보>때처럼 양측을 오가며 머리로 싸운다. 먼저 부패관리들의 경호대장 격인 무로또를 만나 자신을 한패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하지만 산주로는 그를 이용해 부패관리들을 궁지에 빠뜨릴 계획을 세운다. 결국 노련한 산주로는 어떻게 할지 몰라 허둥대는 젊은 9인의 사무라이들을 이끌고 부패관리들을 처단하고 정직한 성주대신을 구한다. 그러자 부패관리 편에 섰던 ‘무로또’라는 사무라이가 산주로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당연히 주인공 쯔바키 산주로는 그 결투에서 이기고 또다시 정처 없이 길을 떠난다.
이 글의 목적은 앞에서 언급한 세 영화의 마지막 결투장면을 연출적 관점에서 분석을 하여 그것이 이 작품의 완성도에 미치는 극적인 장점을 파헤치고자 하는 데 있다.‘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모든 상황에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602년에서 1605년 사이에 만든 코미디 희곡의 제목으로, 성경 마태복음에서 인용된 구절이다), 영화에선 그 마지막 장면이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결정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처음과 중간이 다소 부족해도 끝이 좋으면 다 좋을 수 있지만, 앞이 다 좋아도 끝이 나쁜 영화는 결코 좋은 영화로 평가받기 힘들다. 구로사와의 대부분의 영화들은 물론 처음과 중간도 괜찮지만 끝이 너무 좋아 그 작품들이 대중적으로나 미학적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세 편의 영화는 그 마지막 결투장면의 뛰어난 미학적 완성도로 인해 그 작품들이 액션 영화로서 뛰어난 가치를 지닐 수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러한 장면들은 어떻게 연출되었을까? 그러한 장면들의 영화적인 구성과 액션 연출, 그리고 카메라 구성과 움직임, 편집, 사운드 활용 등 총체적인 관점에서 분석을 하여 그 장면의 원리를 해부해 보고자 한다.
세 편의 결투 영화 <스가타 산시로>, <요진보>, <쯔바키 산주로>는 그 구성과 주인공의 캐릭터가 매우 유사하다. 영웅이 일정한 공간에 홀연히 등장했다 사라지는 신화적인 구성이 그러하고,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분명한 영웅(산시로, 떠돌이 사무라이, 산주로)이 있고, 그에 대립하는 강자(히가키, 총잡이, 무로또)가 반드시 있다. 그리고 대립하는 강자, 소위 악당은 영화 중반쯤에 등장해서 주인공(영웅)과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영웅과 극적인 결투를 벌인다. 당연히 영웅이 승리한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에게 패배란 없다. 다소의 갈등과 위기는 있지만 마지막 결투에서 항상 승리한다.
<스가타 산시로>의 인물설정과 구성 원형은 무엇보다도 일본의 실존 검객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화한 <미야모토 무사시>(1935-1939, 아사히신문, 연재소설)에서 가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소설 속에서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떠돌이 사무라이는 칼을 수행의 수단으로 삼고 수많은 사람들과 결투를 벌이지만 한 번도 패하지 않는다. 반면에 또 다른 천재적인 검객 사사키 고지로 역시 뛰어난 칼솜씨로 수많은 유명 검객들을 쓰러뜨리고 언제가 무사시와 맞대결을 예고한다. 두 검객 모두 다 뛰어난 칼솜씨에 몰입한다. 결국 소설의 결말에 가서 두 사람은 강가에서 마지막 결투를 벌이고 거기서 주인공 무사시가 승리한다.
<요진보>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미국작가 데실 해미트의 소설 <피의 수확>(Red harvest, 1929년)에서 따왔지만, 그 구성과 인물 캐릭터는 할리우드 서부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쯔바키 산주로>도 마찬가지다. 특히 <요진보>의 마지막 장면은 존 포드의 <역마차>와 조지 스티븐스의 <셰인>과 매우 유사하다. <역마차>에선 주인공 링고 키드(존 웨인)가 자신의 형제를 죽인 세 악당들과 마을에서 결투를 벌이는 마지막 신이 그러하고, <셰인> 역시 마을 악당들에게 고용된 총잡이와 결투를 벌여 죽인 후, 떠나는 장면이 비슷하다. <셰인>에서 주인공 셰인은 소년 조이에게 ‘엄마에게 전해라. 이제 더 이상 이 마을은 총을 필요 없을 거라고’라고 한 뒤 떠나는데, <요진보>의 떠돌이 사무라이 역시 악당들을 죽인 후 마을 사람들에게 ‘이제 이 마을은 조용해질 거야’라고 셰인과 비슷한 대사를 한 뒤 떠난다. 불법이 판치는 공간에 홀연히 나타난 영웅이 그 마을에 정의를 이루고 떠난다는 신화적인 구성이란 측면에서도 구라사와의 사무라이 영화들과 서부영화는 상통한다.
대신 서부영화처럼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은 있지만 극단적이진 않다. 구로사와 영화에서 주인공과 대립하고 승부를 벌이는 상대들은 그들 자신이 사회에 직접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악당이라기보다는 어쩌다가 악인의 편에 충복으로 일하다가 주인공과 맞부딪히게 되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지나친 승부욕으로 인해 목숨을 걸고 승부를 벌이다 죽게 된다. 구로사와의 주인공들 역시 선행으로 자신의 이득을 취하거나 정의를 이루려고 의도적으로 애쓰기 보다는 승부에서 이기는 데 관심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나중에 구로사와의 이런 식의 액션영화는 할리우드와 홍콩 영화에서 현대적으로 수없이 변주되어 제작되어 왔다. 정의로운 자와 악당이 서로 대립갈등을 벌이다 나중에 최후의 대결을 통해 정의로운 자가 승리하면서 끝난다는 이야기... 이러한 구성에서 중요한 것은 정의를 상징하는 주인공의 활약도 중요하지만, 그와 대립하게 될 악당의 잔인함이나 강한 면모에 대한 캐릭터의 구체화이다. 그래야만 마지막 결투가 긴장감이 생기고, 악당을 물리쳤을 때 극적인 카타르시스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의 결투가 극적인 절정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결국 그러한 장르의 규칙에 따른 구성과 인물의 대립구도의 적절한 배치 덕분이다..(다음 편에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