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받은 미국, 홍콩, 한국영화들
영화는 여러 숏(shot)이 모여 신(scene; 장면)을 만들고, 그리고 신들이 모여 시퀀스(sequence)가 만들어지고, 그 시퀀스들이 모여 비로소 한 편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여기서 중점적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결투로 이뤄지는 마지막 신(scene)이다. 원신 원숏에 의한 특별한 장면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신은 여러 숏으로 이뤄지는 데, 한 신(장면)의 극적인 표현은 어떻게 그러한 숏들을 잘 연결(편집)하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뛰어난 결투신이란 실제적인 결투 그 자체보다는 그 이전 두 사람(또는 집단)의 결투 직전에 주어지는 긴장감의 묘사다. 초기 서부영화나 현대 액션 영화에서는 시작부터 치고 박고 싸우는 장면이 나오고, 마지막까지 액션 장면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그런 영화의 마지막 액션 장면은 그다지 강렬하게 와 닿지 않는다. 구로사와의 액션 영화에선 조금씩 차곡차곡 쌓아가는 방식이다 보니 마지막 짧은 액션의 폭발력이 강하다.
갈대숲이 우거진 들판에서 이뤄지는 <스가타 산시로>의 마지막 결투신의 경우, 6분 30초 정도 진행되는데 총 50개의 숏으로 나뉜다. <요진보>의 경우 9분 동안 54 숏, <쯔바키 산주로>의 경우 4분 33초 동안 19숏으로 구성된다. 후기에 갈수록 결투 신에 소비하는 숏의 수는 적다. 여기서 공통적인 것은 막상 이뤄지는 결투 그 자체는 매우 짧다는 것이다. 소위 치고받는 결투 시간은 <스가타 산시로>의 경우는 아무래도 유도라는 특성 때문인지 몇 번의 합(서로 맞붙어 싸우는 행위)을 통해 승부가 나기까지 2분 정도 소요된다. 그런데 <요진보>에선 주인공이 9명의 상대를 칼로 해치우는데 10초 밖에 안 걸린다. <쯔바키 산주로>에선 단칼 승부, 그러니까 거의 1초 만에 승부를 결정한다.
<스가타 산시로>의 경우 결투 신에서는 주인공은 들판에서 노래를 부르며 기다리고, 상대가 등장하고 서로 노려보다가 결국 첫 합을 시작한다. 합이 이뤄지기 전의 시간 소요는 결정적인 승부에 대한 기대감과 조바심을 야기 시키는 서스펜스의 효과를 준다. 숏은 느리게 편집이 이뤄지다가 서서히 빨라지며 결정적인 합에서 매우 빠른 컷팅이 이뤄지면서 합의 극적효과를 강하게 부여한다. 즉 편집의 리듬이 상황의 긴박성을 자연스럽게 부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구로사와의 초기 작품이다 보니 어설픈 편집도 있다. 가령 주인공이 상대에게 목이 졸린 상태에서 주인공의 시점으로 연못속의 꽃의 플래쉬 백이 몽타주로 들어서는데, 다소 작위적이다. 주인공의 깨달음을 의식적으로 삽입하기 위한 의도였겠지만, 설명적인 숏으로 인해 결투의 리듬을 깨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작품 이후에 구로사와는 어떤 영화에서도 그런 식의 설명적인 플래쉬 백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산시로가 목이 졸린 혼미한 상태에서 그의 시점으로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인서트로 보여주는 장면은 매우 돋보이는데, 그런 세련된 편집은 후에 <나쇼몬>에서도 보여진다. 즉 무사의 아내가 산적에게 강간당할 때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 인서트가 바로 그것인데, 그러한 인서트 숏은 주인공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잘 나타낸 것이다.
<요진보>의 경우엔 신이 시작되고 결정적인 합이 이뤄지기 전까지 2분 24초를 유지한다. 그 대부분은 주인공의 등장과 상대 패거리들이 나타나 서로를 노려보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가기 위해 마주 걸어가는 데 할애한다. 그들의 상호 몽타주 컷은 비록 어떤 행동이 이뤄지진 않지만 서스펜스 효과를 준다. 과연 그들의 결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관객 입장에선 주인공의 승리를 예측할지라도 어떻게 이길까에 대한 관심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서로 가까워질수록 편집 속도는 점차 빨라지기 시작하고 합이 붙자마자 빠른 속도로 편집이 이뤄진다. 그리고 8명의 상대와 붙은 실질적인 결투(절정)는 순식간에(10여초) 끝나 버린다. 승부가 결정되면 일단 편집 속도는 정상으로 돌아간다. 이미 영화가 에필로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쯔바키 산주로>의 산주로와 무로또의 마지막 결투는 그야말로 액션에서도 롱 테이크 편집의 효과가 얼마나 유용할 수 있는가를 입증시킨 명장면이다. 구로사와는 결정적인 순간을 보여 주기 직전에 감정적으로 최대한 긴장감을 고조시킨 후, 그것이 최고조에 달했을 즈음 칼을 휘두르게 한다. 그는 두 사람이 결투를 선언하고 자세를 잡기 시작한 후, 바로 칼을 빼도록 하지 않고 서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은 채 견제하는 모습을 30초가량 롱 테이크로 보여 준다. 그것도 고정 숏만으로... (그 숏 자체만으로 따지면, 1분 33초 정도 되는 롱 테이크다. 여기서 30초란 두 사람이 대화를 끝내고 결투 자세에 들어가는 타이밍에서부터 계산한 시간이다) 액션 장면이 일반적으로 1초에서 5초 정도의 짧은 숏의 몽타주로 이뤄진다는 걸 감안할 때, 여기서의 30초는 무척 긴 숏이다. 상식적인 영화였다면 아무리 길어 봤자 10초를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롱 테이크는 실로 보는 관객에게-영화 속의 구경꾼인 젊은 사무라이들에게도-숨 막히는 긴장감을 준다. 그 결투는 요즘 액션영화처럼 질질 끌지 않고 그야말로 단칼 승부로 순식간에 끝난다. 결투 시작 전, 2분 10초 동안 단 3숏으로 이뤄지던 몽타주가 결투 직후 1분 동안 10컷으로 빨라진다. 그리고 에필로그로 가면서 다시 느려진다.
롱 테이크도 편집의 한 형태이다. 만약 이 장면이 롱 테이크가 아닌 몽타주 형식으로 편집이 이뤄졌다면 긴장감은 대폭 감소되고 이후의 충격 효과도 약화되었을 것이다. 롱 테이크로 긴장감을 극대화시킨 다음 순간적으로 칼을 뽑아 무로토의 가슴을 베고, 이어 피가 분출되는 장면-이때 동시에 들리는 효과 음향도 충격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을 보인 후에야 비로소 반응 숏을 보여 주기 위한 편집이 이뤄진다. 구경하던 젊은 사무라이들의 놀라는 표정과 산주로가 쓰러진 무로토를 내려다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을 차례로 보여 주는데, 그가 그 단칼 승부에 얼마나 온힘을 쏟았었나를 느끼게 해주는 리얼한 장면이다. 편집이라는 게 단지 다양하게 자른다고 해서 극적인 효과를 거두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좋은 실례다.
액션 장면을 이루는 가장 우선적인 요소는 사실 편집 보다 카메라 구도와 그 움직임일 것이다. 편집 이전에 촬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영화에서 구도는 매우 정밀하게 계산된다. 현대 액션영화가 흔히 클로즈업을 중요시 여기고 그런 숏을 빈번히 사용해 극적인 힘을 강하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과 달리 구로사와는 오히려 롱숏이나 풀숏을 중요시 여긴다. 결투 장면에서 대부분의 클로즈업은 롱숏을 거쳐 서서히 들어간다.
<스가타 산시로>의 마지막 결투를 보자. 첫 숏은 대결할 장소인 들판에서 노래를 부르며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을 롱숏으로 전경을 보여준다. 다음 숏은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 그리고 비로소 주인공의 풀 숏, 이런 식으로 가다가 10번째 숏에 가서야 비로소 바스트 숏, 그리고 클로즈 숏으로 들어간다. 카메라는 모두 고정된 채 보여주다가 카메라 움직임은 결투를 시작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숏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고정된 숏으로 액션을 잡아낸다. 극단적인 롱 숏과 클로즈 숏의 교차 사용 등, 이런 식의 구도는 고전적인 서부영화에서 자주 사용된다. 구로사와가 결투 장면에서 인물 그 자체보다 거대한 자연을 강조하는 화면 구도는 주로 서부 개척시대를 많이 다룬 존 포드의 영향이 커 보인다.
<요진보>에서도 마지막 결투 장면의 시작은 마을에 들어서는 주인공의 롱숏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가 구하고자 하는 주점 노인이 묶여 있는 모습 너머로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카메라는 적의 부하들의 이동에 따라 움직이다가 마침내 적의 패거리들이 나오자 다시 멀리서 동시에 보이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주인공의 풀 숏, 이러 식으로 숏으로 다소 길게 그리고 롱 숏 중심으로 가다가 그들이 결투를 위해 서서히 거리를 좁혀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모습도 점차 미디엄, 바스트를 향해 다가간다. 그러다가 결투가 시작되자마자 신속하게 인물들이 움직이면서 카메라도 동시에 움직이며 역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끝나는 결투 이후, 카메라는 다시 정지된다. 이런 식의 카메라 움직임의 원리는 <스가타 산시로>와 유사하다. 단지 숏의 크기 변화가 그때처럼 거칠거나 극단적이진 않고 보다 세련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쯔바키 산주로> 역시 화면 구성 방식과 그 움직임은 이전 결투 장면들과 큰 차이는 없다. 이 신에서 도입부 팬과 라스트 팬을 제외하고 모든 결투 장면은 고정 숏에 의해 이뤄져 있다. 카메라 움직임이 필요할 경우엔 트래킹이나 크레인 숏이 매우 부드럽게 사용된다. 급박한 경우에만 스위시 팬(빠른 팬)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결투의 역동성은 편집과 사운드가 조화를 이뤄 매우 강하게 표현되었다.
한 장면이 뛰어나게 표현되려면 시나리오, 편집, 카메라 등도 뛰어나야 하지만, 결투 액션을 통한 캐릭터의 구현은 결국 배우가 하는 만큼 연기와 그 블로킹(연기의 동선)이 매우 중요하다. <스가타 산시로>의 경우 후지타 스스무가 산시로 역할을 무난하게 해냈다. 비록 유도라는 무도 그 자체가 맨손으로 하는 것이기에 총이나 칼에 비해 강렬한 힘을 주기엔 한계가 있지만 이 작품에선 결투 액션 직전까지 끌고 가는 분위기 묘사에서 배우의 과장되지 않은 표정이 적절했다. 특히 산시로가 혼자 산 능선에서 상대를 기다리며 긴장을 풀려는 듯 하늘 보며 노래를 부르는 설정은 결투 장면의 정서적인 분위기를 신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요진보>와 <쯔바키 산주로>의 주인공 역할은 그야말로 구로사와 영화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아 그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미후네 도시로가 해내고 있다. 어떤 승부에서도 결코 지지 않는 칼솜씨에다 지략까지 갖추고 있는 슈퍼맨 사무라이로 등장하는 그의 캐릭터는 일단 외모에서부터 서양인 못지않게 윤곽이 뚜렷하고 미남형인데다 연륜이 깊고 카리스마가 넘친다. 거기에다 두 작품 모두에서 대립되는 상대역으로 등장한 나카다이 타츠야 역시 당대 최고 배우 중 한 사람으로 강인한 인상과 세련된 외모로 미후네 도시로와 맞서는 데 부족함이 없다. 배우들의 이미지나 그 유연성 등으로 볼 때 <스가타 산시로>에 비해 훨씬 대중적이고 세련된 것이다. 구로사와가 떠돌이 사무라이로서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미후네 도시로에게 설정한 작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있는 거라든지, 가끔 어깨를 으쓱이거나, 손으로 턱 주변을 만지는 습관 등은 현대영화에서 다른 배우들에게(특히 <영웅본색>의 주윤발) 종종 응용될 만큼 매우 효과적이었다. 특히 <요진보>에서 주인공 산주로와 결투를 벌이는 주류상 패거리들의 인물 구성은 무척 인상적이다. 잘생긴 총잡이, 2미터가 넘는 괴물 같은 거인, 땅꼬마 등의 묘한 대비를 이루는 그들 패거리 조합은 유머 넘치는 사무라이 액션 영화로서 제격이었다.
두 작품 모두에서 감독의 배우들에 대한 블로킹은 철저히 양식화된 구성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마치 연극처럼 일정한 동선을 맞춰놓고 배우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양식성은 하나의 스타일로 영화 전반에 일관되게 표현되고 있기에 전혀 억지스럽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지막 결투장면에서도 인물들이 요란스레 움직이며 싸우는 게 아니라 일정한 격식을 갖추듯이 움직인다. 미후네 도시로는 그 나름의 카리스마를 유지하며 움직이다가, 막상 합이 시작되어 많은 상대를 물리칠 때 그가 칼을 휘두르는 액션은 마치 무용하듯이 부드럽고 강하게 일정한 리듬을 타듯이 움직이되 질질 끌지 않고 순식간에 승부를 결정짓는다. 특히 <쯔바키 산주로>에서 미후네의 단칼 액션으로 인해 상대가 피를 내품으며 쓰러지는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다. 대부분 액션 영화들이 여러 합을 요란스럽게 주고받은 후 승부를 결정짓는 것과 달리, 구로사와는 한 순간의 액션으로 승부를 결정짓게 하면서, 그 자체를 충격 효과가 크도록 연출하였다. 이러한 액션 연출을 요즘에는 따로 무술감독들이 대신 하는 경우가 많지만, 구로사와 시절에는 대부분 감독이 이러한 배우들의 액션 블로킹을 연출하였다.
일본의 한 평론가는 구로사와 영화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구로사와 영화가 역동적이다 라는 말을 듣는 것은 주로 소재나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나, 실제로는 그것과 더불어서 표현방법에 강력함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때로 그것은 섬세하기조차 하다. ...비나 바람이나 태양이 구로사와 영화에서 중요한 표현요소가 된다. 구로사와는 극적상황을 강조하는 수단으로서 그러한 자연 조건을 첨가하곤 한다.”
셰익스피어가 항상 자신의 희곡에서 폭풍이나 비바람, 더위 등을 상황과 인물의 심리를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자주 활용하듯이 구로사와도 자신의 영화에서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는 데 그러한 자연조건을 최대한 활용하곤 한다. <들개>(1949)와 <나쇼몬>(1950)에선 ‘무더위’를, <7인의 사무라이>(1954)에선 쏟아지는 ‘비’를, <거미집의 성>(1957)에선 ‘안개’를 전반적인 분위기를 강화시키는 데 사용한 것만 봐도 그렇다. <스가타 산시로>와 <요진보>, <쯔바키 산주로> 역시 마찬가지다. 그 마지막 결투의 완성도는 이미 언급한 여러 요소가 잘 조화를 이룬 덕분이지만, 그 장면의 미학적인 수준을 한 차원 더 끌어올려준 역할을 하는 건 바로 그러한 자연 환경 활용이다.
<스가타 산시로>에선 결투 장소가 산 능선으로 설정되어 풀과 갈대가 ‘바람’에 휘날리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가운데 결투가 벌어지고, 주인공이 목이 졸려 위험한 상황에서 그의 시점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인서트로 보여주며 주인공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요진보>는 ‘바람’과 ‘먼지’가 주요 모티브로 활용되는 데, 주인공이 마지막 결투를 위해 마을에 들어설 때 바람이 골목으로 불어오고 그로인해 발생하는 먼지가 주인공 주변을 휘감아 돌면서 그의 등장을 신비화 시킨다. 이와 달리 <쯔바키 산주로>는 햇살이 내리쬐는 맑은 날씨 아래 마을 어귀에서 결투가 벌어진다.
구로사와 영화의 마지막 결투 장면을 완성하는 최종적인 요소는 영화 제작단계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해당하는 사운드, 즉 음악과 음향효과다. 구로사와는 작품의 연출을 맡는 순간부터 음악이나 음향효과에 대해 생각하고, 촬영하기 전에 모든 것을 다 결정한다고 말한다. 가장 음향효과가 잘 사용된 작품은 <쯔바키 산주로>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 신 역시 시작할 때는 현장에서 들릴법한 실제 사운드만 나온다. 그들이 본격 결투자세로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근처에서 지저귀는 맑은 새소리가 계속 평화롭게 들려온다. 그런데 막상 둘이 결투 자세로 돌입하자마자 점차 실제 사운드는 작아지고 새소리도 사라지며 폭풍전야 분위기가 된다. 그로인한 긴장효과는 매우 크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고정된 풀 숏에 30초의 롱 테이크가 이뤄지는 동안 두 인물이 움직이기 않다가 순식간에 칼을 휘두르는 순간 정적이 깨진다. 그리고 칼을 맞은 상대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는데, 그 때 그에 상응하는 음향이 동반된다. 이때 사용된 분출을 상징하는 음향은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충격적인 이미지를 극적으로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내 이어지는 주인공의 가쁜 심호흡 소리도 그 결투가 얼마나 집중력이 필요한 싸움이었나를 실감나게 해준다. 그리고 사운드에서는 음악과 음향 외에도 현장에 있을법한 있는 그대로의 활용도 중요한데, 구로사와는 그러한 현장음 중에서도 선별하여 강조할 것은 조금 더 강조하는 디테일 작업에 신중을 기했던 것 같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스가타 산시로>, <요진보>, <쯔바키 산주로>, 이 세 작품의 마지막 결투 장면이 뛰어난 완성도를 보인 이유는 어떤 한 요소만 특별해서 라기보다는 구성, 편집, 카메라, 사운드, 연기 등 모든 영화적 요소가 최선의 조화를 이뤄 연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구로사와의 사무라이 액션 영화의 표현 기법은 그 자체로 창조적인 것은 아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같은 사무라이 소설과 <역마차>, <셰인>같은 서부영화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로사와의 다른 많은 영화가 그렇듯이 그의 작품이 역으로 할리우드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에 끼친 영향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영화중 <요진보>의 결투 장면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상업영화 <보디가드>(1992, 케빈 코스트너, 휘트니 휴스턴 주연)에서 공공연히 인용될 정도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A Fistfull of Dollars)>(1964)는 사실상 구로자와 아키라의 <요진보>를 무단으로 표절해 만든 영화였다. 칼이 총으로 바뀌었을 뿐, 거의 대부분 <요진보>와 대사마저 비슷하였던 것이다. 나중에 그 <황야의 무법자>는 구로자와 아키라를 포함한 <요진보>의 제작자들에 의해 소송을 당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요진보>의 제작자들은 <황야의 무법자>의 일부 수익과 아시아 쪽의 배급권을 얻게 되었다. 그 일본 제작자들은 <요진보>를 통해서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황야의 무법자>의 배급을 통해 벌어들였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그 작품의 영화화는 <요진보>의 무단 표절에 의한 것이었지만 후에 월터 힐 감독에 의해 <라스트 맨 스탠딩>(1996, 브루스 윌리스 주연)이라는 서부영화로 정식 리메이크되기도 하였다.
일본 내에서도 구로사와 결투 장면의 영향은 컸다. <쯔바키 산주로>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의 칼을 맞고 무로또가 가슴에서 피가 분출하듯이 쏟아지는 장면은 이후 일본영화에 잔혹영화 붐을 일으킬 정도였다. 몸이 반쪽으로 잘리는 장면을 선보인 미스미 겐지의 <베인다>(1962)가 대표적인 경우다. 특히 1962년부터 1971년까지 22편이나 시리즈로 제작된 <자토이치 이야기>(가쓰 신타로 주연)의 경우 <요진보>와 <쯔바키 산주로>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소위 ‘찬바라 영화’이다. 구로사와가 나중에 지나치게 자신의 작품이 잔혹영화 붐으로 악용된 것을 개탄할 정도였지만, 봉건 시대 사무라이들의 할복의 위선을 통쾌하게 고발한 고바야시 마사키의 <하라키리>(할복, 1962)같은 작품은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좋은 실례다. 가장 창조적인 영향을 받은 현대영화는 역시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기타노 다께시의 <자토이치>(2003)라고 할 수 있다. 그 영화의 기본 구성이나 액션 장면은 구로사와의 영화 <요진보>나 <쯔바키 산주로>에 가깝다. 유머 감각이나 인물 구성도 유사하다. 영화 후반에 강가에서 벌어지는 자토이치와 상대 검객 히토리의 결투 장면은, 그 공간의 아이디어는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에서 왔지만, 액션 기법 면에선 <쯔바키 산주로>에 더 가깝다. 즉 자토이치는 상대가 미처 칼을 뽑기도 전에 허를 찌르는 스피디한 공격으로 히토리를 베어버리는데,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히토리의 모습은 <쯔바키 산주로>의 무로또와 거의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그 상황에서 다께시 식의 플래쉬 백 사용된다는 점이다. 다께시의 <자토이치>는 정통 드라마투르기에다 잘 구성된 교과서 같은 세련된 형식미를 갖춘 구로사와 영화를 현대적인 감각에다 자기만의 독특한 서술방식과 표현기법으로 응용한 모범적인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구로사와의 결투 액션은 1960년대 우리 한국영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1966년 무렵, 구로사와 영화의 영향을 받은 홍콩 무협영화 호금전 감독의 <방랑의 결투>(大醉俠)와 마카로니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가 개봉되어 성공하자 우리 식으로 재해석한 검객영화가 대유행하기 시작한 바 있는데, 대표적으로 정창화 감독의 <황혼의 검객>(1967)이나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를 들 수 있다. 특히 <쇠사슬을 끊어라>는 일제 시대 만주를 배경으로 일본에 대항하는 독립군을 소재로 만든 만주 웨스턴으로 나중에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으로 각색되기도 하였다.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는 구로사와 영향이 절대적인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1966,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번안하다시피 해서 만든 작품이니 자연스레 최근 김지운 감독의 영화도 결과적으로 구로사와 영향 하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겠지만, 1990년 완성되어 흥행에 대성공한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과 김동회의 맞짱 승부나 조진규의 <조폭 마누라>(2001)에서의 마지막 들판 결투, 그리고 이명세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에서 안성기와 박중훈의 폐광촌 맞짱 결투도 거슬러 올라가면 구로사와 영화에서 보인 마지막 결투 장면의 또 다른 변주처럼 읽혀진다.
정말 ‘결투’는 영화 뿐 아니라 대중의 일상적인 삶에서 매우 극적인 힘을 주는 모티프이다. 누군가가 어디서 소위 ‘맞짱 뜬다(결투를 벌인다)’면 얼른 뛰어가 구경하고 싶고, 그 싸움을 지켜보며 누가 이길 것인가 궁금해 하거나 자기편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하면서 마음 조리는 게 사람의 기본 심리다. 현대에 와서는 대부분 스포츠라는 형태로 순화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결투’‘시합’‘싸움’이라는 상황은 역동적이고 재밌는 극적인 장치다. <스가타 산시로>와 <요진보>, <쯔바키 산주로>의 마지막 결투 장면처럼 미학적으로 잘 연출될 수만 있다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어떤 액션영화에도 그러한 모티프의 활용은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그저 모방과 흉내 내기로 끝내느냐, 아니면 창조적인 재해석을 통해 그 액션 신이 전체 영화를 살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셰익스피어의 공언을 입증할 것이냐에 있는 것 같다.
(*본 글은 학술등재지인 한국영화학회의 <영화연구>(2010)지에 실린 제 논문을 수정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