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얼간이> 2-2
최근 들어 인도의 마살라 영화들은 다양한 장르가 보다 풍부하게 결합되는 경향이 강하다. 가령 2008년 무르가도스 감독이 만든 <가지니>(Ghajini)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Memento, 2000)의 스토리를 노골적으로, 표절 아닌가 싶을 정도로, 패러디한 작품이다. 그런데 무르가도스 감독이 차갑고 냉소적인 분위기의 미스테리 스릴러인 <메멘토> 원안을 뒤집는 과정에서 액션, 멜로, 뮤지컬,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버무려 넣어 발리우드 스타일로 완성해 당시까지 최고 흥행을 거두었다. <세 얼간이> 역시 미스테리, 멜로, 뮤지컬, 코미디가 마살라 영화답게 잘 혼합하여 <가지니>의 흥행기록을 뛰어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영화 스타일은 인도 영화인들이 자부하듯 발리우드 영화의 맛을 극적으로 잘 살리고 있다. 많은 인도 영화들이 기본 컨셉트나 스토리, 또는 부분적인 장면들의 장점을 할리우드 영화나 유럽영화에서 종종 인용하곤 한다.
특히 <세 얼간이>는 기존 장르에 서부영화의 신화적인 구조를 은연중에 차용하고 있는 게 그 특징이다. 신화적인 구성 원리의 핵심은 ‘도입부에 영웅이 일정한 불의나 모순으로 가득 찬 어떤 공간에 등장했다가 문제를 해결하고 그곳을 마지막에 떠난다’는 것과 ‘그 영웅에 의한 공간의 변화’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란쵸는 마치 서부영화의 영웅처럼 등장해서, 나중에 모순과 문제점으로 가득 찬 대학을 풍자하고 부모 때문에 마지못해 들어와 적응에 힘들어 하던 동료들(라주와 파르한)과 고지식한 비루 총장까지 변화시키고 나서 홀연히 사라진다. 물론 이 영화에선 인도영화답게 그 주인공이 마지막에 극적으로 다시 등장해 악당(차투르)을 통쾌하게 혼내주고 적(비루 총장)의 딸(피아)과 사랑까지 완성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해피엔딩을 이루는 구조를 만들 고 있다. 이런 식의 구성 역시 이 영화가 다른 어느 영화보다도 관객을 쉽게 끌어들여 공감시킬 수 있는 좋은 보조 장치가 되었다. 사실상 이 영화에서 가장 주를 이루는 장르는 풍자 코미디와 뮤지컬, 멜로, 그리고 미스테리다.
대다수의 발리우드 영화가 뮤지컬과 코미디, 멜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 단연 돋보이는 장르는 코미디로, 특히 모순과 위선 등을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가 강하다. 도입부에서 파르한이 비행기 타고 출장가다 친구 전화를 받고 아픈 척 연극을 해서 회항 시켜 내리는 에피소드와 라쥬가 전화 받고 나오는 장면 등부터 사소한 코믹한 상황 설정은 영화 종반까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작품의 수많은 코미디에서 주제에 걸맞게 가장 돋보이는 블랙 코미디 상황은 크게 세 장면을 들 수 있다.
첫째, 기계공학 수업시간에 란쵸가 기계에 대한 설명과 책에 대한 설명으로 교수와 대립하는 장면이다.(영화 시작 24분 지점) 교수가 란쵸에게 ‘기계’에 대해 정의해보라고 하자, 란쵸는 쉽고 일상적인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러자 교수는 학문적으로 정의하라고 하고, 모범생인 차투르가 교과서적인 전문용어로 설명하자 교수는 만족해한다. 란쵸가 이의를 제기하자 교수는 ‘점수 잘 받고 싶으면 책에 나온 정의를 써라’고 하면서 계속 반발하는 란쵸에게 나가라고 한다. 나가려던 란쵸가 멈춰 돌아오자 교수는 ‘왜 다시 들어 오냐’고 묻는다. 그러자 란쵸는 ‘뭘 두고 나왔다’고 말한다. 그게 뭐냐고 묻자, 란쵸는 ‘그것은 기록되고, 분석되고, 요약되고, 정리된 정보를 설명하고 논의하는, 그림이 첨부되기도 하고...’하는 식으로 장황하게 설명하자, 그게 뭐냐고 재차 묻는다. 란쵸는 간단하게 ‘책’이라고 하자, 학생들이 모두 웃는다. 교수는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없냐고 힐난하자 란쵸는 ‘아까 그렇게 했는데, 잘 안 되어서요’하면서 교수를 한 방 먹인다.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희극 일반을 하락, 강등(degradation)으로 정의 하면서‘정중한 어투를 일상적인 말로 바꾸면 희극이 될 수 있다. 때론 그 반대가 더 희극적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란쵸는 교수의 정중하고 공식적인 어투를 일상적인 어투로 바꿨다가, 그에 반발하자 이번엔 그 반대로 일상적인 것은 공식적으로 말하자 큰 코미디가 된 것이다. 그것은 교수와 아울러 그 학교 교육방식의 경직성에 대한 풍자로서 그것을 비꼰 주인공 란쵸의 행위는 웃음과 통쾌함을 준다.
둘째, 부정적인 학생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우간다 출신의 차투르가 힌디어에 약한 것을 이용해, 그를 혼내주기 위해 연설문 문구 ‘헌신’을 ‘강간’으로 고쳐서 비루 총장과 차투르를 비웃음 대상이 되게 한 연설 신이 그것이다.(영화 시작 55분 지점; 7분 정도 지속되는 장면) 차투르는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에 적극 동조하고 영합하는 인물인데, 그는 시험 기간 중 다른 학생들의 공부를 방해하기 위해 에로잡지를 몰래 넣는 등, 자신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자 란쵸 패거리는 그를 혼내주기 위해 마침 그가 스승의 날 행사에 대표로 연설하기로 되어 있는 걸 알고, 그가 우간다 유학생이어서 힌디어가 서투른 것을 이용해, 몰래 연설문의 글자 중 ‘헌신’이란 단어를 유사한 단어인‘강간’으로 바꿔치기 해버린다. 차투르는 그것도 모른 채, 사서가 써준 그 연설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채 통째로 외운 뒤, 교육부 장관과 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강당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그는 란쵸가 예상한대로‘헌신’이란 단어 대신 ‘강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말할 때마다 참석한 학생들은 웃는다. 여기서 코미디는 차투르가 그런 웃음의 진의를 모른 채 자신이 연설을 잘해서 그러는 것으로 착각하고 더욱 당당하게 말함으로서 확장된다. 그것은 관객과 등장인물 대다수는 알고 오직 말하는 당사자만 모르는 데서 오는 극적인 아이러니에 의한 코미디로서 란쵸의 의도대로 그야말로 ‘암기식 교육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셋째, 란쵸 패거리는 라주 아버지 병원 입원 문제로 밤 잠 못자고 시험 시간에 지각하게 된다. 그들은 시간초과 할 때까지 시험을 치룬 뒤 답안지를 제출하려는데, 담당 교수가 너무 늦었다며 안 받으려 한다. 그러자 란쵸는 그 교수가 자기들을 누구인지 모른다는 걸 확인한 뒤 시험지를 흩트려 놓고 도망가 버린다. 그 장면은 경직되고 고지식한 사고를 가진 교수를 풍자하는 코미디다.
이외에도 코미디 요소는 영화 전반의 모든 신에서 유쾌하게 활용된다. 비극적인 상황조차도 앤드루 호튼이 ‘희극(Comedy)과 비극은 각자가 다니는 길에서 종종 만나는 친한 사촌이다.’ 라고 했던 것처럼 코미디와 만남으로서 극적인 묘사가 훨씬 풍부해지고 있다. 가령 지독하게 가난한 라주 가족을 처음으로 소개할 때, 마치 옛날의 흑백영화를 보여주듯이 화면이 화려한 칼라에서 칙칙한 흑백으로 바뀐다. 몸져 누워있는 아버지, 돈이 없어 시집 못간 노처녀 누나, 모처럼 방문한 아들 친구들(란쵸, 파르한)을 대접하기 위해 죽을 끓이고자 밀가루 반죽하는 엄마의 찌든 모습, 이런 모든 게 비극이다. 그런데 라주 엄마가 누워있는 남편의 몸을 밀가루를 반죽하던 방망이로 긁어주는데, 거기에 털이 묻게 된다. 그 모습을 본 란쵸, 파르한이 기겁하며 저녁을 사양하는데, 비극이 갑자기 코미디로 전환되는 장면이다. 그리고 사소한 에피소드식 코미디는 주로 다양한 모티프를 이용해 반복되기도 한다. 소변볼 때 전기장치를 연결한 숟가락을 이용해 전기가 오르게 한다거나, 민트 소스를 이용해 피아 약혼자의 속마음을 폭로시켜 웃음거리로 만드는 경우가 그런 실례에 속한다.
미국영화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장르, 즉 이야기의 형식이 갖는 힘을 계속 활용한다는 것이다. 즉 장르는 공식 이상이다. 흔히 장르는 관객을 마음속으로부터 사로잡는 매력을 지닌 하나의 이야기 형태로 정의된다. 그런 점은 발리우드 영화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주지하다시피 뮤지컬과 코미디는 발리우드 영화를 특징짓는 핵심 장르다. <세 얼간이>는 그런 장르가 매우 세련되고 효율적으로 적용된 작품이다. 특히 뮤지컬을 결정짓는 춤과 노래의 세련미는 할리우드 영화를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최근 들어 산제이 릴라 반살리의 <블랙>(Black,2005)이나 <청원>(Guzaarish ,2010),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 2010, 감독: 카란 조하르)의 경우 여전히 배경음악으로서의 노래는 자주 등장하지만, 춤을 동반하는 뮤지컬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세계 시장을 의식한 스타일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발리우드 영화 스타일의 대세는 여전히 뮤지컬이다. 인도와 영국의 로케를 통해 완성해 영국과 미국에 진출해서도 크게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꼽히는 <까삐꾸시 까삐깜>( Kabhi Khushi Kabhie Gham ,2001, 카란 조하르 감독)이라는 영화는 출생의 비밀, 부모의 결혼반대로 인한 사랑의 도피, 형제간의 우정이라는 신파적 멜로를 다루고 있는데, 영화의 절반이 뮤지컬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또한 부모의 반대로 인해 사랑했던 여자와 결혼을 할 수 없게 된 연인 이야기로 우리의 고전 춘향전처럼 인기 있는 인도 고전을 각색해 큰 인기를 끈 <데브다스>(Devdas, 2002), 화려한 영화계의 사랑과 음모 및 복수를 다룬 파라 칸의 <옴 샨티 옴>(Om Shanti Om, 2007)등과 같은 영화들 역시 뮤지컬 장면이 5~ 6번 정도 나온다. <가지니>(2008)의 경우 3번 정도 등장하는데, 많이 절제한 편이다.
<세 얼간이>는 프롤로그에서 파르한과 라주 그리고 차투르가 란쵸를 만나러 가기 위해 출발하는 시점에서 노래와 함께 타이틀 백이 시작된다. 도입부에 나오는 주제 음악 ‘Behti Hawa Sa Tha Woh(그는 바람처럼 자유롭지)’는 가사가 주인공 란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것으로 그 노래와 선율이 매우 뛰어나다. 이 작품에서 마치 뮤직 비디오처럼 춤과 노래가 도중에 들어가는 뮤지컬은 총 2번 정도이다. 좀 전에 언급한 일반적인 발리우드 영화에 비해 뮤지컬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춤을 절제하는 대신 노래는 여전히 많이 나오고 있다. 가령 프롤로그나 라주가 병원에 입원할 때와 보로가 자살하기 직전 기타 치며 노래하는 장면은 노래가 나오며 영상 몽타주는 이뤄지지만 춤 장면은 없다. 그러한 춤의 절제는 영화의 나레티브와 캐릭터에 좀 더 집중하면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전략으로 보이고 그것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대신 두 번의 뮤지컬 씬은 발리우드 전형을 보다 세련되게 표현한다. 영화에 삽입된 뮤지컬들의 특징은 항상 코믹한 장면들이 들어가고, 동시에 스토리의 진행과 캐릭터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 뮤지컬은 사실상 관객들에게 긴장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다음 신으로 넘어가는 것을 부드럽게 하기에 영화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도 한다. 과거에 지나치게 많은 뮤지컬 신이 삽입됨으로서 발리우드 영화가 세계무대로 나가는데 다소 걸림돌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것을 절제함으로서 극적효과를 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발리우드 영화에서 뮤지컬의 춤은 테크닉과 안무가 점점 현대적이 되어가는 대신, 고전적인 면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많은 인도 사람들이 외국영화를 보고, 외국인들 역시 발리우드영화를 즐기면서 생긴 일이다.
인도 맛살라 영화에서 남녀 간의 사랑이나 가족 간의 애증 문제를 다룬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는 기본이 듯이 코미디가 강한 <세 얼간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우정, 사랑, 가족을 통해 다소 과잉이 될 정도로 멜로적 상황을 통해 관객의 눈물을 끌어내곤 한다. 상황으로 보면 다소 신파적이지만, 음악과 편집 및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덕에 비교적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발리우드 영화의 통속멜로는 기본적으로 관객들이 눈물을 자아내는 데 있다. <세 얼간이>에서는 그러한 지점은 여섯 군데 정도 된다.
첫 번째는 갑자기 라주의 아버지의 병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란쵸는 피아의 도움을 받아 급히 오토바이에 라주 아버지를 싣고 병원 내부로까지 가서 극적으로 응급치료 받게 하는 장면이다. 뒤늦게 달려온 라주는 란쵸가 자기 아버지를 오토바이에 싣고 왔다고 화를 내지만 의사가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험할 뻔 했다는 말을 듣고, 빨리 대처한 란쵸의 우정에 오히려 감동 받고 눈물을 글썽인다.(란쵸의 우정) 두 번째는 라주가 자살을 시도한 후 병원에서 그가 깨어나도록 란쵸가 병상을 지키며 애쓰다 결국 라주가 깨어나게 되었을 때다.(란초의 우정) 세 번째는 파르한과 대립하던 아버지가 화해할 때이다. 평소에 아들이 공학자가 되길 기대하던 파르한의 아버지는 파르한이 란쵸로 인해 진로를 바꿔 자기가 좋아하던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반대한다. 그러다 라주의 투신 사건이 있은 직후 집에서 다투다 결국 아들 파르한의 뜻을 받아들이며 ‘이제부터 네 인생을 살아라’고 말한다. 부자간에 극적으로 화해하는 장면이다.(부자 화해) 네 번째는 피아가 죽은 오빠의 문제를 꺼내며 아버지 비루총장에게 대들 때다. 란쵸가 라주를 위해 비루 총장의 시험문제를 훔쳤다가 들키게 되자 피아는 울면서 아버지 비루에게 대든다. 아빠 연구실의 키를 훔친 사람은 자기였고, 오빠도 그 키가 있었으면 살았을 거라고 말한다. 오빠의 미래를 아빠가 결정했고 그래서 문학을 하고 싶었던 오빠는 공대 입학 대신 죽음을 선택한 거라고. 한번이라도 공학자가 아닌 다른 것을 해도 좋다고 했으면 오빤 살았을 거라고 말한다.(부녀 대립) 다섯 번째 멜로 신은 영화에 절정에 해당하는 피아 언니의 출산 장면이다. 란쵸는 임신한 피아 언니가 폭우로 병원에 갈 수 없게 되자 학교에서 병원에 있는 피아와 원격 화상 대화를 통해 출산을 성공시킨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적대적이던 비루 총장과 란쵸가 극적으로 화해하고 가장 훌륭한 학생을 만나면 전해주려고 간직하고 있던 만년필을 란쵸에게 건내 준다.(사제 화해) 마지막 여섯 번째 멜로 신은 라스트 신에서 란쵸와 피아, 그리고 두 친구가 재회하는 장면으로 사랑과 우정을 동시에 완성시킨다. 눈물샘을 자극하진 않지만 마무리로는 적절한 멜로 장면이다.(사랑과 우정의 완성)
앞에서 언급한 여섯 군데의 멜로 신에서 두 개의 신을 빼고 나머지 멜로는 주로 란쵸의 희생과 우정에 의해 이뤄진다. 이 영화에서 진짜 뛰어난 점은 그러한 멜로와 코미디의 절묘한 조합이다. 물론 그 브리지(bridge) 역할 역시 란쵸가 한다. 영화 초반부에 란쵸와 그 친구들이 ‘알 이즈 웰’을 외치며 벌이는 활기차고 코믹한 뮤지컬에서 갑자기 보로의 자살 신으로의 연결되는 신, 란쵸와 파르한이 가난한 라주 집에 방문했을 때 우울한 분위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라주 어머니의 무심한 행동에 기겁하게 되는 코믹 신, 그리고 라주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할 때와 라주가 병원에 입원할 때 신, 파르한 아버지가 비로소 파라한을 이해하게 될 때, 특히 피아 언니가 출산한 직후 란쵸와 비루 교수가 화해하면 장면이 그런 예에 속한다. 그러한 신들은 코미디에서 바로 눈물을 자아내는 멜로로, 또는 극적인 멜로에서 바로 코미디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이 작품에선 다양한 모티프가 매우 효과적으로 반복 활용되어 캐릭터와 주제를 살려주고 있다. 대사의 모티프로는 주인공 란쵸가 힘들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마다 외치는 ‘알 이즈 웰’을 들 수 있다. 란쵸는 그 단어의 유래에 대해 “우리 마을에 경비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야간 순찰 때 ‘알 이즈 웰’이라고 외쳤다. 그래서 우린 마음 놓고 잘 수 있었지. 근데 도둑이 들었던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경비는 야맹증 환자였어. 우리는 그가 단지 ‘알 이즈 웰’이라고 외쳤을 뿐인데 안전하다고 생각한 거야. 그 날 난 깨달았어. 이 마음이란 건 쉽게 겁먹는다는 걸. 그래서 속여 줄 필요가 있어. 큰 문제가 생기면 가슴에 대고 얘기하는 거야.‘알 이즈 웰’그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용기를 줬지.”라고 얘기한다. 일종의 긍정적인 자기 암시로서 사용되는 ‘알 이즈 웰’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 is well that ends well)의 'All is well'에서 효과적으로 응용한 것이다. 소도구의 모티프로는 비루 총장의 ‘만년필’이 잘 활용되었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서 비루 총장은 과거에 자신이 학생시절 총장이 그 만년필을 뛰어난 학생인 자기에게 물려준 거라고 이야기 하면서, 자신도 그것을 훌륭한 제자에게 물려주고자 했으나 32년간 그 임자를 못 찾았고 말한다. 차투르 등 많은 우수한 학생들이 그 만년필을 물려받고자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영화 후반에 총장은 자신이 가장 문제아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했던 란쵸에게 감화되어 결국 그 만년필을 물려주게 된다. 그리고 ‘민트 소스’와 피아 약혼남 수하스의 ‘가격표’역시 영화에서 반복되는 소도구 모티프로 수하스의 전형적인 부르조아 근성과 물질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는 속물적인 요소를 폭로하는 효과적인 코미디 장치로 사용된다. 그 외에 차투르의 노상 방뇨 습관과 대학의 신고식 전통- 존경하는 선배 앞에서 팬티를 내린 채, 엉덩이를 내밀며 ‘위대하신 폐하님이여! 제 비천한 선물을 받아 주소서’를 외치는- 역시 영화에서 재미있는 코미디를 주는 행위의 모티프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는 교육자(비루 총장)가 오히려 학생(란쵸)에 의한 감화되고 변화된다는 플롯의 아이러니다. 차루트 입장에서 란쵸는 경쟁자이자 받들어 모셔야 할 인물(푼쿠스 왕두)이기에 캐릭터의 아이러니다. 피아 언니가 폭우로 인해 병원에 못가고 란쵸 등에 의해 위험한 출산을 하게 된 상황은 결과적으로 란쵸와 비루 총장의 화해를 가져온 계기가 되니 일종의 상황의 아이러니인 셈이다. 그 외에도 관객은 알고 등장인물은 모르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극적인 아이러니를 통해 많은 코미디 발생하고 있다.
반전 역시 내러티브를 보다 역동적이고 풍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극적 요소다. 이 작품에는 두 개의 대반전이 있는데, 그 모든 게 주인공 란쵸의 정체성과 관련이 된다. 하나는 영화 후반에 파르한과 라주가 란쵸를 만나러 그의 대 저택에 갔을 때 밝혀진다. 즉 란쵸가 실은 쵸테라는 부잣집 일 하는 아이였는데, 주인 댁 아들 ‘란쵸’가 공부를 못하자, 공학에 소질이 있고 공부를 잘한 쵸테가 그의 이름으로 대신 대학에 들어가 대신 졸업장을 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졸업식 때 찍은 단체 사진에 그들의 친구인 란쵸(쵸테)가 아닌, 낯 선 진짜 란쵸의 사진이 포토 숍에 의해 조작되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두 번째 대반전은 마지막 씬에서 주인공 란쵸인 쵸테가 또 다른 유명 인사 푼쿠스 왕두로 밝혀질 때다. 그 이전에 세속적인 성공을 꿈꾸는 차투르가 유명한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푼쿠스 왕두라는 인물을 만나 계약을 따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결국 그 왕두가 바로 진짜 학창시절부터 스스로 라이벌로 생각해 왔던 바로 그 란쵸(쵸테)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이러한 대반전은 스토리의 흥미를 보다 극적으로 끌어올리고 주제와 캐릭터를 크게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 얼간이>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에게 받은 영향은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라는 주제 외에도 주요 캐릭터들의 별칭인 ‘얼간이(idiots)’를 딴 제목에도 엿보인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갈구하라, 바보짓을 두려워 말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스티브 잡스는 과감히 대학을 자퇴했지만, 영화 속의 인물들은 어떻게든 졸업하고자 하는 점에서 다르다. 영화 속의 란쵸, 라주, 파르한은 대학을 학 한기 만에 자퇴한 스티브 잡스만큼 과감한 바보가 되진 못하지만, 대다수의 모범적인 명문 공대생들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바보짓을 서슴지 않는다.
영화에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세 얼간이 대학생은 란쵸와 파르한(Farhan Qureshi), 그리고 라쥬(Raju Rastogi)다. 물론 여기서 ‘얼간이’라는 말은 세 주인공에 대한 역설적인 별명이다. 규범에 순순히 종속되지 않고 반항을 일삼으며 자기들만의 자유로운 의지로 저항해 가는 그들에 대해 비루 총장을 비롯한 많은 교수, 학생들은‘idiots’(얼간이, 바보)라는 말로 비하한다. 하지만 영화 속 얼간이 캐릭터들은 실로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며, 감독이 관객에게 닮길 바라며 옹호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란쵸(Rancho)는 학교 사환인 밀리미터에게 공부하고 싶으면 교복을 하나 사서 그 학교에 들어가 청강을 하면 된다고 얘기한다. 그도 실은 알고 보면 청강생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란쵸의 캐릭터가 실제로 대학을 중퇴하고 청강생으로 잠시 다닌 적이 있는 스티브 잡스에서 많이 따왔음을 암시한다. 란쵸는 초반에 다소 그 배경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입학하자마자 신입신고식으로 기존 관습을 전수하려는 선배들을 엿 먹이고, 총장이나 교수들에게도 자신의 발언을 과감하게 함으로써 튀는 인물로 행동한다. 처음엔 동료인 파르한과 라주도 그에게 경계심을 갖다가 나중에 점차 그의 행동에 감화를 받고, 친한 동지가 되어 공모하며 똑같이 바보짓을 하게 되고, 비루 총장과 모범생인 차투르 등과 대립하게 된다. 그가 친구들에게 자주 반복해서 말하는‘알 이즈 웰’이나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이 자연스레 뒤따라온다.’라는 대사는 그의 캐릭터를 단정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반항은 막연한 것이 아닌 항상 유머와 긍정적인 행동을 동반하기에 밉지 않고 거부감이 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파르한(Farhan Qureshi)은 공학자가 되길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대에 들어와 공부를 하다가 란쵸의 영향을 받아 평소 꿈이었던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로인해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지만, 결국 란쵸의 도움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는 란쵸의 절대적 추종자이자, 그처럼 유머가 풍부한 친구 역할을 잘 수행하는 캐릭터다.
라쥬(Raju Rastogi)는 누나가 지참금이 없어 결혼을 못할 정도로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다. 그나마 우체국장 출신의 아버지가 병들어 어려운 상황이라 가족 모두가 라쥬의 성공만 바라보는 처지다. 그러기에 라쥬는 처음에 란쵸와 룸메이트이면서도 그의 행동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그런 그가 학교 시스템과 총장의 불합리한 행태를 등을 보면서 란쵸의 패거리에 끼게 되지만, 비루 총장이 낙제 위협과 친구 란쵸에 대한 밀고를 강요하며 몰아치자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다. 그는 신분상승을 꾀하는 하층민으로서 신파적인 멜로 역할을 담당하는 캐릭터로 잘 그려지고 있다. 그 역시 도입부에서부터 란쵸 소식을 듣고 바지도 안 입고 외출하기도 하는 다소 어리바리 한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시키는 재밌는 인물로 잘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세 얼간이와 대립하는 인물들(antagonists)은 차투르와 비루 총장, 그리고 피아의 약혼 남 수하스 등 셋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세 얼간이는 이들 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재미있게도 그들은 다 나름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차투르는 방귀를 소리 안 나게 잘 뀌어 ‘소음기’, 비루 총장을 그 이름을 따서 ‘바이러스’, 수하스는 사람을 그의 옷이나 물건의 가격에 의해 평가하는 속물이라고 해서 ‘가격표’라고 한다. 그들 중 차투르(Chatur Ramalingam)는 이 영화에서 세 얼간이와 수시로 갈등하는 또래 캐릭터로서 매우 잘 형상화 되었다. 그는 공대에서 원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자 비루 총장의 충고를 충실히 따른다. 그래서 1등이 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인간에 대한 평가를 미래에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느냐와 높은 직위에 올라가 있느냐고 판단한다. 자칫 규격화되기 쉬운 안티 캐릭터이지만, 이 작품에서 차투르는 주인공들의 활약상을 훌륭하게 뒷받침해 준다. 그는 우간다 출신의 인도 유학생으로 힌두어에 서투른 인물로 설정되어 영화 초반 스승의 날에서 란쵸 패거리에 의해 단어가 바꿔치기 된 연설문을 읽어 많은 웃음을 선사한다. 그 장면은 차투르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살리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의 빈번하게 방구 뀌고, 소변을 보는 습관은 세 얼간이에게 공격의 빌미가 되면서 많은 웃음을 선사하고 장르로서의 코미디를 확고히 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안티 캐릭터(antagonist)인 비루 총장은 란쵸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피아의 아버지이자 대학총장으로 란쵸 패거리와 사사건건 대립한다. 뻐꾸기 둥지를 예로 들어 약육강식을 주장하며 1등만이 기억하기에 모두 경쟁에서 이기라고 채찍질한다. 하지만 그의 교육방식은 란쵸의 반항에 부딪히고, 결국 란쵸가 자신의 딸을 출산의 위기에서 구해준 사건을 계기로 화해하고 오히려 그 자신이 변하게 된다. 둘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피아의 약혼남 수하스도 전형적인 속물로서의 역할을 코믹하게 해냄으로서 세 얼간이를 잘 보좌해 주고 있다. 물론 이 작품에서 비루 총장의 딸이자 란쵸의 연인 피아 역할을 무시할 순 없다. 그녀는 대립되는 두 집단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수하스와 란쵸 사이, 그리고 아버지 비루와 란쵸 사이를 줄타기 하는 피아의 매력은 성격 그 자체에서 보다는 뮤지컬을 통해서 드러난다.
<가지니>에서 적대자들(antagonists)인 가지니와 그의 부하들은 전형화 된 악의 대변자로서 비 호감 캐릭터였던 데 반해 <세 얼간이>에서 적대자들은 나름의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귀엽고 인간적이며 조금씩 변하기도 한다. 특히 모든 인물들이 각자 당대 정서와 집단을 대변하는 배경설정과 개성 넘치는 행동양식으로 인해 캐릭터가 생생하게 묘사 되었다.
<세 얼간이>편집은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게 세련되어 있다. 회상 방식으로 전개되는 스토리 구성도 좋지만, 매 장면에서 이뤄지는 컷 방식도 좋다. 도입부에서 라주와 파르한, 그리고 차투르가 란쵸를 만나러 차를 타고 가는 신에서 파르한의 내레이션에 의해 대학시절 회상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그 좋은 예에 속한다. 그 과정은 그림 1-1처럼, ① 차가 산 속 터널로 들어가는 장면 ➁자궁 속에서 수많은 정자가 난자를 향해 달리는 장면 ➂병원에서 아기 출산 ④아기를 보는 가족들 ➄파르한 신분증에 찍힌 임페리얼 공대 마크 ➅임페리얼 공대 정문 순서로 유사한 이미지와 내용을 매우 간결하고 효과적인 편집으로 묘사된다.
또 다른 뛰어난 편집의 실례로 라주가 비루 총장실에 불려가 마지못해 부모에게 학교에서 정학 당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쓰게 하고 친구 란쵸를 고발하게 할 때, 그 압박감에 못 이겨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라주는 투신을 하기 전에 그가 가족(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 가난에 찌든 어머니, 지참금 없어 시집 못간 누나)과 친구 란쵸가 플래쉬 백에 의한 흑백 영상으로 생각하는 게 보인다. 그 첫 번째 숏에서 라주는 힘들어하실 부모님을 상상한 뒤 앞으로 걸어가고, 두 번째 숏에선 걸어가는 그의 발에 갓등의 전선줄이 발에 걸리는 걸 보여주고, 총장이 면도하는 가운데, 창가에 서 있는 라주가 보인 다음, 면도하는 총장과 그 옆에 세워진 하얀 갓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네 번째 숏에서 갓등이 움직여 카메라 바로 앞으로 확 다가와 깨지는 모습을 통해 라주가 투신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숏에서 1층 바닥에 떨어져 누워있는 라주를 보여준다.(그림1-2) 이 모든 상황은 6컷에 의해 보여주는 데, 떨어지는 장면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갓등이 라주의 발에 걸려 떨어지는 과정에서 당겨져 카메라 바로 앞에서 깨짐으로서 그 효과를 훨씬 극적으로 전달한다.
이 영화에서 편집 스타일은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와 크게 다른 진 않다. 단지 기존의 인도 영화들에서 보인 상투적인 편집과 달리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촬영 역시 할리우드적인 세련미를 갖추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란쵸와 라주가 차를 타고 란쵸를 만나러 가는 여정을 헬기 숏으로 인도의 산악 도로의 풍경을 수려하게 찍는 거라든가, 란쵸의 학교 동료 조이 로보가 비루 총장으로 인해 자살한 장면을 보여줄 때 크레인 숏에 의해 보여주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장면 직후 로보의 방으로 달려가는 란쵸와 친구들의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한 것은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형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흐름상 매끄럽고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 인상적인 것은 가난한 라주의 집을 처음 소개할 때, 칼라를 갑자기 흑백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런 아이디어는 마치 동시대 임에도 불구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들어가는 듯이 보여줘 빈부 격차가 매우 심한 인도의 상황을 적절하게 풍자하면서 라주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대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 얼간이>의 시각적인 묘사는 오즈 야스히로처럼 정형화된 형식의 틀 속에 가두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르덴 형제처럼 다큐멘터리적인 리얼함을 강조하기 위해 핸드 핼드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상업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스토리를 최대한 관객에서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최선의 테크닉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극단적인 형식을 피한 그런 세련미를 추구한 촬영 미학은 이 영화의 컨셉트에서 최선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연출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분석해 본 영화 <세 얼간이>의 성공 이면에는 단지 발리우드 영화의 특징인 뮤지컬과 멜로, 코미디 등의 장르적인 세련미 외에도 뛰어난 작가, 촬영, 배우 등을 비롯한 고도로 전문화된 스탭들의 조화로운 협력 작업에다 감독의 캐릭터와 구성, 촬영, 편집 등을 다루는 고도의 연출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감독이 모든 것을 책임지다 시피 하는 작가주의 영화들과 달리 발리우드 영화는 전문화된 시스템이 영화산업을 얼마나 풍부하게 북돋는 역할을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인도 발리우드 영화의 공통된 특징이자 장점은 바로 ‘밝음’에 있다. 스토리 뿐 아니라 영상도 인물도 대체로 밝다. <세 얼간이>의 가장 두드러진 연출 특성은 바로 그런 발리우드 영화의 ‘밝음의 미학’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발리우드영화에서 보이는 내용과 형식의 지나치게 하향지향적인 유치함(도식화된 신파조 멜로)을 극복하고 있는 점이 눈여겨 볼 만 하다. 특히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이 보인다.’ 나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는 식의 주제는 낡은 관습이나 기존체제에 대한 반항을 유도함으로써 체제순응적인 기존 발리우드 영화들과 차별화 하고 있다.
<세 얼간이>는 서두에 언급한 발리우드 영화의 전형 네 가지 중 ‘대리만족, 엔터테인먼트, 현실도피’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의 특성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마지막 특성인 ‘마살라’적 요소야말로 차별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코미디, 액션, 멜로 뮤지컬, 미스테리, 서부영화 등 다양한 요소를 효과적으로 잘 버무려 대중영화로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 특유의 리듬과 정서를 보여주는 뮤지컬은 기존 발리우드처럼 지나치게 남발하지 않고 최소화 하는 대신, 이미 본문에서 예를 든 것처럼, 현대적 감각의 영상으로 잘 살리고 있어서 신세대 발리우드 영화로서 세계무대에서도 각광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물론 그러한 영화 <세 얼간이>도 옥에 티는 있다. 란쵸의 캐릭터가 그것인데, 스토리상으로 보면 그는 결과적으로 부잣집 아들의 이름으로 속인 상태에서 몰래 학교를 다녔고, 대신 대학졸업장을 따 줬기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는 일종의 사기행위의 범죄자인 셈이다. 그런 도덕적인 문제를 영화에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가 버린다. 실제 사회에서 그런 인물이 영웅으로 부각된다면 나중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단점은 워낙 강력한 이 작품의 낙천성으로 인해 쉽게 드러나지 않게 되는 데, 그게 어쩌면 발리우드 영화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발리우드 영화는 인도인들 뿐 아니라 주변 아시아 및 중동에까지 배급되어 그 지역 대중들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그런 상황은 마치 1950~ 6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와 매우 비슷하다. 발리우드 영화인들은 오늘날의 할리우드영화가 놓치고 있는 어떤 재미를 자신들의 영화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은 2012년 9월, 한국영화학회에서 발간한 등재지 [영화연구]지에 실린 논문을 부분적으로 수정해 정리한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