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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Che Oct 22. 2021

코엔 형제, 범죄 영화 연출의 비밀

코엔형제의 범죄영화들 2-1

영화는 거울이다(8) : 코엔 형제 감독의 범죄영화들


   <살인의 추억>(2003)과 <범죄의 재구성>(2004), <추격자>(2008)등의 성공 이후 우리 한국영화에서 범죄 영화는 인기 장르가 되어 한국영화 제작편수의 상당부분을 채우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범죄 스릴러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차별화된 범죄 영화, 소위 작가적인 스타일이 담긴 범죄 영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로 고민 하던 중 코엔 형제 영화에 주목하게 되었다.

   코엔 형제(Coen Brothers)는 미국에서 우디 앨런이나 데이비드 린치처럼 나름의 독특한 작가주의 스타일로 원하는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 극소수의 감독에 속한다. 1984년 <블러드 심플>로 데뷔한 이후 2016년 <헤일, 시저>까지,  일부 옴니버스 영화를 제외하고, 모두 18편을 연출한 조엘(1954년생; 뉴욕대 영화과) & 에단 코엔(1957년생; 프린스턴대 철학과) 형제는 타비야니 형제나 다르덴 형제처럼 감독에서 각본, 제작, 편집까지 대부분을 두 사람이 공동으로 작업해왔다. 그들은 할리우드에서 익숙한 코미디와 범죄, 갱스터, 느와르 등의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장르 관습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색깔을 가진 독특한 스타일로 기존 장르를 비틀어왔다

   그들 대부분의 영화에는 범죄 모티프와 코미디 요소가 공존한다. 가령 <파고>(1996), <바톤 핑크> 같은 범죄 영화에 코엔식의 유머가 들어있어 종종 웃음을 자아내는 반면, 코미디 영화로 분류되는 <아리조나 유괴사건>(Raising Arizona,1987),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2000) 등은 범죄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리조나 유괴사건>, <위대한 레보스키>(1998), <허드서커 대리인>(1994), <레이디 킬러스>(2004), <번 애프터 리딩>(2008) 등이 코미디라면, <블러드 심플>(1984), <밀로스 크로싱>, <바톤 핑크>(1991), <파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등은 범죄 영화에 속한다. 물론 보다 세부적으로 접근하자면 <블러드 심플>이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같은 범죄 영화는 서스펜스 스릴러나 느와르로, <밀로스 크로싱>(1990)은 갱스터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코엔 형제의 영화목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코미디보다는 범죄 장르에 가까울 경우 그의 개성 있는 연출 스타일이 빛났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코미디 영화는 독특하고 재밌긴 하지만 다소 가볍고, 형식적으로 다소 전형적인 반면, 범죄 영화는 다르다. 놀라운 데뷔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블러드 심플>이나 처음으로 깐느 영화제에서 작품상 및 감독상을 받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린 <바톤 핑크>, 그리고 독립영화 감독에 가까운 그들을 주류 영화감독으로 끌어 올리며 아카데미 감독상까지 받게 해준 <파고>,  다시 한 번 깐느에서 감독상을 받아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확인시켜준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는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석권한 <노인을 위한 나라를 없다>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코엔 형제의 범죄 영화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범죄 사건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접근하는 그들의 연출 스타일이 기존의 전형적인 범죄영화 장르에서 한 단계 성숙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감독이면서 안티 할리우드적인 그들은 부조리한 유머로 현대인의 어두운 내면을 일관되게 개성 있는 시각 스타일로 독창적인 범죄 영화를 만들었다.

   이 글의 주요 목표는 수년 동안 전형적인 연출 기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도대체 뛰어난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란 게 무엇인지 탐구해 보는 데 있다. 또한 코엔 형제의 범죄 영화 연출 스타일을 분석함으로써,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극소수 작품을 제외하고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의 아류로 채워지고 있는, 우리 한국의 범죄 영화 제작 경향에 일종의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실제 창작에 다소나마 적용할 수 있게 하고자 하는 게 이 글의 또 다른 목적이다. 한 감독의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해선 적어도 그가 연출한 3편 이상의 영화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여타의 감독들과 구별되는 특성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선 코엔 형제의 범죄 영화에 속하는 5편의 영화 <블러드 심플>, <바톤 핑크>, <파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을 중심으로 그들의 연출 스타일을 연구하고자 한다.


1. 코엔 형제의 범죄 영화 5편


   1)  <블러드 심플>(Blood simple, 1984)

한국에서는 <분노의 저격자>로 소개된 코엔 형제의 데뷔작 <블러드 심플>은 그야말로 기존 영화사의 도움 없이 장편영화 경험도 거의 없는 스탭들을 모아 만든 저예산 독립영화다. 단지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B급 영화로 만들었다는 그 영화의 결과는 예상을 뛰어 넘은 것이었다. <필름 코멘트>라는 잡지는 그 영화를 ‘과격하게 새로운 할리우드 영화’라고 했고, 뉴스위크지의 데이비드 앤센은 ‘<블러드 심플>은 근래 가장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스릴러이며 심술궂게 흥미진진한 살인사건 스토리’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렇다고 그 영화가 아주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감독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타의 매>(1941), <이중배상>(1944)같은 필름 느와르와 텍사스 고딕에 과장스런 B급 영화 정서로 겉치장한 그 영화는 온갖 영화 스타일과 레퍼런스들로 가득 찼다. 특히 히치콕, 베르톨루치, 피로 물들이는 영화들, 프리츠 랑, 그리고 오손 웰스의 절충적 혼합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탐정과 에비가 싸우는 장면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노골적으로 패러디하기도 하였다. 특히 로렌스 캐스단 감독의 <보디 히트>(1981)와 유사하게 ‘불륜을 저지른 여자의 남편 살해’모티프를 가지고 있는 이 영화의 기본 구조는 삼각관계다. 즉 바텐더인 레이와 사장인 마티, 그리고 마티의 아내 애비(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삼각관계의 축을 이루고, 그들 삼각관계를 이용해 개인적 욕망을 취하려는 나쁜 탐정 사립탐정 비써로 인해 코엔 식의 이야기 비틀기가 완성된 것이다. 이 영화 제목으로 사용된 ‘Blood simple’이란 대실 해밋의 소설 ‘피의 수확’에 나온 말로 ‘사람이 누군가 죽이고 나면 머리가 물렁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2) <바톤 핑크>(Baton Fink, 1991)

  연극에서 잘 나가던 희곡작가가 할리우드에 시나리오 작가로 팔려가서 겪는 악몽 같은 사건을 다룬 자기반영적인 영화 <바톤 핑크>는 감독 스스로는 90년대식 버디 무비라고 하는데, 범죄 스릴러, 공포, 블랙 코미디 등과 같은 다양한 장르로 읽힐 수도 있다. 그들의 연출 스타일이 가장 완성도 있게 표현된 영화중 하나인 <바톤 핑크>는 범죄 그 자체는 후반에 가서야 오드리의 죽음과 찰리의 살인을 통해 보여 지기에 심리 스릴러에 가까운 범죄영화다. 특히 이 작품은 강박증에 사로잡힌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로만 폴란스키의 <세입자>(1976, The Tenant)의 영향이 짙다.

3) <파고>(Fargo, 1996)

  <파고>는 미국의 한 지방에서 해결사들에게 부인을 납치시켜서 장인으로부터 몸값을 타내려다 엄청난 비극을 맞이한 남자의 실제 사건을 기초로 만든 영화다. 코엔형제는 실제 사건 스토리에는 강한 매력을 느꼈지만 디테일까지 재연하는 것엔 관심이 없어서 현장 취재는 거의 안했다고 한다. 원래 ‘납치’나 ‘불륜’코드에 관심이 많았던 그들은 그 작품을 극사실주의 스타일로 찍고자 작정한 듯, 이전 작품들의 다소 과장된 연출 스타일에서 벗어나 범죄를 다큐멘터리처럼 객관적으로 접근하려고 애썼다. 결과적으로 코엔 특유의 유머와 캐릭터에 대한 남다른 해석으로 인해 그 작품은 모처럼 대중과 평론 양쪽의 공감을 얻었다.

4)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The man who wasn't there, 2001)

  <블러드 심플>처럼 부정과 탐욕을 다룬 히치콕과 소설가 제임스 M.케인(James Mallahan Cain,1892년 ~1977) 에게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코엔 형제는 이 영화가 ‘평범한 중산층 사람들이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케인의 소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주인공이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게 살아가는 무능력한 사내인 경우가 많은데, 코엔 형제는 그러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관심이 갖고 출발한 영화다. <블러드 심플>이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기존 영화들의 관습을 많이 용용한 ‘다른 영화들에 대한 영화’라고 한다면,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비로소 자기만의 영상 스타일을 과시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5)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7)

   멕시코와 접경지대에 있는 텍사스에서 벌어진 범죄 사건이 그 주요 배경이다. 우연히 200만 달러가 든 가방을 줍게 된 한 카우보이가 뒤쫒아 오는 냉혹한 살인마를 피해 달아나는 여정을 그린 범죄 스릴러 영화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대강의 스토리로만 보자면 거액의 돈 가방을 놓고 쫒고 쫒기는 흔한 할리우드의 범죄 추격영화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나 미학적인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갈수록 흉악해져가는 무자비한 살인을 바라보면서 동시대의 암울함을 관조적인 시각으로 통찰하며 풍자하고자 한 코엔의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2. 코엔 형제의 연출 스타일 분석

   코엔 형제가 그들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데뷔작부터 현재까지 영화 연출 전반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었던 환경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수한 독립영화인 <블러드 심플>이 성공함으로서 지속적으로 그들만의 영화를 만들어 가며 스타일을 확립할 수 있었다. 기존 제작 시스템에 고용되어 관습을 따랐다면 현재의 스타일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막상 영화를 연출할 때는 외부의 관점과는 완전히 담을 쌓고, 중간 시사도 안하고, 진행 중에 공개하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중간에 남에게 보여주었다가는 정말 혼란스런 정보에 시달림을 받을까 겁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일반적인 할리우드나 최근 우리 한국 상업영화 시스템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 스타일의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각은 ‘도대체 뭐하자는 거지?’하며 난해하게 받아들이는 측과 역시 ‘신선하고 재밌다’ 라고 경탄하는 측으로 나뉜다. 물론 모든 코엔 형제의 영화가 그런 상반된 반응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블러드 심플>이나 <파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경우, 적어도 내용이 쉽고 재밌을 테니까. 하지만 그의 <바톤 핑크>와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와 같은 내러티브 스타일이 갖는 비관습성은 일부 관객들에겐 당혹스러울 수 있다. 사실 하나의 영화를 놓고 내려진 그런 식의 상반 되는 관객 반응은 자기 스타일이 강한 소위 작가주의 감독들 작품에서(한국으로 치자면 김기덕이나 홍상수 감독) 흔하게 볼 수 있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보편성에서 벗어난다는 것이기에 많은 대중을 끌어들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예외는 있다. 봉준호나 스콜세지가 거기에 속할 것이다. 물론 코엔 형제도 <파고>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와서는 자기 스타일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다 폭넓은 관객을 끌어들일 만큼 유연하고 완숙해졌다. 그동안 역설적으로 그들이 대중적인 취향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았기에 과거의 소설이나 기존 영화들의 부분적인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름의 스타일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이론가 데이비드 보드웰은 가장 좁은 의미에서 ‘영화매체의 테크닉에 대한 체계적이고 의미 있는 사용’을 ‘스타일’로 간주했다. 그 테크닉들은 폭넓은 영역에 속하는 데, 미장센(mise en scene)설정, 프레이밍, 초점, 색상조절과 영화 촬영등과 같은 여러 가지 요소, 그리고 편집과 사운드 등을 말한다. 스타일은 최소한 영화의 이미지들과 사운드들의 조직이고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영화감독들에 의해 이루어진 선택의 결과이다. 쉽게 정리하면, 감독의 스타일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1차로 설정되고, 구체적인 제작 단계에서 영상 테크닉에 해당하는 카메라, 편집, 사운드, 연기를 다루는 연출 방식에 의해 최종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1) 시나리오: 구성, 주제, 캐릭터, 극적 요소

   코엔 형제는 주로 자신들이 직접 쓴 창작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것도 다른 작가의 손에 거의 맡기지 않고 그들 형제들끼리만 작업을 해왔다. <레이디킬러스>와 최근에 만든 코맥 매카시(1933~)의 원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경우만 각색을 한 작품이다. 두 사람은 이 소설이 주는 인상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많은 대사를 책에서 그대로 가져와 썼고, 새롭게 상황을 만들기 보다는 각색 작업이 단지 ‘편집하고 압축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원작을 충실하게 영화화하였다. 코엔이 참고한 다른 작가 챈들러나 해밋, 케인의 소설들과 비교할 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지독한 염세주의가 깔려 있다. 그것은 코엔 형제가 이전까지 보여준 '운명론 혹은 냉정하면서도 따스한 낙관주의'와도 배치된다. 더불어 그들의 체질적인 유머감각 또한 그들의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기에 가장 정서적으로도 이질적이다. 하지만 영화 <노인을 나라는 없다>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엔 코엔식의 스타일 속에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각색 과정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유머를 살리고, 몇 가지 모티프와 일부 캐릭터들을 통해 그들의 이전 영화들 이미지를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스타일 강한 감독들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미 그 세부적인 연출 관련 설정들을 세팅하고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세부를 보면 스토리 구성 방식과 일관된 주제, 그리고 캐릭터 설정, 모티프와 아이러니 같은 극적인 요소들의 활용 방식을 통해 기초적인 스타일을 결정한다


2. 서사 구성, 내레이션, 해피엔딩 거부

   코엔 형제 영화는 대부분 서사적인 구성(plot)을 갖고 있다. 즉 <시민 케인>이나 <나쇼몬>처럼 과거와 현실을 몽타주로 보여주는 복합적인 구성보다는 시간 순서대로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상업영화의 거장 스필버그처럼, 그도 꿈 장면을 제외하고는 영화 도중에 잠깐 보여주는 플래쉬 백 장면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여기서 다루는 5편의 범죄 영화에서는 플래쉬 백이 전혀 없다.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플래쉬 백을 간혹 상황을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한 보충수단으로 활용하는데, 코엔 형제에겐 그런 장치는 오히려 작품 자체로 느끼는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대신 그들은 로베르 브레송이나 마틴 스콜세지처럼 내레이션을 즐겨 사용한다. 가령 주인공이나 영화 속의 한 인물의 시각에서 들리는 독백 같은 내레이션으로 프롤로그를 장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블러드 심플>, <아리조나 유괴사건>이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빅 레보스키>가 거기에 속한다. 사실상 그런 내레이션이 없어도 스토리 전개에 큰 지장이 없어 보이는데도 구태여 그것을 사용하는 이유는 나름대로 캐릭터나 영화 전체 분위기를 특별하게 끌고 가려는 코엔형제의 스타일 때문이다. (그런 내레이션의 효과는 <올드보이>와 유사하다.)

   그런 점을 제외하면 구성이 그다지 새로운 건 아니다. 데뷔작 <블러드 심플>의 경우 히치콕의 <사이코>나 클로드 샤브롤의 <부정한 여인>(1969, La femme infidèle)의 구성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특히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이나 범인과 싸우는 장면 설정이 그렇다. 그래서 그런 영화들처럼 극적인 몰입도가 강하다. 하지만 그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바톤 핑크>의 경우엔 구성이 남다르다. 라스트 신의 경우, 현실인지 주인공의 상상인지 판단하기 애매하게끔 설정하였다. 그런 구성은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도 일부 있다. 아내 도리스가 교도소에서 자살해 죽은 후, 교통사고가 난 주인공 에드가 집에서 아내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꿈 장면이 그렇다. 무엇보다도 그들 영화의 공통점은 관습적인 헤피 엔딩 대신 비극적인 결말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블러드 심플>에선 다 죽고 여주인공 에비만 살아남는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주인공 부부가 다 죽는다. <파고>역시 사건 장본인 가족은 어린 아들 빼고 다 죽는다. <바톤 핑크>에서 주인공은 살아남지만, 감옥 같은 영화사에 고용된 채로 암울하게 끝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주인공 가족은 다 죽는다. 코엔 형제는 관객의 판타지를 만족시키는 데 결코 순응하지 않고 허무한 결말을 통해 그동안 펼쳐진 이야기를 생각하게 만든다.

3. 주제- 인간 본성 탐구, 탐욕이 부른 비극

   감독의 스타일을 결정하는 단일요소로는 아마도 주제(subject matter)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진정한 영화작가라면 주제의 선택이 곧 그의 스타일을 결정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감독이 연출한 여러 편의 영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작품의 전체를 관류하는 공통된 주제’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코엔 형제는 기존 범죄 영화 장르와 달리 단순한 흑백논리로 선악을 규정짓지 않으면서 인간의 본성 탐구에 관심이 많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 아내의 불륜상대 데이브와 처남이 주인공인 이발사 에드를 때리면서 소리치며 말하는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라는 대사처럼 인간의 정체성도 집요하게 추구하고자 한다. 그의 범죄 영화의 또 다른  핵심 주제는 평범한 인간의 사소한 욕망이 부르는 참극, 또는 허무함이다. 그는 각 영화의 주인공들로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을 내세우고 있는데, <블러드 심플>에서는 바텐더 레이, <바톤핑크>에서는 극작가 핑크와 보험외판원 찰리, <파고>에선 차량 판매원 제리,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이발사 에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사냥꾼 모스가 바로 그런 인물들이다. <바톤 핑크>의 주인공 핑크가 작가로서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은 ‘보통사람들의 삶’ 이라고 대놓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가 보통 사람의 표상이라고 생각했던 호텔 옆방의 찰리는 나중에 알고 보면 연쇄살인마로 드러난다. 단순히 현재의 지겨운 일상의 반복에서 탈출하고자 시도한 이발사 에드의 욕망은 결과적으로 여러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온다. 평범한 사냥꾼이던 모스는 우연히 발견한 돈 가방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그 자신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

   <블러드 심플>,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같은 영화는 고전적인 탐정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것은 단지 소재와 캐릭터 및 분위기일 뿐, 시각적인 정서나 주제의식은 느와르 영화와 가깝다. 코엔 형제는 그들의 정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코엔 형제가 단순한 인간 유형 탐구를 넘어 허무주의로 변한 것은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다. 사건의 극적인 전환에 힘입어 중간에 끼어들었던 경찰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의 입장으로 시점이 바뀌게 되면서 영화는 사람을 숨 막히게 하던 스릴러의 면모에서 허무주의가 짙게 깔린 드라마로 방향을 급선회하곤 한다. 코맥 매카시의 염세주의를 끌어안으면서 코엔 형제는 좀 더 원숙해진 것이다. 과거보다 훨씬 말을 아끼고 있지만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말한 대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시간, 공간, 캐릭터, 도덕적 선택들, 비도덕적 확신, 그리고 인간 본성과 운명에 관한 더없이 훌륭한 환기”다. 영화 전체를 휘감고 있는 분위기는 묵시록적이다. 쫓고 쫓기는 두 남자의 대결을 보면서도, 서스펜스 그 이상의 정서적 충격을 받는 것은 바로 그러한 분위기에서 나온다. 피를 흘리며 국경을 넘으려던 모스가 마주치는 아이들의 생경한 눈빛, 그리고 부상을 입고 뼈가 튀어나온 채로 꼬마 아이들과 마주하게 된 쉬거의 앙상함, 그리고 맞서봐야 재앙을 맞이할게 뻔한 범죄 행위를 보고서도 결국 자신이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벨의 처연함은 그 자체로 역사의 풍경과도 겹친다. 감히 코언 형제 영화의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폐쇄공포증의 관점, 즉 일정한 공간이나 상황에 갇혀 느끼는 공포증에 대한 시각에서 보자면 어쩌면 이 영화는 <블러드 심플>이나 <파고>가 아니라 <바톤 핑크>(1991)와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코맥의 주제가 매우 흥미로웠다 .‘이게 바로 세상이고, 아무것도 새로울 건 없다’ 는 느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대해 갖는 평범한 기대를 절대로 충족시키지 않으면서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장르를 차용한 소설이다. 그리고 유머도 훌륭하다. 물론 우리가 이걸 유머러스하다고 부르긴 힘들겠지만. 어쨌거나 피가 낭자한 폭력적인 소설이고, 그러다보니 영화 역시 우리 영화중에서 가장 폭력적인 영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조엘 코엔의 말처럼 인간에 대한 본성 탐구는 결과적으로 현대에 대한 분석이 된다. 특히 그러한 주제는 강력한 범죄의 노골적인 묘사를 통해 전달된다. <블러드 심플>에서 넓은 논 가운데서 생매장하는 장면, <파고>에서 시체를 분쇄기에 가는 장면,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 칼로 목을 찌르는 장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산소통을 이용해 무고한 사람의 이마를 뚫어 죽이는 장면, 그런 식의 피가 낭자한 폭력적인 상황을 통해 코엔 형제는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체험하게 해준다. 그들은 단지 자극을 주기 위해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잔혹한 장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전형적인 B급 슬래쉬 무비나 하드고어 영화완 달리, 결정적인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한두 번 정도만 직설적인 묘사를 할 뿐이다.  (이어서 다음 편에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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