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형제의 범죄영화들 2-2
코엔 형제의 범죄 영화 속 주인공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인물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기본 위치에서 이탈하면서 극적인 스토리가 엮어진다. 대부분의 사건들이 어떤 외부적인 요인보다 각자의 캐릭터로 인해 갈등이 시작된다. 그들은 보통 사람이 탐욕에 의해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를 끔찍한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블러드 심플>의 드라마를 움직이는 캐릭터는 사립탐정 비써다. 그가 단지 불륜 남녀의 뒤를 캐고 난 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직업의 본분에 충실했다면 스토리 전개는 밋밋해졌을 것이다. 그가 욕심을 부려 더 많은 돈을 차지하기 위해 의뢰인을 죽이고 그의 아내에게 범행을 뒤집어씌우려는 나쁜 탐정이 되었기에 얽히고설키는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코엔 형제는 평범한 캐릭터에 어긋난 욕망을 부여함으로써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들은 영화의 주인공을 이용해 인간 본성을 실험하듯 딜레마에 빠뜨리고 결국엔 잘못된 선택을 하게함으로써 고난을 겪게 만든다.
<바톤 핑크>가 바톤 핑크라는 한 남자의 내면 풍경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찰리는 바로 핑크의 또 다른 캐릭터의 구현이다. 즉 보통 사람의 전형 같지만 알고 보면 사이코 살인마인 찰리의 캐릭터는 핑크 내면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감독은 단지 핑크 내면의 이드(초자아)를 찰리라는 캐릭터를 등장 시켜 보여준 것이기에 결국 핑크와 찰리는 일란성 쌍둥이나 마찬가지다.
<파고>에서 자동차 외판원을 하던 제리 룬드가드가 평소대로 장인 밑에서 자동차 판매원으로 만족하며 지냈다면 주변 사람들이 아무도 죽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 가정 또한 행복했을 것이다. 그는 결코 그릇이 큰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의 사업을 하고 싶고 장인으로부터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엉뚱한 범행을 생각하게 되고, 그로인해 엄청난 불행을 가져온다. 그의 성격은 사실 그런 큰 범행을 도모하기엔 너무 즉흥적이고 계획성이 부족하다.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엄청난 결과에 대해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그냥 도피해 버리는 단순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가 경찰 마지와 이야기하던 중 자신의 논리가 딸리자 일방적으로 말도 않고 나와 도망쳐 버림으로서 자신이 범인이라는 확증을 심어주고 만다. <파고>속에 등장하는 다른 범인들(납치범들) 역시 제리와 유사하게 단순무식하다. 그런 유사한 문제를 지닌 사람들이 부딪히는 과정이 무척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다. 코엔 형제는 의도적으로 악한의 모습을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빈틈이 없는 초특급 프로페셔널로 그리는 할리우드 진부함에 반기를 들고 싶은 욕구 때문에 단순한 캐릭터들을 만들었다 한다. 그러기에 그들의 영화는 장르 관습보다는 실제 삶에 더 가까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파고>에서 새로운 캐릭터는 단연 경찰 마지 군더슨(프란시스 맥도먼드)이다. 그녀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라비스 비클,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할(Hal)처럼 관객의 뇌리에 이름을 남긴 몇 안 되는 캐릭터중 하나다. 그들이 등장한 영화는 캐릭터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가에 의존해서 전개된다. 마지는 일반 범죄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이쉬하고 날렵한 그런 여경 캐릭터에서 한참 벗어난다. 임신한 몸으로 느리게 움직이고 천천히 말하지만 현장분석력이나 침착성은 아주 뛰어나 결국은 범인을 잡아낸다. 특히 그녀와 그녀 남편의 부부애가 가득한 관계 묘사는 영화 스토리완 상관없이 일상의 리얼리티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들 부부가 없었다면 <파고>는 볼품없는 유머로 장식된 B급 범죄영화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마지에게 보내는 사랑의 방식이 <파고>를 구해냈다. 마지는 영화에 촉매제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주인공 에드 크레인은 평범한 이발사인 듯하지만, 다소 색다른 구석이 있는 캐릭터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을 알면 당장 싸우고 이혼, 또는 소송을 벌이거나 이마무라 쇼오헤이 작품 <우나기>(1997)의 주인공처럼 아내를 죽이거나 할 텐데, 에드는 막상 그 부분은 모른 채 하고, 대신 그 불륜 상대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다. 그는 시종일관 마치 실존주의 소설 『이방인』(까뮈 작)의 주인공 뫼르쏘처럼 행동하다 사람을 죽이고, 막상 자기가 죽인 사람에 대한 살인죄가 아닌 다른 사람의 죽음에 엉뚱한 누명을 쓴 뒤 감옥에서 사형 당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평범한 사냥꾼 모스가 우연히 발견한 거액의 돈 가방을 발견하고 그것을 탐내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의 캐릭터엔 이전의 <파고>의 주인공들처럼 단순하면서도 좀 미묘한 구석이 있다. 사실 그가 사소한 양심에 얽매이지 않았어도 무서운 살인자에게 쫒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돈 가방을 발견하기 직전 멕시코 남자가 죽어가면서 물을 달라고 하지만 주지 못했던 게 걸렸던지, 한 밤중에 물을 갖다 주러 갔다가 가방을 찾으려 하는 악당들에게 발각되어 영화 내내 쫓기게 된다. 그는 철저한 욕망의 화신이 되지 못함으로서 악당과 맞붙어 보지만 결국 그의 손에 죽게 된다. 그도 역시 제리 룬드가드처럼 나쁜 짓을 하기엔 너무 평범하고 단순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코엔 형제가 애용하는 스타일의 캐릭터이긴 하지만 냉혹한 살인마 안톤 쉬거로 인해 상대적으로 평면적으로 보인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단연 안톤 쉬거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쉬거의 캐릭터는 돋보인다. 이전의 유사한 캐릭터인 사립탐정 비써나 연쇄살인마 찰리, 그리고 얼뜨기 납치범들과 달리 완벽하게 악당의 역할을 해낸다. 또한 그는 기존의 전형적인 악당과 달리 나름대로 살인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행동을 가로막는 사람은 닥치는 대로 죽이지만, 무고한 사람을 죽일 때는 반드시 동전을 던져 상대의 운명을 결정한 뒤 죽인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 선악의 개념은, <다크 나이트>(Dark Knight ,2008)의 하비 덴트(투 페이스)처럼, 단지 동전 던지기만큼이나 운명적인 선택일 뿐이다. 무표정, 차분한 말투, 동전 던지기, 죽음의 도구 산소통 등으로 창조된 안톤 쉬거라는 캐릭터는 <세븐>(1995)의 존 도우만큼 철학적인 살인마까지는 아니지만 분명 코엔 형제 감독의 철학을 일정 정도 대변하는 캐릭터 역할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는 보통 사람들이 탐욕으로 어긋나는 순간 덮쳐오는 악몽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를 극적으로 강화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모티프와 아이러니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모티프가 주인공이 억울하게 뒤집어 쓴 ‘누명’과 주인공들의 '현기증, 관음증, 사이코, 도벽' 등과 같은 ‘심리적인 장애’라면, 코엔 형제의 범죄영화는 주로 ‘탐욕 ’과 ‘오해 또는 어긋남 ’이다. 가령, <블러드 심플>은 두 남녀(레이와 에비)의 성적 욕망으로 인한 불륜과 돈에 대한 탐욕으로 불륜 조사를 의뢰받은 사립탐정 비써가 에비의 남편 마티를 죽이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건 전개는 불륜 당사자인 레이가 우연히 마티의 시체를 발견하는 데, 그를 아내 에비가 죽인 것으로 오해하고 몰래 처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에비 역시 레이가 남편을 죽였다고 오해한다. 비써 또한 자기가 죽인 시체가 사라지자 그가 살아있다고 오해한다. 결국 각자의 욕망과 오해로 인해 관련된 네 사람 중 세 사람이 죽고 한명만 살아남게 된다. <파고>와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노인을 나라는 없다>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가 돈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 사건이 벌어진다. <파고>는 게리라는 차량판매원이 청부업자들에게 아내를 납치하게 해서 장인에게 몸값으로 거액을 뜯어내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미 주인공 게리가 청부를 맡긴 직후에 장인으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게 되자 납치 청부를 취소하려 하지만 그들과 연락이 안 되는 어긋남이 시작된다. 여기서 어긋남이란 ‘예상과는 달리 진행되는 상황’이다. 결국 아내는 납치되어 버리고 그런 상황에서 몸값 일부를 빼돌리기 위해 자신이 직접 그 돈을 전달하려는 계획도 장인이 직접 납치범을 만나겠다고 고집 부리는 바람에 어긋난다. 그런 식으로 사건이 계속 꼬이면서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욕망으로 인해 어이없게도 무고한 사람들 5명과 1명의 범인이 죽게 된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된다. 이발사 에드(빌리 밥 손튼)가 새로운 사업을 해볼 욕심으로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에드와 아내, 그리고 불륜남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꼬이게 된다. 그 남자를 죽이게 되는데 엉뚱하게 아내가 살해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자살하고, 주인공 에드는 자신이 죽이지도 않은 사람 때문에 누명을 쓰고 사형 당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역시 주인공 모스가 우연히 발견한 돈 가방에 욕심을 갖고 소유하려다 그 뒤를 쫒는 살인자에 쫓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모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모스가 그 돈 가방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들이다.
‘추격’은 코엔 형제가 즐겨 사용하는 상황의 모티프이다. 범죄 영화 뿐 아니라 <아리조나 유괴사건>이나 <번 애프터 리딩>, <오, 형제여 어디에 있나>같은 코미디에서도 쫒고 쫒기는 추격전은 자주 사용된다. <블러드 심플>에서는 사립탐정과 불륜 부부 사이에서, <파고>에선 경찰 마지와 게리, 납치범들 사이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모스와 살인자 안톤 쉬거, 그리고 경찰 사이에서 추격전이 벌어진다. 아이러니의 활용은 코엔 영화에서 필수적이다. 그의 모든 영화에선 극적 아이러니나 상황의 아이러니가 중요하게 사용된다. 가령 <블러드 심플>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긴장감과 재미는 주로 관객은 알고 있지만 각자 등장인물들은 모르는 데서 오는 극적인 아이러니로 인해 발생한다. 불륜 커플 레이와 에비가 서로 상대방이 남편 마티를 죽였다고 의심하며 행동할 때가 그 실례다. 특히 <바톤 핑크>는 캐릭터의 아이러니가 강하다. 즉 평범한 사람의 표상이라고 생각했던 옆방 남자 찰리가 알고 보니 경찰에게 쫒기는 연쇄살인마라는 설정이 그렇다. <파고>와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단순히 몇 푼의 돈에 욕심내다 자신의 목숨과 주변 사람들을 잃게 되는 여러 인물들의 상황이 일종의 아이러니다.
스타일의 시각적 요소에 관한 한 카메라에 의한 촬영기법이 무엇보다 우선한다. 촬영 기법은 크게 화면 구도와 카메라 움직임, 화면색조(및 조명)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촬영 감독을 선택하기에 우리는 영상철학에 대한 감독의 능력과 촬영 감독의 능력이 하나인 것으로 가정하거나 심지어는 영화의 영상 스타일이 결국은 감독의 스타일이라고 일단 간주한다. 코엔 영화의 촬영은 초기작 3편은 배리 소넨필드(Barry Sonnenfeld, 1953-)가 맡았다. 그는 화려한 카메라 기교가 특징이었는데, <아리조나 유괴사건>에서 아이의 시점으로 흔들리는 화면, 슈퍼마켓의 놀라운 추격 장면, 그리고 <밀로스 크로싱>의 부드럽고 세련된 카메라 워킹은 모두 그의 솜씨다. 특히 블랙 코미디적인 감각에서 코언 형제와 교감을 형성했다. <블러드 심플>이나 <아리조나 유괴사건>은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의 영향을 받아 바닥을 기는 듯한 느낌을 주는 스테디 캠이란 장비를 활용한 숏이나 트랙킹 숏 등 역동적인 장면이 많다. 코엔 형제는 데뷔할 때, 자기 영화 비주얼의 롤 모델로 삼았던 베르톨루치의 <순응자>(Comformist,1970)와 캐롤 리드의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 1949)를 많이 봤다고 한다. 그런 고전 작품이 그랬던 것처럼 코엔 형제도 시각적 묘사를 위해 조명을 매우 중요시 했다. 그런 비주얼은 이후에 <시드와 낸시>(1986)의 촬영으로 할리우드에 알려진 로저 디킨스 촬영 감독과 작업했던 <바톤 핑크>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두 작품은 철저히 표현주의적인 조명으로 <제 3의 사나이>를 많이 응용하고 있다. 컬러로 촬영하고 흑백으로 프린트한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동시대의 분위기를 1940년대에 유행한 느와르적인 분위기로 잘 표현하고 있다. 코엔 형제의 카메라 특징 중 또 하나는 망원렌즈보다 광각 렌즈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광각렌즈가 카메라 움직임을 훨씬 더 역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그들은 40미리 보다 더 긴 렌즈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을 정도다. <파고>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카메라가 철저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물러난다. 극단적인 리얼리티에 대한 실험인 것이다. 두 작품을 통해 코엔 형제의 시각적 스타일은 다소 변한다. 인공조명을 중시하던 분위기에서 자연조명과 있는 그대로의 다큐멘타리적인 비주얼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코엔 형제는 처음에 <파고>를 다른 영화보다 심플하게 촬영하기로 하고 촬영 로저 디킨스와 오랜 대화 끝에 모두 고정 숏만으로 촬영하기로 했다가 그건 너무 순수한 태도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들어 조금씩 움직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전에 한 것과 같은 양식화된 카메라 움직임을 원치 않았고,. 액션을 강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듯이 초기작품에선 다소 주관적이었던 카메라가 후기 작품에선 관찰자 시선으로 물러난다. 하지만 전반적인 코엔 형제 영화 카메라의 두드러진 특징은 <밀로스 크로싱>과 <바톤 핑크>에서 보이는 유연한 스테디 캠 숏이다. 가령, 핑크가 자신의 숙소에 찾아온 빌 메이휴의 정부 오드리와 사랑을 나눌 때, 카메라는 그들의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슬그머니 스태디 캠에 의한 롱 테이크로 화장실 쪽으로 향하더니 세면대 안의 수채 구멍 속으로 쑤욱 들어간다. 정사 장면을 카메라 테크닉으로 대신한 그런 장면은 코엔형제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하는 유용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은 리얼함을 강화시키기 위해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처럼 거친 핸드 핼드를 사용하지 않고, 현대 할리우드 영화들처럼 뮤직 비디오 같은 현란한 카메라 기법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할리우드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망원렌즈조차 그는 지나치게 배우를 강조하는 기법이라 하여 거부한다. 그는 요란하지 않은 방식으로 주관성과 객관성을 절충시키며 캐릭터와 주제를 서서히 몰입하게 하는 카메라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샘 레이미(Sam Raimi)의 공포영화 <The Evil Dead>(1983)에서 편집조수 경력으로 본격적인 영화경력을 시작한 조엘 코엔의 편집 스타일은 의외로 고전적이다. 그들의 작품은 현대 영화에서 흔하게 유행한 고다르식의 점프 컷이나 요란한 플래쉬 백 스타일의 편집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가령 <바톤 핑크>에서 핑크가 타자를 글을 쓰다가 헐렁한 구두에 발을 넣는 걸 클로즈 업으로 보여준 다음, 옆방 찰리가 뒤바뀐 핑크의 신발을 들고 나타나는 숏으로 연결하는 식으로 앞 장면과 다음 장면의 연결을 부드럽게 해주기 위해 동일한 모티프나 사운드를 이용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편집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 식의 편집을 통해 역시 고전적인 생략법을 잘 활용한다. 가령,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국도 장면에서 살인마 안톤 쉬거가 우연히 만난 농부의 닭장차를 보며 ‘저 닭장 좀 치워 주실래요?’하고 나면, 바로 다음 장면에서 바로 쉬거가 세차장에서 닭장차 뒤를 씻고 있고 남은 닭털이 휘날리는 것을 보여준다. 즉 중간에 그가 농부를 살해하고 트럭을 빼앗은 상황을 생략한 편집이다. 관객은 이미 그가 이전에 비슷한 상황을 본 적이 있기에 구태여 또다시 그의 살해 장면을 안 봐도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삭제한 것이다.
코엔식의 우아한 고전적인 편집의 특징은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에드 크레인의 자동차 사고 장면에서 매우 잘 표현되었다. 평소에 에드가 피아노 재능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버디라는 소녀와 차를 타고 숲길을 지나가다 그 소녀의 갑작스런 애정표현에 당황하며 앞에서 마주 오는 차를 피하려는 에드의 표정에서 시작되는 사고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인 사고 장면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코엔식의 편집은 전형적인 빠른 편집과는 달리 약 1분에 7숏(shot)정도의 다소 느린 속도로 이뤄진다. 이 장면의 편집에서 특이한 것은 사고의 장면에서 바로 에드가 죽은 아내에 관한 꿈으로 연결한 뒤 병원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편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마치 현실인 듯이 은연중에 보여지다가 나중에 갑자기 화면이 다시 블랙이 되어 중단되고, 좀 전에 사라졌던 바퀴의 휠이 검은 화면 저쪽에서 나타나 화면을 꽉 채우는가 싶더니 그 휠이 점차 의사가 머리에 쓰는 반사경의 형태로 변하고 카메라가 서서히 빠지면 의사가 사고 난 채 의식을 잃은 에드를 깨우는 모습이 보인다.
이미 언급했듯이 휠과 반사경의 같은 모양(원형)을 이용해 숏을 연결하는 고전적인 편집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그 중간에 꿈 장면을 끼워 넣는다거나, 코엔 특유의 자의식적인 내레이션을 넣는 식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고 있다. 거기에다 슬로우 모션과 잦은 디졸브 활용, 갑작스런 블랙 화면 사용, 스크류식 회전 카메라는 사고 장면을 더욱 스타일리쉬한 느낌으로 표현한다. 물론 코엔의 이런 편집 방식이 모든 작품에 동일하게 적용되진 않는다. 그는 작품의 주제나 캐릭터에 따라 편집의 속도나 분위기를 달리한다. 가령 극 사실주의를 표방한 <파고>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디졸브나 슬로우 모션, 스크류식 회전, 자의식 강한 스태디 캠 카메라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카터 버웰은 <블러드 심플>부터 거의 빠짐없이 코엔 형제 영화의 음악을 맡았다. 코엔 형제는 본래 실제 창작곡보다는 영화의 정서를 표현하는 음향 효과적 접근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그런 면에서 카터 버웰이 잘 맞았다. 실제로 코엔 형제는 영화에서 현장에서 들리는 백 뮤직을 제외하고 영화음악을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카터 버웰이 참여하지 않은 유일한 영화인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를 제외하고는 노래 가사가 영화 속에 들어간 경우도 거의 없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테마음악인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도 영화 속 인물인 버디가 피아노로 치는 곡이기에 변주해서 모티프로 사용했을 뿐이다.
그는 주로 음향효과로 음악을 대신한다. 가령 <바톤 핑크>는 파도, 타자, 전화벨 소리나 벽지가 뜯어지는 소리 등의 실제 사운드와 음향효과에 가까운 리듬만을 사용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그나마도 어떤 음악이나 악기를 사용한 음향효과가 없다. 대신 모든 걸 실제 사운드로만 활용할 뿐이다. <터미네이터>의 추격 신처럼 긴박감 넘치는 추격 장면마저도 별도의 효과음이나 BGM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음악은 단지 라스트 타이틀 신에서만 사용한다. 유사하게 극 사실주의를 추구한 <파고>에서도 효과 음악만큼은 빈번히 사용했는데, 그 작품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음악 없이 오직 음향 편집을 통해 연기와 표정, 대사와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놀라운 극적 긴장감을 탄생 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벤 월터스는 “사운드 편집은 획기적이며, 카터 버웰이 맡은 음악은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미묘할 것이다. 바람소리의 사용에 대해서만도 논문 하나는 거뜬히 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코엔 형제는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인위적인 음악이나 음향효과 대신 ‘현장 사운드’만 가지고도 극적인 긴장감을 실감나게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코엔 형제는 데뷔작을 만들 때만 해도 사실상 연기 연출에 대한 경험도 없고, 어떻게 배우를 다뤄야 할지 난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시나리오속의 캐릭터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연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즉 배우와 일하는 것은 일종의 쌍방향 시스템이기에 감독은 배우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잘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배우가 그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자기 속에서 끌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코엔 형제의 범죄 영화들 속에서 배우들은 감독의 연기와 관련한 사전 지식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바톤 핑크>에서 존 터투로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빌리 밥 손튼, 특히 <파고>에서 프란시스 맥도먼드와 윌리엄 메이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하비에르 바르뎀 등의 연기는 그 집중력과 개성, 그리고 캐릭터 구현력이 매우 뛰어나다. 조엘 코엔은 연기자들에게 촬영 중에 애드리브(즉흥 연기)를 잘 허용하지 않는 대신, 배우에게 뭔가를 끌어내기 위해 리허설 할 때만 애드리브를 인정한다.[12]
사실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상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어야 하고, 그런 다음 그 캐릭터에 맞는 연기자를 잘 캐스팅 하는 게 중요하다. 감독의 연기 연출은 사실상 캐스팅 단계에서 시작되고, 캐스팅 후 촬영하기 전 시나리오 강독 단계에서 감독과 배우의 교감을 통해 사실상 완성된다. 물론 그 단계에서 배우의 의상 설정, 코디네이션, 소도구 활용 등이 포함된다. <양들의 침묵>의 렉터 박사 못지않게 뛰어난 악역으로 평가 받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냉혈 살인마 안톤 쉬거의 탄생은 원작의 힘과 그 캐릭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 의 연기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선택한 코엔 형제 감독의 연기 연출과 캐스팅의 힘이 크다. 도덕성의 문제를 두고 영화에서 팽팽한 긴장을 자아내는 안톤 쉬거는 기이한 산소통 살인마이다. 독특하리만치 어두운 이 캐릭터는 강렬함의 극단에 서 있다. 원작에서도 그렇듯 그는 유머감각이 거의 없는 썰렁한 인물이다. 아무런 배경도 언급되지 않고 동기도 묘사되지 않는다. 그저 외국인이라는 것 정도만 암시된다. 코엔 형제는 그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그의 헤어스타일을 마치 여자 단발머리 분위기의 가발처럼 다소 촌스럽게 설정했는데, 그게 오히려 그 캐릭터를 독특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영화 속에서 어떤 악당이나 살인마도 그런 스타일의 머리를 한 적이 없었다. 코엔 형제는 그 헤어스타일을 안톤 쉬거가 살인자라는 느낌을 지우지 않는 선에서 모두가 한눈에 “도대체 어디 사람이야?”라는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설정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감독은 그를 ‘동전으로 운명을 결정하는’ 독특한 유머를 통해 차별화되는 살인자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쉬거를 인간 캐릭터로 생각하지 않았다. 순전히 폭력이 대표하는 것의 상징과 운명의 전달자로 봤다. 내가 도전해볼 만했던 것은 바로 그것을 인간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었다고 하비에르 바르뎀은 말한다. 코엔 형제의 연기 연출 스타일은 코미디와 범죄 영화가 확연히 구분된다. 코미디는 매우 과장되게 연출하고, 범죄 영화는 최대한 리얼리티를 유지하며 전형화 시키지 않고 최대한 개성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코엔 형제의 범죄 영화를 중심으로 연출 스타일을 분석해 보았다. 사실 5편이나 되는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관한 세부항목을 연출적 관점에서 짧은 지면에 모두 언급하다 보니 한계는 있었지만, 본 연구 작업 과정을 통해 감독의 독특한 스타일이란 무얼 말하는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분석해 본 코엔 형제의 범죄 영화들은 분명 장르영화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기존 할리우드의 관습을 뛰어넘어 그들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스토리, 그리고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음이 확실하다.
조셉 보그스 주장대로 스타일이 돋보이려면 감독의 특별한 예술적 비전과 철학을 개성적인 비주얼로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들 속에 투사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코엔 형제는 자신의 범죄 영화를, 보통 사람의 자기 파괴적인 욕망을 일관되게 서사적으로 그리고 있고, 비관습적인 테크닉과 극단적인 리얼리즘에 가까운 형식미로 포장하고 있다. 그들이 범죄 모티프에 천착하는 이유는 히치콕과 유사하게 극단적인 범죄행위 속에서 인간 본연의 어두운 심성을 극적으로 추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히치콕과 달리 지나치게 장르에 몰입되지 않고, 오히려 장르를 해체한다. 그래서 그들의 범죄 영화는 누와르와 코미디, 공포, 그리고 서스펜스 스릴러를 자유롭게 뒤섞어 메시지와 자신들의 시각적인 스타일을 표현하는 데에 집중함으로서 결과적으로 독특한 스타일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영화 속 인물들은 기존의 범죄 영화들처럼 선악이 뚜렷이 구분되거나, 사건의 결과로 인해 반성하거나 따뜻한 마음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의롭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할리우드식 교훈도 없다. 그들은 단지 탐욕이 가져온 비극을 그저 냉정하게 보여주고, 허무주의적인 결말이나 모호한 이미지로 끝맺음으로서 그게 영화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코엔형제의 독자적인 범죄 영화 스타일의 완성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자유로운 창작 환경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자유란 제작자와 관객의 압박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기획에서 시나리오, 연출 등 모든 과정을 감독 스스로 결정하고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산업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매체에선 굉장한 특권이다. 코엔 형제는 그러한 감독으로서의 이상적인 권력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획득하고 유지시켜 왔다.
갈수록 할리우드 시스템과 유사하게 변모해 가는 우리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에서 코엔 형제처럼 스스로 통제권을 갖고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장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극소수 감독을 재외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영화에서 존재가 미미했던 범죄영화가 장르로서 견고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지금, 우리 역시 할리우드식의 과도기를 겪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 시기는 크게 단축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박찬욱의 <올드 보이>(2003)와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 그 좋은 실례다. 그들 영화는 우리의 일천한 범죄 영화 역사에도 불구하고 코엔 형제가 그랬듯이 감독 자신들만의 개성적인 스타일로 완성되어 대중과 평론가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특히 최근에 급속도로 진보된 디지털 환경으로 인해 독립영화가 활발해 지면서 다양한 범죄 영화가 진화된 모습으로 나올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코엔 형제와 같은 현대 미국 감독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전통을 반영하고, 동시에 극복하면서 새로운 장르영화를 만들 수 있었는가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당연히 영화감독의 미학적인 스타일은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편의 영화를 통해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확립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면 코엔형제가 어떻게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을 점차 발전시켜 완성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이 글은 2010년 학술등재지인 ‘콘텐츠학회논문지’에 실린 제 논문을 수정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