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생활연기와 연출 2-2
내가 만든 이 훈련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연기를 한번도 해본적 없는 어느 집단에서도, 순수 아마추어들인 그들이 직접 즉흥 연기로 참여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나는 내 논문을 바탕으로 최근 10여년간 다양한 단체에서 그런 작업을 해왔다. 그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영화를 같이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상호 소통을 하고, 그 결과물은 평생 영상작품으로 남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아서 보람을 느끼곤 했다. 2011년에는 연기예술학회에서 주최한 즉흥 연기 워크숍에선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모아 하룻만에 스토리를 만들고(오전), 연습한 뒤(오후) 저녁에 촬영을 마친 경험도 있다. 물론 연기공부나 비전문연기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실험은 광주에서 시니어분들과 오랫동안 해왔다. 2011년부터 7년간 매년 순수 아마추어 영상 클럽 회원분들을 배우로 해서 <가화만사성>(2013), <엄마의 편지>(2017)등 7편의 단편을 만들어 각종 영화제와 방송(KBS1)에서 공개한 적이 있다. 사소한 조건은 있지만, 연기를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영화를 통한 연기는 자기 표현이고, 참여한 각자에 대한 인생 기록이 될 수 있다. 나는 이 논문에서 정리한 프로그램으로 이후에도 청소년, 대기업을 비롯한 각종 단체의 아마추어 분들과 지속적으로 작업하고자 한다. 가령 기업체 신입사원 교육의 일환으로, 연극은 많이 활용되고 있지만, 영화 작업은 흔치 않다. 연극을 이용한 즉흥연기 전문가는 많지만, 영화를 이용한 즉흥연기 전문가는 드문 현실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최근 10여년간 내 훈련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영화작업을 하면서 내 자신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나도 즐겁고, 참여한 사람들도 너무 좋아했다. 상업영화나 예술영화는 돈을 벌거나 상을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는데, 아마추어들과의 작업은 그런 압박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좋다. 내 훈련 프로그램에 의한 영화작업은 말 그대로 소통의 수단이다. 함께 영화를 만들고, 나중에 결과물을 보면서 좋아하면서 박수치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억으로 평생 남고 서로 친해진다. 그래선지 그런 작업을 함께했던 제자들이나 광주 시니어분들과는 세월이 지나도 상호 소통을 하며 반가워 한다.
애초부터 카메라 두 대를 동시에 실시간 촬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에 A카메라는 연출자인 필자가 직접 잡았고, 학부 학생 중 촬영 경험이 있는 학생을 불러 B카메라를 잡게 하였다. 어차피 디지털 카메라(PD 170)에 마이크를 장착하고, 핸드 핼드에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촬영할 생각이었기에 특별한 조명과 트라이포드가 필요 없었다. 스탭 역시 붐 마이크를 잡을 학생 1명만 필요했다.
첫 번째 촬영은 배우들과 하는 워밍업이자 본 촬영이기도 하다. 영화 찍을 때는 종종 첫 리허설 때 장면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좋은 경우가 많기에 아예 첫 촬영 리허설을 실제 촬영처럼 간주하고 찍기로 하였다. 촬영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배우, 스탭에게 사전에 유의사항을 몇 가지 공지했다.
첫째, 1회 촬영을 마치고 나서 문제점을 보완한 뒤 2번째 테이크(take)를 반복 촬영한다.
둘째, 대사는 평소보다 약간 더 크게 한다는 느낌으로 하되, 절대 과장하진 않는다.
셋째, 연기 중 대사가 어색하거나 다소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반복 연기가 가능하다. 왜냐하면 실수 장면은 나중에 편집 할 수 있고, 같은 상황을 두 번 반복해 재현하니 처음에 표현 못한 것은 두 번째에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단, 감정의 연속성을 절대 깨뜨려선 안 된다.
넷째, 배우는 절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로 주어진 상황에만 몰두한다.
다섯째, B카메라맨은 A카메라맨인 필자가 찍는 인물의 반응 숏이나 반대 각도에서 촬영하도록 한다.
여섯째, 각 장면은 핸드 핼드로 실시간, 롱 테이크로 촬영하기에 배우는 연출자의 특별한 지시가 있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연기한다.
영화 도입부 5분 정도 분량인 그 장면은 예정대로 카메라 두 대로, 실시간 촬영을, 두 번 반복 촬영하였다. 이때 촬영 및 제작 스탭은 나와 B카메라를 찍는 학생 단 둘, 붐 든 학생 모두 3명뿐이었다. 로비 장면 외에는 사운드를 따기 위해 따로 붐 대를 사용치 않고, 사운드를 카메라에 장착된 외장 마이크로 입력할 수 있게 하였다. 기동성을 위해서 뿐 아니라 카메라 두 대를 활용해 핸드 핼드 촬영을 하기에 반대편 카메라의 붐 대가 노출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노출과 포커스는 자동으로 설정했다. 카메라의 화면 구도는 배우들의 감정이나 대사나 움직임에 따라 즉흥적으로 움직였다. 여기선 배우들도 즉흥성을 기반으로 했지만 카메라 역시 즉흥성을 최대한 활용하였는데, 그것은 연출자인 필자가 직접 찍기에 가능한 것이다.
B카메라를 잡은 학생은 연출자인 내가 지시한 대로 나의 A카메라가 잡은 인물의 반대편 인물이나 반응 숏을 주로 잡았다. 그리고 숏의 크기도 클로즈업과 풀숏 등, 극의 진행에 따라 촬영자의 감각에 따라 자연스럽게 줌 렌즈를 이용해 조정하도록 하였다. 연기자들은 카메라와 상관없이 모든 상황을 리얼 타임으로 연기하였고, 두 대의 카메라는 다양한 각도에서 롱 테이크를 촬영하듯 멈춤 없이 촬영하였다.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장면의 촬영은 20분 내에 모두 마쳤지만 연습실내에서 진행하는 촬영은 훨씬 길기에 쉽진 않았다. 카메라가 비록 가볍긴 하지만 오랫동안 들고 찍다보니 힘이 들어 자세도 불안하고 팔이 아파 손이 다소 떨렸다. 구도가 불안해질까 봐 얼른 도중에 한번 정도 잠시 잠깐 카메라를 멈추고 팔을 스트레칭 한 뒤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찍어야 했다. 찍다가 구도를 바꾸더라도 카메라 작동은 멈추진 않았다. 왜냐하면 배우들은 계속 연기 하느라 대사를 하고 있기에 그 사운드를 살리기 위해서다. 그건 편집할 때 꼭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결말 부분에 이르러 작은 문제가 생겼다. 사전 약속이 정확하게 안 되다 보니 깜짝 파티를 위해 생일 케이크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실내 등을 전부 꺼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일 당사자의 놀라는 표정을 잡을 수 없었다. 그것은 사전에 카메라 테스트를 같이 하지 않았기에 드러난 문제였다. 두 번째 테이크에서 그러한 문제를 보강하였다. 즉, 불을 다 끄지 않고 일부 등만 끄도록 한 것이다. 그런 다음 케이크 들어온 뒤에 다시 불을 켜도록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일 당사자의 놀란 표정과 이후 사람들의 반응을 카메라로 담을 수 있었다. 첫 번째 테이크를 끝낸 후 배우들과 대화를 통해 몇 가지 문제(배우들 동선, 소품 처리)를 보강하고 나서 다시 상황을 동일하게 반복하도록 하고 두 번째 테이크를 촬영을 하였다. 물론 당연히 즉흥성이 강하기 때문에 내용은 같지만 그에 따른 배우들이 똑같은 대사나 연기 디테일은 약간씩 달라질 수 있었으나 상관없었다. 나중에 편집에서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내부 촬영을 모두 마친 후, 충분히 전체적으로 비교적 잘 연출된 것 같아 세 번째 테이크는 더 이상 안 찍었다.(아마 공식적으로 극장에 걸 상업영화였다면 몇 번이고 더 반복촬영 했을 것이다) 단지 인서트 장면으로 도중에 지각한 학생이 대연습실 건물 입구에서 전화 받으면서 달려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촬영했다.
그런데, 연출자 입장에서 배우들의 상황 연기를 객관적으로 보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발생하면 즉각 보충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촬영을 하다 보니, 결말의 깜짝 파티가 잘 살기 위해선, 그리고 생일 당사자가 연습 중 전화가 수시로 걸려와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도입부에서 그녀가 단독으로 외부와 전화 통화를 통해 그녀가 생일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관객에게 인지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관객도 그녀처럼 ‘오늘 생일인데, 이렇게 분위기가 험악하면 어떡하지?’하며 똑같이 불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의 촬영이 모두 다 끝나고 나서 생일 당사자를 따로 불러 그 학생이 혼자 스트레칭 하는 중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와서 핸드폰을 통해 생일에 관해 통화하는 인서트 장면을 추가 촬영을 해 영화 도입부에 배치했다. 그것은 사전 대본에 의해서가 아닌 연출자인 필자의 즉흥성에 기인한 것이다. 배우들이 스토리에 기초하여 즉흥적으로 캐릭터를 구현해 내듯이 연출자도 전체 내용을 풍부하게 하거나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면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경우 즉흥적으로 장면 연출을 할 수 있어야 했던 것이다. 훈련된 연출자의 경우, 그런 즉흥성은 배우들의 연기를 객관적으로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촬영기간이 최소한 4일에서 6일 정도 걸리는 한편의 단편영화 분량을 단 2시간여 만에 모두 마친 셈이 되었다. 촬영을 중간에 잠깐 쉬기 위해 멈춘 것을 제외하고는 컷 없이 실시간 촬영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첫 번째 테이크 촬영은 프롤로그 씬(로비 식사장면) 6분, 연습실 장면 17분, 모두 23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두 번째 테이크에서는 프롤로그 6분, 연습실장면 20분, 모두 26분 정도 소요되었다. 두 번째 테이크가 다소 길어진 것은 첫 번째 테이크를 수정 보완했기 때문이다.
영화와 연극의 가장 큰 차이점은 편집이다. 연극 공연을 영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고정 숏과 일정한 구도(풀숏 또는 롱숏)에 그야말로 1막이 1개의 롱 테이크에 해당하기에 도중에 배우가 잘못해도 편집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영화는 배우들이 잠깐 실수하더라도 편집을 통해 제거하거나 어색한 부분은 다른 숏으로 대체해서 감출 수 있다. 가령 대사는 좋지만 표정이 어색할 경우, 편집을 통해 다른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의 대사만 들려주게 할 수도 있다. 표정은 좋은데, 발음이 다소 이상해도 후시녹음을 통해 보완할 수도 있다. 특히 영화는 동일한 상황을 여러 테이크로 촬영을 해두기에 그중 가장 좋은 숏을 선택해 편집할 수 있다. 이번 워크숍은 40분 짜리 DV 테입으로 3개 정도 분량이었다. 콘티도 대본도 없이 스토리만 가지고, 단 2시간 만에 25분 정도의 단편 영화를 찍었다. 카메라 두 대로 두 번 반복 촬영했으니 한 가지 소스가 네 가지 다른 컷으로 잡힌 셈이다. 그러나 각각 다른 구도를 잡거나 카메라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제대로 찍히지 않은 장면이 종종 있어 다 활용할 수는 없었다. 최종 편집한 작품이 18분이니, 실제 배우들이 연기한 분량에서 25%를 편집에서 삭제하고 거의 75%에 가까운 장면을 그대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편집하면서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첫째는 사운드 문제였다. 도입부 장면을 제외하고는 붐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기에 대사 입력이 잘 안될까 봐 학생들에게 평소보다 좀 큰소리로 대사 할 것을 주문했는데 그게 실수였다. 카메라가 멀리서 풀숏을 잡을 때는 괜찮았지만 클로즈업으로 가까이에서 찍었을 땐 마이크 바로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 셈이 되어서 일부 사운드가 너무 커 깨진 채 입력된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는 정상적인 시스템으로 전문가를 활용한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카메라를 롱 테이크로 찍느라 오랫동안 들고 있다 보니 구도가 간혹 불안정하게 잡힌 것도 좀 거슬렸다. 디지털용 스테디 캠을 활용한다면 그런 문제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사전에 배우들 동선에 대한 체크가 좀 더 치밀히 이뤄져야 카메라 구도를 정확히 잡기에 유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관계상 카메라와 배우가 함께 리허설을 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편집 과정에서 본 배우들의 즉흥연기는 훌륭한 편이었다. 하지만, 배우에 따라 다소 부정확한 발음과 잘못된 대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배우들이 아직 100%로 그 역할에 빠지지 못했다는 반증이자 짧은 연습과정으로 인한 문제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두 번의 촬영을 거치면서 에쮸드를 반복 재현하는 과정에서 동선이 너무 달라지는 바람에 상호 교차 편집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가령, 첫 테이크 촬영 땐 바닥에 쭈그려 앉아 대사 했는데 두 번째 테이크에선 동일한 장면을 의자에 앉아서 하고 있거나, 모자를 벗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쓰고 있다거나 함으로써 두 장면 중에서 좋은 장면을 골라 쓰려던 연출자의 의도를 어렵게 만들곤 했다. 이런 문제는 대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연출자가 사전에 배우들에게 동선과 자신의 연기 액션만큼은 최대한 동일하게 유지하도록 강조하지 않았기에, 또 다른 하나는 배우들이 아직 영화연기에 익숙하기 않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 촬영현장에서도 이런 문제는 종종 아마추어 배우들에 의해 발생한다. 워크숍 단편의 초기 목표는 생일 당사자를 당황하게 만들어 울리도록 한 것이었는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는 것도 그 문제였다. 그가 울고 난 직후에 깜짝 파티가 마무리되어야 훨씬 드라마가 극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당사자 본인 뿐 아니라 주변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도 동시에 중요했다. 사실 연출자 입장에서 촬영이 시작되기 전 그 목표를 분명 더 강조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시작한 책임도 있다.
이런 영화를 만들고 나면 반드시 필요한 게 시사회를 통한 평가회다. 최종 편집한 작품을 학생들과 시사를 하였고, 참여한 학생들은 몇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예상 이상의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것으로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연기가 다큐멘터리처럼 너무도 리얼하고 자연스러웠다. 극단적인 리얼리티가 때론 서스펜스나 코미디를 동시에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 시사회이기도 했다. 실제로 학부생들의 기말시사회때 상영하였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참여한 학생들이 다들 뿌듯해 했다.
학생들은 이 워크숍 과정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철저히 반영한 캐릭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연기와 대사 스타일의 장단점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매체라는 게 카메라를 의식하지만 않는다면 그다지 겁낼 게 아니라는 것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이번 작업이 나름대로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친구를 속인다는 분명한 목표에 모두가 집중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물론 이 실험에 참가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연기 훈련이 충분히 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무난한 결과를 냈지만, 과연 <시티 오브 갓>같은 영화처럼 순수 아마추어만을 데리고 했을 경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런 초보 연기자들도 본격적인 실습에 들어가지 전에 최소한의 훈련만 거친다면 이러한 워크숍 방식은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대부분의 초보자들이 카메라에 처음 설 때,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카메라를 의식하는데, 이런 워크숍은 일단 그러한 공포를 없애주는 매우 큰 효과가 있다.
이번 대학원생들은, 평소 익숙하게 경험해본 상황에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그대로 활용했기에 생활연기를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특별한 인물이나 상황을 연기했다면 상당한 사전 준비와 연습이 필요했을 것이다. 난 이같은 영화 연기훈련 방식을 한 번의 시도로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기에는 섣부른 측면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보다 확실한 검증을 위해 똑같은 스토리로 학부 졸업을 앞둔 연기 전공 학생들과 두 번째 워크숍에 들어갔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시티 오브 갓>을 만들 때, 비전문배우를 다루는 요령을 다큐멘타리적인 영화 스타일로 유명한 켄 로치(Kenneth Loach, 1936생) 감독의 연출방식에서 참고했다고 한다. 그는 촬영할 때 배우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는 대신, 그저 각 장면의 상황과 목표를 명확히 전달했을 뿐이었다고 한다. 어차피 그 영화 속 배우들은 영화가 담고 있는 세상에 관해서라면 감독보다도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일상을 재연하는 이들은, 그 어떤 배우도 흉내 낼 수 없는 생생한 속어를 섞어 대사를 완성했고 9주 만에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시티 오브 갓>의 연기 연출 스타일에 대한 사실은 필자가 <생활 연기의 힘>을 통해 훈련 프로그램을 처음 시도한 직후 알게 되었는데, 그 유사성에 매우 놀랐다. 그래서 나름대로 확신을 얻기 위해 첫 워크숍과 동일한 스토리와 방법론으로 두 번째 워크숍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여 학생들 모아놓고 처음 한 일은 이전에 작업한 단편 <생활연기의 힘>을 보여주고, 연극에서 한 편의 희곡을 수 없이 다른 연출자와 배우들이 공연을 올리듯이, 동일한 스토리와 같은 작업 방식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대신 구체적인 대사는 이전 방식처럼 배우들 자신의 즉흥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미 모든 학생들이 에쮸드나 메소드 연기에 대해 잘 숙지하고 있기에 구태여 전과 같은 세미나는 필요 없었다. 각자 캐릭터를 부여하고, 연습을 시킨 뒤, 촬영을 시작하기까지는 일주일 정도 밖에 안 걸렸다. 첫 번째 워크숍처럼 스스로 알아서 연습하도록 했다. 캐릭터 해석이나 디테일 액션, 그리고 대사는 이전 작품과 달리 접근할 수는 있으나 기본적인 스토리와 짜놓은 구성만큼은 동일하게 가도록 했다.
이번에도 촬영은 연출자인 필자가 A카메라를 잡고, 다른 촬영 전공 학생에게 B카메라를 잡도록 했다. 동시녹음의 붐 대는 카메라에 장착했기에 스탭은 필자와 그 촬영 전공 학생뿐이었다. 대신 첫 번째 워크숍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B카메라맨에게 이전에 시행착오가 있었던 사운드 문제를 이야기하고 주의하도록 당부하였다. 촬영과 후반 작업은 첫 번째 <생활연기의 힘>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하였다. 단지 이전보다 준비기간이 훨씬 짧았을 뿐, 25분 전후 분량을 두 대의 카메라로 두 번 반복해 촬영하였던 것도 똑같이 하였다. 대신 이전 작업에서의 문제점을 나름대로 보완하고자 했다. 특히 배우들의 동선과 발음 문제, 그리고 조명 문제, 사운드 문제 등 영상 테크닉에 보다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1차 워크숍에서 연출자로서 좀 더 명확하게 지시하지 못했던 것을 이번에는 확실히 강조했다. 즉 생일을 맞이한 친구를 서프라이즈 직전에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울리도록 하는 게 극의 중요 목표라는 점을 강조한 덕에 첫 번째 워크숍과 달리 생일 맞은 배우는 동료들이 서로 싸우 것을 말리다 다들 공연을 포기하려하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왔고. 그 직후 서프라이즈가 이뤄지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연출자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재밌는 요소도 있었지만 첫 번째 워크숍에 비해 디테일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나름 최강 멤버로 구성된 두 번째 참여자들은 자존심 때문에 전편과 차별화하고자 하는 욕심이 강해 디테일 부분에선 다르게 표현하였다. 기본 스토리와 캐릭터는 같았지만 동일한 대사와 디테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즉흥연기로 인해 벌어진 재미있는 현상은 배우에 따라 똑같은 캐릭터도 달리 표현된다는 점이었다. 특히 B팀의 연기자 2명의 경우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재치 있는 대사로 인해 전편보다 훨씬 캐릭터가 강해진 반면, 전편에서 늦게 등장해 개성이 돋보였던 B팀 지각생의 경우는 오히려 약화되었다. 그녀는 이 내용에서 가장 코믹하면서도 정감 가는 역할이었음에도 효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배우의 분위기가 전편의 대학원생에 비해 그 역할에 다소 안 어울린 데다 다른 배우들과의 앙상블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역시 편집의 예술이었다. 편집 과정에서 어색한 느꼈던 장면들을 모두 정리하고, 디테일 에피소드가 부족한 대신 편집을 통해(부분적으로는 점프 컷을 사용) 빠르게 목표를 향해 사건을 진행하니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주제를 드러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특히 라스트의 어색했던 재반전 상황을 모두 삭제해 버리니 전편보다 훨씬 깔끔한 반전으로 마무리 되었다. 특히 영화적인 화면구도나 사운드 문제는 사전 준비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최종적으로 <연기 연습>이라는 제목으로 이전 작품보다 3분 정도 짧은 15분 정도로 편집했다. 사실 단 두 시간 만에 촬영하고, 그야말로 초저예산이지만, 엄연히 단편영화로 완성한 것이다. 영화연기 훈련 프로그램의 워크숍 성과는 자체평가만으로는 성공여부를 판단하기 힘들다고 생각해, 객관적 확보를 위해 <연기연습>을 당해에 개최된 국제단편영화제에 예명을 사용해 출품하기로 했다. 이때 보다 디테일이 풍부하다고 생각했던 <생활연기의 힘>이 아닌 <연기연습>을 출품했는데, 그 이유는 기술적인 완성도 때문이었다. <생활 연기의 힘>은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뛰어나고 리얼했음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사운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연기연습>이 기술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은 아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영화에서 아주 기본적인 스탭과 기술적인 장치(조명, 녹음장비)없이 연기자 훈련 워크숍을 위해 촬영했기에 아무래도 미학적인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체 모니터를 통해 <연기연습>은 완성된 단편으로서 충분히 외부에 공개해볼만 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연기연습>을 출품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2003년에 시작된 국내 유일의 국제경쟁 단편영화제로 매년 전 세계에서 1400여 편에 가까운 단편들이 출품된다. 그런데 이번 실험 프로그램의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위해 출품한 <연기 연습>은 본선 경쟁 진출작 53편 속에 선정되었다. 결국 2시간만에 촬영한 그 단편은 최종 수상권인 10편에 올라 ‘국내 단편 작품 중 일반관객이 가장 예매하고 싶을 만큼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작품에게 수여하는 상’인 맥스무비상(일종의 관객상)을 수상해 100만원 상당의 상금(극장예매권으로 대체)을 받았다. 일부 기술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받은 건 배우들의 리얼하고 생생한 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에쮸드와 즉흥연기를 근간으로 실험한 워크숍 훈련 프로그램 덕분인 셈이다.
두 번의 워크숍은 배우를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이 같은 워크숍은 현장에서 연기를 연출해야할 감독이나 스탭(특히 촬영)들에게도 똑같이 중요하다. 적어도 영화감독은 배우에게 정확한 연기를 원한다면 연기 연출을 할 수 있는 나름의 대안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하다. 서두에 언급했듯 연기자나 영화연출자의 교감이 절대 필요한 훈련 프로그램인 것이다. 리 스트라스버그가 1931년 창립한 그룹 시어터의 창단멤버이자 제자인 스텔라 애들러는 스트라스버그의 ‘정서적 기억의 사용’에 회의를 갖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메소드를 창안했다. 말론 브란도의 진정한 스승이기도 한 애들러는 연기의 핵심을 상상력과 대본분석력, 신체 심리학적인 요소라고 보았다. 반면 또 다른 멤버인 샌포드 마이스너는 ‘배우 상호간의 정서적인 교감(communion)’을 강조했다. 이들의 연기론은 다르게 보이지만 바로 내적인 연기로 연극연기와 차별화되는 영화연기에 가장 적합한 연기론의 정신들을 대표하는 연기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의 훈련 프로그램에서는, 마이스너의 ‘배우상호간의 정서적인 교감’ 못지않게 ‘감독과 배우의 상호 교감’도 중요하다.
물론 이 프로그램 방식은 단순한 훈련목적을 넘어 실제 영화작업에 그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 훈련 프로그램의 특성은 연기자와 영화 연출자가 동시에 참여하여 조화를 이루는 ‘영화 연기 및 연기 연출 훈련 프로그램’이다. 훈련 대상으로는, 연기와 연기연출 모두 각각 세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첫째, 남녀노소 순수 아마추어 대상 둘째, 기본적인 연기 훈련이 된 준(準) 프로 대상, 셋째, 프로지만 자기 훈련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 가령연극 경험은 많으나 영화가 초보인 배우에 해당한다.
연기 연출의 경우, 단편이나 장편의 경력이 다수인 직업적인 프로 감독과 영화 매체에 대한 제반 이해가 깊은 영화 교육자의 참여는 당연히 가능하지만, 연기와 달리 순수 아마추어 감독은 다소 한계가 있다. 최소한 카메라에 대한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고, 한 두 편 이상 완성도 있는 단편영화를 연출한 경험 있는 아마추어 감독 이상이 되어야 연기연출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크숍 진행 방식도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눠야 할 것 같다. 첫째, 참여 배우들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그대로 이용해 연기하는 방식. 둘째, 자신의 캐릭터와는 전혀 상관없이 새롭게 주어진 이질적인 캐릭터를 창조해서 연기하는 방식이다.
캐릭터가 새롭게 주어질 경우 연기해야할 인물에 심화 과정과 분석, 그리고 관찰 및 연습이 상당 기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훈련 워크숍의 진행 방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무작위로 모인 참여자들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낸 뒤 연출자와 함께 디테일을 꾸며 나가고 대사나 동선을 스스로 창조해가는 집단창작 방식으로 철저히 배우 중심의 진행.(이 방식은 순수한 영화연기와 연기 연출 워크숍으로 유용하다)
둘째, 이미 주어진 스토리나 대본에 맞춰 배우들을 모아 거기에 맞춰 훈련하고 난 뒤, 연출자의 의도를 중심으로 각자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보태 상황을 만드는 진행 방식.(이 방식은 하나의 영화 프로젝트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일 경우 유리하다)
단편영화 제작을 통한 영화 연기 및 연출 프로그램 진행은 기본적인 절차나 원리는 유사하지만 어떤 목적으로 시행하느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줄 필요가 있다. 가령 순수 아마추어를 상대로 할 경우, 전체적인 교육자(대부분 감독이 직접 진행하는 게 좋다)는 시나리오 작가를 동참시켜 초반에 같이 작업하거나 감독 그 자신이 스토리를 구성하고 지도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춰야 한다. 비록 배우들이 직접 공동창작을 하게 될지라도 연출자가 그것을 정리할 수 있어야 원만한 진행이 가능하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더 클래스>나 <시티 오브 갓>처럼 실제 영화 작업이 들어가기 전에 배우들과 매끄러운 소통,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패턴을 이해시키기 위한 워크숍일 경우, 들어갈 작품의 분위기에 맞는 장면을 중심으로 작업하거나 영화 캐릭터를 활용한 워크숍을 할 수도 있다. 일단은 목적에 따라 훈련에 참여할 배우들이 모이면 그들 모두가 최대한 참여할 수 있는 스토리를 정한다. 때로는 사전에 이미 있는 스토리나 기존 영화의 한 장면을 용용해서 하는 것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연출자가 중심에 서되, 모든 과정에 배우가 적극 참여하도록 한다. 사전에 세부적인 시나리오를 주어서는 안 되지만 시놉시스 정도는 가능하다. 그리고 컨셉만 있을 경우 배우들과 같이 의논을 통해 구체화 시킨다. 이때 워크숍 전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할 메이킹 및 스틸 촬영 담당도 필요하다.
준비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컨셉트 및 스토리와 플롯 결정. 둘째, 각자 맡을 역할 및 캐릭터에 대한 구체화, 셋째, 에쮸드나 즉흥극, 그리고 카메라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위한 세미나, 넷째, 스탭 구성 및 촬영에 관한 준비, 다섯째, 장면 연출의 공간의 최종 결정
위의 준비단계 상황이 모두 결정되면 즉시 연습을 하는 지점으로 가야한다. 이전 두 워크숍에서 설명했듯이 연습 단계의 초기에는 되도록 연출자는 빠지고 배우들 즉흥연기를 기반으로 한 상황극인 에쮸드를 하도록 놔두는 게 좋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 중 상당 부분이 즉흥극, 에쮸드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도 이러한 즉흥성이 연기의 리얼리티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국 왕립극단에서 배우들의 즉흥연기 교육을 담당했던 키스 존스톤(Kieth Johnston)은 개인의 창조정신을 막아온 기존의 교육법을 비판하고,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상상력과 끼를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즉흥연기법’을 개발했다. 스타니스랍스키의 메소드 이론이 지배하고 있던 1950~ 60년대 연극계에서 ‘즉흥연기’에 대한 독창적인 방법론을 개발한 그는 상상력과 즉흥성을 중요시 한다. 대본이나 연기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연기하는 즉흥극은 순간적인 상황 해석을 통해 개개인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극하고, 배우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연극으로 영화 연기 훈련 프로그램에도 응용 가능하다. 키스 존스톤은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많은 것들을 새롭게 발굴하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즉흥연기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단순히 연기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듯 하다. "우리가 생각하도록 교육받아온 지금 자신의 개성은 자기의 본모습이 아니며 상상력이 진정한 우리의 모습"이라는 말은 배우가 아닌 일반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적용되는 말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는 또한 “연기는 특정한 교사가 특정 유파를 통해 단정적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 다른 학문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예술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이며 선생이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선생은 학생들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시범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그만큼 즉흥 연기는 배우의 상상력과 자기 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유도하는 과정이기에 선생(연출자)의 개입은 절제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로버트 코헨 주장처럼 훌륭한 연기란 연극이나 흉내를 내서가 아니라, 배우 스스로가 자신을 상황 속에 완전히 던져 넣음으로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출자의 개입은 배우들이 자율적으로 최종 합을 어느 정도 짠 후, 지켜보면서 조금씩 수정해 가는 게 좋다. 또한 연습할 공간은 초기에 배우들 상호간 대략적인 스토리 진행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나중에 촬영이 이뤄질 장소(오픈 또는 세트장)에 직접 가서 진행해야한다. 연기자의 블로킹은 무대 위의 공간처럼 제한적으로 상상하고 하는 게 아니라 실제 영화처럼 움직이며 연습해야 한다. 물론 장면 자체가 크게 이동하는 동선은 사전에 연출자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 연출자는 연기자들의 연습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나면 직접 촬영이나 조명 같은 주요 스탭들과 같이 가서 보는 게 좋다. 이때, 연출자는 배우의 신체적 특성, 대사 톤, 액션 스타일, 그리고 그 내면에 감춰진 개성을 간파하고 북돋아 줘야 한다. 이런 훈련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배우들 간의 교감과 상호반응이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각각의 인물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완전히 그 인물에 동일화되고 일체화된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 만약에 어떤 배우가 영화 속에서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면, 그 배우의 연기는 잘못된 것이다. 그건 그만큼 배우가 주어진 역할에 몰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토리에 따른 대사나 액션은 즉흥성에 따르도록 한다. 각 배우들의 전체적인 동선(도입부터 마무리까지)은 연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든 뒤, 연출자가 최종 결정한다. 최대한 연습 단계에서 전체적인 동선과 인물들의 큰 액션에 대한 결정을 해주는 게 좋다. 배우들이 연습하는 동안 연출자는 스탭들과 함께 세팅을 준비하고, 필요한 소품과 촬영 장비를 점검하고 테스트해야 한다. 물론 배우들의 연습 장면을 몰래 카메라처럼 촬영해 볼 수 있으나 어느 정도는 배우들이 자기들끼리 자유롭게 즉흥적인 연기를 해서 캐릭터의 감정에 빠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다.
그렇다고 연기자들이 지나치게 많이 연습해서 자신의 대사와 액션을 외워서 고정화 시키는 것도 곤란하다.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연기는 결국 단순해지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마라’고 이창동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막상 촬영에 들어갈 때 과도한 준비는 자칫하면 과장되거나 의식적인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연습은 약간 부족하다 싶게 하는 게 좋다.
물론 여기서 제안한 단편영화 제작을 통한 훈련 방식은 영화 연기 및 연기 연출 교육을 위한 여러 대안 중 하나일 뿐이다. 사실 워크숍을 통해 하나의 단편을 완성하려면 연출자는 상당한 경험과 영화적인 장악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아마추어들을 가르칠 때는 작은 상황으로부터 출발하는 게 좋다. 구성이 확실한 단편이 아닌, 일부 에피소드만을 즉흥연기를 이용해 촬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토리가 없더라도 희로애락 중 하나의 감정을 선택해 그것을 카메라 앞에서 효과적으로 연기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사소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배우의 동작이나 블로킹의 디테일을 중심으로 연기하고 연출해 내는 것을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영화 연출자는 당연한 것이지만, 비록 연기 전공자일지라도 영상 매체에 익숙해지도록 직접 카메라를 다루고 최소한의 편집하는 기술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카메라를 이용해 자화상을 찍어보는 연습도 하게하고 자신의 일상이나 상대의 모습을 찍은 뒤 스스로 편집해보게 하여 편집이 연기에 미치는 효과를 직접 확인해 보게 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리 스트라스버그가 ‘적절하게 훈련된 배우는 하나의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그의 재능의 감소 없이 옮겨갈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초기에 그 배우가 어떻게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지나치게 연극적인 연기, 그것도 고전적인 연기 스타일에 집중했던 배우들은 나중에 영화 연기를 하게 될 때 오랫동안 굳어진 연극 스타일에서 빠져나오지 쉽지 않다. 반면 아마추어 연기자들의 경우, 그들에게 깊고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게 하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영화 연기를 가르쳐 적응시키기에는 연극 매체에 익숙한 배우들보다 훨씬 더 쉬울 수 있다.
연극과 교수이자 유명한 연기 지도자인 로버트 코헨(Robert Cohen)은, 직업배우나 이미 성공한 배우들도 연기수업을 받고 훈련을 계속하는 것처럼, 연기는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다고 단언하다. 훌륭한 연기는 지성, 상상력, 심리적 자유, 신체적 기민성, 발성의 강도, 정서적 심도, 그리고 실수, 비평, 관찰로 부터의 습득 능력 등 매우 뛰어난 재능들의 조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받은 후 나름의 연기법을 만들어 연기 지도자가 된 웨렌 로버스튼은 자신의 연기훈련법은 ‘배우 개개인을 훈련시키기 위해 사용할 재료는 평범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몸(body), 마음(mind), 정서(emotion)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배우와 보통 사람의 차이점으로, 단지 배우는 이런 기본 재료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전념한다는 사실 하나 뿐이라는 것이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선배이자, 리얼리즘의 아버지라 불리는 러시아의 사실주의 배우 미하일 쉬엡킨(1788-1863)은 연기의 최고 텍스트는 다름 아닌 자신과 인생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배우에겐 두 가지 이용할 자료가 있는 데, ‘그 하나가 자신의 천성에 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인생에 대한 관찰’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연기교육은 반드시 캐릭터 분석이나 작품분석을 하기 전에 정확한 자기 분석, 개성 발견의 시간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그의 재능의 특징을 정확히 간파하고 키워줄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연기교사 역시 요구된다.
대다수 영화 연기의 경우 마이클 케인이 <영화수업>이란 책을 통해 언급한 것처럼 ‘카메라 앞에서 사실적이고 진실 되게 행동하는 일은 꾸준한 훈련과 경험을 쌓은 후에야 갖출 수 있는 까다로운 기술’이다. 그러나 지나친 훈련과 프로의식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종류의 영화들도 일부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토리오 데시카나 다르덴 형제, 켄 로취,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처럼 다큐멘타리적인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감독들의 작품은 오히려 노련한 세련미보다는 아마추어의 투박함과 일상의 진실한 표현력을 더 나은 연기의 미학으로 친다. 일상성이 강한 생활연기로 최근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가 된 송강호는 한 인터뷰에서 “연기에서 학습되는 부분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제 삶이나 사회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성찰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연기 훈련 방법이 되었던 것 같아요. 삶 자체의 치열함이 타고난 재능과 결합해 그 배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판단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것은 과도한 학습과 훈련만이 좋은 연기를 끌어내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내가 여기서 제시한 영화 연기 교육 프로그램은 연기자의 보다 진실한 내면을 끌어내고 객관화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훈련 워크숍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연기 지도자 샌포드 마이스너는 ‘배우의 액션을 방해하는 것은 바로 배우의 액션이다.’하고 말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전공한 교육자가 연기를 가르치고 연기를 연출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연극의 제반 연기 특성과 그 훈련법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연극전공자가 매체연기를 가르치고자 할 때 역시 카메라 작동법과 영화 연출의 특성 및 편집까지 영상매체 전반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20세기가 소수 전문가만 활용할 수 있었던 필름 영상 시대라면, 21세기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일반인 누구나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디지털 영상 시대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미지는 일상적인 디지털영상으로 쉽게 제작되고 보여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기가 요구하는 연기는 더 이상 19세기나 20세기의 연극의 아류가 아닌 독자적인 영상 매체 연기로서 거듭나야 하고, 그것을 위해 새로운 교육 시스템과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이 글은 2010년 학술등재지인 콘텐츠학회지에 실린 제 논문을 수정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