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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Che Oct 24. 2021

본 시리즈: 독립 영화와 할리우드의 멋진 결합

영화는 거울이다(10편) : 본 시리즈 3편 2-2

독립영화 스타일로 할리우드 영화를 업그레이드 하다.

 

촬영 : <블러디 선데이>와 같은 다큐멘터리 스타일

   때론 촬영 스타일이 편집 스타일을 결정하기도 한다. 2편 감독을 제의 받은 폴은 이미 1편 <본 아이덴터티>를 보고나서 인디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의 멋진 충돌이라고 평가 하면서 그 스타일을 완전히 비틀지 않으면서도 <블러디 선데이>에서 발휘했던 핸드 핼드 카메라 스타일을 슬그머니 적용해 나갔다. 그 이유로는 ‘관객도 주인공 본이 체험한 삶과 같이 느끼길 바라고, 마치 관객이 주인공이 있는 그 자리에 같이 있게 만들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그는 소위 할리우드의 대작영화의 질환에 걸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2, 3편이 1편과 다소 다른 촬영 방식을 적용했음에도 크게 톤이 튀지 않았던 것은 1편 때부터 본 시리즈 촬영을 담당한 올리버 우드(Oliver Wood)덕분일지 모른다. 폴은 영화 <블러디 선데이>처럼, 핸드 핼드 촬영 스타일을 활용하였는데, 빠른 줌 인 아웃은 기본이고, 피사체 움직임 때문에 포커스가 아웃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빠르게 포커스 인하는 숏을 그대로 사용한다. 때론 감독 본인도 직접 핸드 헬드 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기도 하였다. 조명 역시 인공조명보다는 자연조명을 많이 활용하기에 영화는 거의 다큐멘타리에 가깝게 매우 리얼해 보인다. 

 폴은 감독으로서 이 영화에 불어넣고 싶은 것에 대해 설명하며 “한 번도 시도 안된(unconsidered)”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것은 바로 감독이 이 영화의 전 제작 과정을 통해, 특히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하고 싶어 했던 바였다고 한다. 3편 탄지에르 추격 신에서는 주택가 사이를 킬러와 본의 추격전을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가령 본이 급박한 상황에서 지붕에서 건너편 주택가 창문을 뚫고 뛰어드는 장면을 찍기 위해 스턴트맨이 카메라를 맨 체 본의 뒤를 바로 따라가 뛰어들기도 할 정도였다. 폴은 비록 스튜디오 촬영에서 조차 세트의 인공적인 느낌 대신 일상과 밀접한 분위기가 풍기도록 신경을 썼다. 런던의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CRI(CIA 내부 조직)의 본부를 포함해 영화의 주요 세트가 제작, 촬영되었는데, 프로덕션 디자인 팀은 자료를 검색하는 컴퓨터, 전 세계를 감시하는 대형 모니터 등 최첨단 기술 장비를 배치했고, 뉴욕시의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풍경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내었다. 이렇듯 폴은 촬영감독과 별도로 자기 나름의 각도를 찍으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맘껏 펼쳤는데, 이런 경우는 할리우드 영화에선 매우 드문 촬영 방식이다. 촬영에서 장소 헌팅도 매우 중요한데, 폴은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처럼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소를 택하기보다는 유명 도시들의 ‘다소 덜 화려한’ 장소들을 보여 주는데 주력했다. 


액션 스릴러 연출 : 장르를 규정짓는 핵심 요소

   액션 스릴러는 액션과 스릴 있는 장면을 얼마나 잘 연출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연출하느냐가 그 장르와 스타일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다. 007 시리즈 이후 현대 액션스릴러 시리즈 영화 붐을 일으킨 인디아나 존스 1편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 1981)를 만들 때, 제작자 조지 루카스는 감독 스필버그에게 상세한 세부지침을 얘기해주었다고 한다. 그것은 시나리오가 60개 신 정도로 각각은 2페이지를 넘지 않아야 하고 전체적으로 인디아나 존스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6개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카스는 말한다.“이 작품은 시리즈를 한 곳에 모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죠. 기본적으로는 액션장면만 편집한 느낌을 주어야 했지요.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서로 중첩되거나 연결됨으로써 팽팽한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목표였죠.”<레이더스>의 내러티브 기본원칙은 ‘절벽 끝에 매달린 사람’이었고, 기존 영화와 차별된 점은 보다 자극적이면서 스펙타클 하다는 것이다. 본 시리즈도 위와 같은 인디아나 존스 식의 액션 장르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편에서는 액션 신이 모두 6개 정도 있고, 주인공 본은 절벽 끝에 매달린 사람처럼 끊임없이 위기에 빠졌다가 극적으로 살아남는다. 1988년 로저 영의 TV영화에선 차량 추격 신이 전혀 없었지만, 본 시리즈에선 긴박감 넘치고 리얼한 차량 추격신이 하나의 스타일이 될 정도로 액션 스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2편으로 가면서 그런 액션 신은 보다 강해지고 스펙터클 하다. 1편에선 단 한 번에 불과했던 차량 추격 신이 하나 더 추가되고 훨씬 리얼하고 자극적으로 묘사된다. 거기에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신(2편)과 영국 워터루역 신(3편)의 경우 히치 콕의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의 후반부 저택 신과 브라이언 드 팔마의 <언터처블>의 기차역 총격 신에 비견될 만큼 서스펜스 스릴 묘사가 뛰어나다.

특히 3부 모로코 탄지에르 주택가에서 벌어진 제이슨 본과 킬러, 니키의 스릴 넘치는 추격전은 바로 직전에 개봉되어 크게 성공한 007시리즈의 <카지노 로얄>(2006)의 도입부 추격신보다 훨씬 리얼하고 실감나게 연출되었다. 재미있게도 007 시리즈를 비롯한 많은 액션 스릴러에선 주인공이 한번쯤 붙잡혀 위기를 겪다 탈출하는 게 일종의 공식인데 그런 신이 본 시리즈에선 전혀 없다. 본은 한 번도 사로잡히지 않고, 아슬아슬한 위험에 처하긴 하지만, 그런 불가항력적인 위기에 빠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감독의 입장에선 그렇게 잡혀서 탈출한다는 설정 자체가 뻔하고(주인공이기에 당연히 탈출할 것이기에) 설득력이 없다고 본 것일 수도 있다. 

일반적인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에서 액션은 크게 격투 액션과 총격 액션, 그리고 차량 액션으로 나뉘는데. 본 시리즈에서 총격 액션은 상대적으로 작은 분량을 차지하고, 맨 주먹이나 칼등 작은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격투 액션과 차량 추격 신(car chase)이 주를 이룬다. 그것은 리얼리티를 근간으로 한 본 시리즈로선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액션 신들 어떻게 연출 되었을까?

격투(및 총기액션

   할리우드 영화에서 맨손 격투 액션은 예전 총기 액션이 주류를 이루는 서부영화의 들러리 격으로 종종 있어 왔으나 대부분 속도감이 느리고 마치 약속 대련처럼 작위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매트릭스>(1999)이후 홍콩영화의 영향을 받아 역동적이고 리얼해졌다. 007 시리즈조차도 예전의 약속 대련식의 어설픈 액션에서 벗어나 근육질의 주인공(다니엘 크레이그)을 내세워 리얼 액션으로 변화에 적응했다. 하지만 본 시리즈에서 격투 액션은 그 보다 훨씬 리얼한 액션을 선보인다. 1편에서 본은 가라데와 킥복싱을 조합한 ‘칼리’라는 무술을 사용해 암살자와 방안에서 격투를 실감나게 벌인다. 그런 액션 연출은 <글래디에이터>(2000) 등에서 스턴트 및 액션을 담당한 전문가인 닉 파월이 맡았다. 액션 연기를 하는 배우들에게 사전 훈련은 당연한 과정이지만, 본을 연기한 맷 데이먼은 닉 파월의 지도하에 3개월간 무술 및 무기 다루는 법을 연습하고 식이요법을 통해 몸을 다졌다고 한다. 그는 “액션이 완전히 영화 속에 녹아들길 바랬어요.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들과는 차별되는 부분이 있었죠”라고 말할 만큼 리얼 액션 연기를 중요하게 여겼고, 말 그대로 할리우드 액션 연기의 스타일을 바꾸었다. 

   본 시리즈에서 액션 연기의 특징을 보자. 첫째, 과장된 홍콩 영화식 와이어 액션이 거의 없다. 일테면 <매트릭스>처럼 폼이 나도록 멋진 동작을 의도적으로 과장해서 구사하거나 오우삼 감독처럼 슬로우 모션을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맨주먹으로 빠르게 승부하되, 권총이 아닌 무기를 사용할 경우 현장에 있는 생활용품을 최대한 이용한다. 가령, 만년필이나 책, 전화선처럼 액션이 벌어지는 일상 공간에 있을법한 물건을 무기화 한다는 것이다. 3부의 탄지에르 주택가 가정집의 목욕실에서 격투할 때, 본은 그곳에 있던 타월을 이용해 킬러의 목을 졸라 죽이는 것도 그런 예에 속한다. 셋째, 동작을 크게 사용하지 않고 질질 끌지 않는다. 즉 실제 싸움처럼 잽싸게 승부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이런 아날로그식 액션은 리얼리티를 추구하고자 한 딕 리먼과 폴 그린그래스 연출 의도와 잘 맞아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비중은 낮지만 총기 액션도 유사한 방식으로 연출된다. 단지 1편의 경우 홍콩영화를 본 딴 과장된 총격 신(영화 후반, 본부에서 본이 요원들과 싸울 때 계단에서 떨어지면서 총을 쏴 상대를 죽인다)이 있긴 하지만, 2, 3편은 암살 장면에서만 총이 현실감 있게 사용 될 뿐이다. 할리우드 총격 신의 전매특허인, 아무리 총을 쏴도 잘 맞지 않고 쉽게 피해가는, 불사신 같은 주인공은 적어도 본 시리즈에 없다. 폴은 ‘격투는 발레와 본질이 같다’며 철저하게 사전 연습을 통해 안무하듯이 액션 연출을 하였고, 맷 데이먼의 본을 통해 총을 신봉하는 마초 정신의 진부한 액션 모험 영웅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기가 요구하는 스타일의 액션 영웅으로 만들어 내고자 하였다. 


차량 추격 액션 : 아날로그식 리얼함

   격투 액션에 비해 차량 추격(car chase)을 통한 액션 신은 거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수많은 다른 장애물을 거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해 보이는 만큼 긴장과 스릴의 강도는 그만큼 더 세다. 그런 이유로 최근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에서 차량 추격 액션은 기본으로 들어간다. 특히 본 시리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차량 추격 액션 연출이다. 그렇다고 <트랜스포터>시리즈처럼 차량 추격 신이 영화에서 빈번하게 나오지 않는다. 본 시리즈의 각 영화에서 차량 액션 장면이 겨우 한두 번(1편, 3편에서 각 1회, 2편에서는 2회)밖에 안 나오는데도 인상적인 이유는 워낙 그 신들이 극적이고 리얼하게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본 시리즈의 차량 액션 역시 격투 액션처럼 아날로그식 리얼함이 핵심 컨셉트다. 최근 영화들이 그런 고난이도 장면에선 디지털 기술을 동시에 활용하는 게 관례인데, 본 시리즈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하여 더욱 장면을 실감나게 만들었다. 격투 액션과 마찬가지로 차량 액션 신도 그 방면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차량 액션이 보다 강조되고 분량이 많아진 2편부터는 차량 및 액션 스턴트 코디네이터인 댄 브래들리가 제 2촬영 반 감독을 맡아서 고난이도 장면들을 주로 맡아 진행하였다. 그는 007 시리즈 <카지노 로얄>과 <퀸텀 오브 솔라스>에서도 액션 연출을 맡았지만, 두 작품의 결과물은 감독의 연출 스타일의 차이로 인해 그 리얼함의 강도가 크게 다르다. 

   주인공 맷 데이먼과 격투할 배우들은 더욱 실감난 연기를 위해 수개월간 개인 훈련 및 전투 훈련을 비롯해 특수화기 교육을 받았다. 폴은 결국 댄 브래들리의 도움으로 현실에서 있을법한 실로 리얼한 차량 추격 신을 찍을 수 있었다. 감독에게 각 세부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차량 액션 신을 연출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치밀한 연출 콘티가 있다는 전제하에 적합한 장소 헌팅 및 공간 세팅, 특수 촬영, 특수 효과, 스턴트맨의 능력, 컴퓨터 그래픽 등의 조화이다. 촬영을 위해 액션 신에 필요한 차량도 특별 제작해야 하고, 다수의 차량 운전을 담당할 최고 수준의 스턴트맨도 필요하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헌팅이나 세팅 역시 매우 중요하다. 본 시리즈는 최대한 아날로그로 진행했기에 차량 액션 코디네이터인 댄 브래들리 역할이 컸다. 3편의 하이라이트인 뉴욕 시내 차량 추격 신을 촬영할 때는 뉴욕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7번가를 전면 통제한 후, 여섯 대의 폭스바겐 투아렉과 열 대의 크라이슬러, 기타 수백 대의 차량이 준비되고, 개조 되었다. 다양한 각도로 스릴 넘치는 추격을 담기 위해 리모트-드라이브(원격 운전) 장비를 이용하기도 했고, 차량 위에 카메라를 설치, 차 전문 스턴트맨이 운전을 하여 마치 배우들이 차 안에서 운전하는 것처럼 보이게 촬영하기도 하였다.

   차량 액션 연출에선 승용차나 오토바이를 이용한 다양한 위기 상황을 설정해 담아내는 게 중요하다. 차량의 충돌과 추돌은 기본이다. 본 시리즈에선 차가 계단으로 내려가고, 오토바이가 언덕을 뛰어 오르고, 좁은 골목을 관통하고, 인도로 뛰어들다 유리창을 뚫고 지나가고, 골목에서 빠져나와 수많은 차의 흐름 사이로 끼어들면서 추돌사고를 일으키고, 수많은 행인들 사이를 곡예 하듯이 피해서 가고, 터널에서 서로 부딪히며 달리다 나뒹굴면서 화염에 휩싸이는 장면들을 다양하게 연출하여 극적인 긴장감을 끌어내고 있다. 차량 추격신은 아니지만 3부 모로코 탄지에르에서의 추격신도 매우 잘 연출되었다. 도망가는 니키, 그녀를 죽이려고 뒤 쫒는 킬러와 그것을 막으려고 킬러의 뒤를 쫒는 본, 그런 본을 잡으려는 현지 경찰들이 복잡한 서민 주택가를 헤집고 다니는 장면들이 매우 생동감 있고 연출되어 본 시리즈를 차별화된 액션 스릴러로 거듭나게 하였다. 


서스펜스 스릴러가 넘치는 명 장면들

   본 시리즈 폴 그린그래스의 2, 3편이 덕 리먼의 1편 보다 더 평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격투 및 차량 액션 신외에도 서스펜스와 스릴이 넘치는 몇몇의 장면 덕분이라고 본다. 대표적인 것이 2편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역 장면과 3편의 워터루 기차역 장면이다. 물론 3편 워터루 기차역의 경우엔 짧은 격투와 총격 신이 있긴 하지만, 그런 장면은 그야말로 액션 코디네이터의 도움이 거의 필요 없이 감독 그 자신의 치밀한 연출 콘티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2편 알렉산더 광장 장면을 보자. 이 장면에서 본이 본부에 전화해 자신이 자수하는 조건으로 잘 아는 사람인 니키를 알렉산더 광장으로 보내라고 한다. 본부는 본을 놓고 두 간부 에보트와 랜디가 갈등한다. 에보트는 자신의 비리가 폭로될까 봐 본을 죽이자고 하고, 본에 호의적인 랜디는 에보트 속내에 의심을 품고 일단 그를 본부로 불러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상관인 에보트 주장대로 본부에선 니키에게 녹음기를 숨기고 보낸다. 동시에 그를 죽이기 위해 요원들을 미행시킨다. 하지만 본은 그것을 미리 예견한 듯 많은 사람들이 데모하느라 혼란스런 광장의 상황을 이용해 요원들을 따돌리고 니키를 데리고 가면서 추궁한다. 그는 니키가 도청기를 달고 있을 것을 예상하고 본부에서 듣고 있는 랜디가 들으라는 듯 자신이 누명쓰고 있음을 알리는 발언을 하고, 그로인해 랜디는 에보트를 통해 듣고자 했지만 못 들었던 숨은 사실들을 알게 된다. 그러자 에보트는 당황한다. 이런 식으로 설정한 심리적 긴장관계는 치밀한 시나리오와 연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3편 <본 얼티메이텀>에서 워터루역 장면은 그보다 훨씬 극적으로 연출된다. 본은 기자 로스에게 전화를 걸어 워터루역 광장에서 만나자고 한다. 당연히 본부에선 도청하고 있다. 그래서 로스를 미행시키고, 킬러 요원을 투입한다. 본은 붐비는 광장에서 기다리는 로스에게 자기가 가져온 대포 폰을 몰래 넣어주고 그것으로 서로 떨어져 이동한 채 통화한다. 이때부터 본과 로스, 그리고 본부와 킬러가 급박하게 평행 몽타주 된다. 수많은 인파를 사이에서 정말 실제상황처럼 연출되는 그 장면들은 놀라운 순발력으로 위기를 헤쳐 가는 본과 전화통화를 한 채 두려움에 떨며 움직이는 로스 기자, 그리고 번번이 뒷북치며 쫒아 다니는 요원들, 또한 본부에서 CCTV로 모니터하며 안달하는 간부들이 교차 편집으로 빠르게 보인다. 특히 본이 로스를 버스정류장에서 푸른 후드 모자를 쓴 남자 옆에 서서 통화하게 지시하여 요원들이 오해하게 만드는 장면이나 광장에 요원들이 나타나자 정확한 타임을 계산하여 로스에게 얼른 앉아 신발 끈을 매도록 지시해서 숨기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본의 멋진 대처 능력을 감탄하게 만든다. 이 신은 그야말로 히치콕적인 스릴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뛰어난 연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제이슨 본의 캐릭터 : 꽃미남 스타 브래트 피트 캐스팅 실패는 행운

   덕 리먼 감독이 본 시리즈 판권을 확보한 뒤, 가장 먼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찾은 이유로 그 영화사가 캐릭터 중심의 영화를 주로 만든다는 것 때문이었을 정도로 본 시리즈는 그야말로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 영화나 다름없다. 모든 사건이 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스토리 흐름도 그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내는가? 그리고 그를 제거하려는 CIA 본부와 대결에서 어떻게 대응하여 가는가? 그의 정체성은 일종의 미스테리로 관객과 같이 하나씩 풀어 헤쳐 가는 식으로 전개되고, 관객은 그가 아는 만큼 알아갈 뿐이다. 즉 관객은 완전히 본에게 동일화된 채 움직인다. 스토리 전개는 그의 정체성이 하나씩 밝혀지는 과정이다. 그러한 주인공 역할을 맡은 맷 데이먼은 과거 잘 생기고 폼 나는 전형적인 비밀요원 분위기가 아닌 정말 진짜 요원 같은 분위기로 제이슨 본을 뛰어나게 잘 구현해 내었다. 애초에 영화사에서 꽃미남 스타 브래드 피트를 캐스팅하려다 실패한 것은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차선책으로 배역을 맡게 된 맷 데이먼은 과거의 액션영화의 공식을 깨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등장인물과 그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 매우 신경을 썼다고 한다. 제이슨 본은 단지 정의와 선을 실현하는 영웅은 아니다. 그는 선악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다. 단지 그는 정보국에서 살인병기처럼 훈련받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악당이었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린 후, 기억을 찾아가면서 자신의 저지른 행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고 가책하면서 자신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정보국을 폭로하는 선한 영웅이 된다. 폴 그린그래스는 제이슨 본에 대해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지닌 다소 양심적인 캐릭터이자, 이 부패한 세상에서 진실을 탐구하고 홀로 될 운명을 타고 났다.’라고 말한다.

   사실 덕 리먼의 영화 1편 보다 2, 3편에서 폴 감독의 연기 연출이 뛰어나다. 어떤 장면은 아예 몰래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배우들이 표정이 리얼하다. 그건 이미 <블러디 선데이>에서도 선보인 바 있지만, 폴의 다큐멘터리적인 촬영과 연출 방식 덕분일 것이다. 배우들에게 상황에 맞는 기본 동선만 부여하고 최대한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한 뒤, 여러 대의 카메라로 다양한 각도에서 배우의 동선을 쫓아가며 촬영한 것처럼 보인다. 독립영화에서 있을법한 그런 자연스런 연기 연출 스타일을 할리우드 영화에 적용해 성공한 케이스라고 하겠다. 

뛰어난 연기 창조는 기본적으로 배우 그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필요하지만, 감독의 연출력, 즉 어떻게 배우에게 동선을 주고 상황 설정을 해주느냐, 어떻게 촬영과 편집을 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또한 인물의 캐릭터를 생생하고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선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시나리오 상에 이미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캐릭터를 살리는 멋진 대사들 

  본 시리즈에선 제이슨 본이 과거 특수요원으로서 설득력 있는데다 나름 멋있고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대사와 에피소드가 많이 배치되어 있다. 예를 들면, 1편에서 제이슨 본으로서 살았던 아파트에 도착해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전화 재다이얼을 누른다. 레지나 호텔에서 받자, ‘혹시 거기 제이슨 본이란 사람 묵고 있냐’묻고, 아니라고 하자 케인이라는 이름의 다른 신분증을 꺼내 다시 묻는다. 그리고 호텔에서 ‘2주전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자, 본은 그 케인을 추적해 간다. 이런 식의 본능적인 감각은 특수요원으로서 그의 과거로 인해 설득력 있다. 본에게 주어진 멋진 대사도 그의 캐릭터를 살리는 데 한 몫 한다. 가령, 2편 알렉산더 광장 장면 직전에 본은 망원경이 달린 총을 본부 사무실에 겨눈 채 파멜라 랜디와 통화한다. 그는 본부에 들어가고 싶으니 여자 요원 니키를 보내라고 한다. 본이 망원경으로 사무실 내부를 엿보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랜디가 ‘만약 그녀를 당장 못 찾는다면?’이라고 하자 본은 ‘쉬울 거요. 바로 당신 옆에 있으니까’ 라고 한 뒤 바로 통화를 끝낸다. 그때서야 랜디와 본부요원들은 당황해서 밖을 내다본다. 관객 입장에선 통쾌하다. 

   비슷한 상황이 2편의 에필로그에서 다시 반복된다. 랜디는 다시 본의 전화를 받는다. 그녀는 상관 에보트의 비리 증거가 담긴 녹음기를 건내 준 것에 대한 고맙다며 그간의 일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사과를 한다. 그리고 만나고 싶다고 하자 본은 거절하는 표현 대신 ‘당신 피곤해 보여요. 좀 쉬어야 겠어요’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는다. 3편에서도 본의 멋진 대사는 계속된다. 영화 후반에 본이 뉴욕 본부에 전화를 걸어 요원들을 밖으로 유인한다. 책임자인 노아 보슨이 거리에서 본을 찾다가 그의 전화를 받는다. 보슨이 당장 만나자고 하자 본은 당신 지금 어딨냐고 묻는다. 사무실에 있다고 거짓말 하자 본이 말한다.‘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있게?’하면서 끊는다. 그 대사는‘웃기지 마라. 나는 이미 당신 방에 들어와서 비밀금고를 열려고 하고 있어’라는 말을 재치 있게 돌려 말한 것이다. 그가 전화한 목적은 비밀금고를 여는 음성신호인 보슨 본인의 목소리를 녹음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관객은 알고 재밌어 한다. 1편에서도 본의 상대 유인작전은 이미 멋있게 묘사된 적이 있다. 파리에서 간부 콘클린을 퐁네프 다리로 유인한 뒤, 그들의 차에 도청장치를 붙이는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그 외에 본의 캐릭터를 강화시킨 또 다른 에피소드가 많다. 1편에서 요원을 격투 끝에 죽이고, 다른 요원들을 막기 위해 가스 선을 자르고 토스트기에 책을 넣어 불이 붙게 장치한 다음 뒷문으로 빠져 나간다. 그때 들어가려던 요원들은 집이 가스폭발을 일으키자 나가 떨어지고, 본은 유유히 사라지고 만다. 

   3편 워터루 역 장면에서도 기자 로스와 본부 요원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본의 모습이나 에필로그의 마지막 숏에서도 빛을 발한다. 식당에서 있던 니키가 강물에 떨어진 본의 시체를 3일째 못 찾았다고 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씩 웃는 게 보이고, 그 다음 장면에서  물속에서 죽은 듯이 떠있던 본이 갑자기 살아난 듯 몸을 움직여 헤엄쳐 가며 영화가 끝난다. 이런 식의 장면 연출은 배우 스스로가 애쓰지 않아도 이미 그 상황 자체로 캐릭터를 멋있게 만들어 준다.

   맷 데이먼의 주장대로 본은 도덕성 앞에서 고민하는 현대적인 인간이고, 그의 고뇌는 우리 모두가 겪는 현대적 고민이다. 그런데 본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데는 역설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인 슈퍼맨 코드를 일부 수용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은 기존의 007처럼 한 번도 격투나 차량 추격에서도 지지 않고 놀라운 두뇌와 강한 격투 솜씨로 살아남는다. 본 시리즈의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지만, 본의 그런 초인적인 체력과 두뇌 덕분에 관객은 이 제이슨 본에게 환호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음악과 다양한 음향 역시 본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기존의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가 대부분 겉멋과 과잉된 감정을 고양시키는 데 주력하는 반면에, 존 포웰이 만든 음악은 이 작품의 캐릭터와 주제를 살리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타악기 선율이 주가 된 그의 음악은 액션의 긴장감을 살려주면서 동시에 본의 자아를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의 느낌을 힘 있으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로 매우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새롭게 편곡된 모비(Moby)의 주제가(Extreme Ways) 역시 마지막 장면의 액션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짜릿한 엔딩을 마무리 해준 부분도 좋다. 


마침내 21세기형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의 완성

   본 시리즈가 차세대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로서 성공하고, 유사 장르 영화들과 달리 스타일리쉬한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형적인 선악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인간의 정체성을 심도 깊게 접근한 주제의식과 생생한 캐릭터 묘사, 겉치레와 과장을 최대한 배제한 사실적인 카메라와 편집, 그리고 정서적인 긴장감과 상황의 리얼리티를 강화시킨 액션 스릴러 장면들의 뛰어난 연출 등,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다양하게 조화를 이룬 덕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독립영화 연출 스타일이 전통적인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 장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물론 본 시리즈가 할리우드에서 찬사만 받은 건 아니다. 그의 작품의 뛰어난 연출과 재미를 인정하면서도 명백한 한계를 지적한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풀리처 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다. 그는 본 시리즈에 대해, 비록 본이 자아를 찾아가는 내면세계를 잘 그리고 있으나 그는 여전히 미국식 슈퍼맨 영웅의 찌꺼기가 다소 남아 있고, 차량 추격 장면의 강도로 볼 때 본은 이미 1편에서 죽었어야 할 거라고 꼬집는다. 그러면서 2편 마지막에 본이 자신으로 인해 희생된 네스키 의원의 딸에게 사과하는 것을 보고 에버트는 ‘본은 그녀에게 사과하기 전에 그의 과도한 차량 추격으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된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본 시리즈는 제작진이 표방하듯 21세기형 할리우드 액션스릴러다. 그 시리즈가 이전 작품들과 차별화 될 수 있었던 건 대중에게 보다 친근한 새로운 액션 영웅을 만들어낸 연출력의 힘이 크다. 하지만 이런 영화가 어느 순간 자생적으로 나온 것은 아니다. 과거의 수많은 고전 영화들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장르나 카메라 테크닉에 있어선 <해외특파원>(1940)이나 <이창>(1954),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1959), <프렌지>(1972)같은 히치콕의 영화들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1편의 은행장면이나, 미국대사관 탈출 장면, 2, 3편에서 반복되는 망원경으로 엿보며 통화하기 등이 그 실례다. 특히 1편, 작은 호텔에서 마리와 본이 사랑을 나누는 순간 카메라가 건물에서 서서히 뒤로 빠지며 복도와 입구를 거쳐 거리로까지 길게 트랙 아웃으로 나오는 장면은 <프렌지>(Frenzy, 1972)에서 살인자가 희생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준 뒤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카메라 워킹과 매우 흡사하다. 또한 폴 그린그래스는 3편에서 로스를 저격하고 도망간 암살요원을 본이 뒤쫓아 가지만 전철역에서 놓치는 장면은 본격 차량 추격 영화의 원조로 유명한 윌리엄 프리드킨의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 1971)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감독 스스로 고백한 바 있다. 

   우리 한국영화에선 과거에 할리우드식의 첩보 액션 스릴러란 장르는 그 스케일과 액션의 난이도 때문에 쉽게 제작되지 못했으나 최근에는 할리우드 액션스릴러 못지 않은 리얼한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한국영화에서 액션 스릴러란 장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본다. 스토리 구성능력도 많이 좋아졌고, C.G 수준도 높아졌다. 격투 액션과 차량 추격 액션 역시 할리우드 못지 않게 발전했다., 액션 스릴러는 분단국가로서 무한한 스토리가 잠재된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대중적 장르라고 본다.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필자의 본 시리즈 연출 분석이 이후 한국형 액션스릴러 장르를 활성화 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길 기대한다.(* 본 글은 2010년 학술등재지인 영화학회의 '영화연구'지에서 실린 제 논문을 현재 관점에서 수정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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