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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훈 Nov 18. 2020

환자에게 커피를 처방하는 병원, 망원동 소아과

그래도 병원이 무서운건 어쩔 수 없다구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주일을 보내며 어느새 찾아온 금요일, 모처럼 주어진 자유시간이다. 필자는 일찍 퇴근하거나 조금의 시간이 주어지면 병적으로 커피를 마시러 뛰쳐나가곤 한다. 그렇게 망원동을 가로질러 병원에 도착했는데, 그 병원이 바로 망원동 소아과다.


망리단 길 한복판에 있던 소아과를 기억하는가, 이곳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1982년 개업한 이래로 40여 년간 뭇 남자아이들의 고래사냥(?!)과 지역 어르신들의 건강을 책임졌던 소아과였다고 한다. 이제는 커피와 디저트를 통해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자 카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고. 그저 이름이나 컨셉만 병원의 모양을 한 것이 아닌, 요즘 말로 '근본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망원동 소아과 1층으로 들어가면 밝은 실내 분위기에 압도된다.


1층 문을 열고 들어가면 스테인리스 재질이 많이 보이는 까닭에 커피 바는 미래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저 멀리 반대편 벽은 쇼핑백에 조명을 달아 눈부신 인테리어를 완성했는데, 덕분에 왠지 미래의 병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암튼 이곳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뒤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면 야외 테이블과 2층 실내 공간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나온다. 바 맞은편으로는 오래되어 보이는 장(長)의자가 보이는데, 이 의자는 실제로 병원에서 썼던 의자라고 한다. 한 번 앉으면 왠지 그때로 타임머신 타고 돌아갈 것 같아 필자는 앉아보지 못했다. 병원이란 무서운 곳이니까. (2층의 방 중에는 저 장의자가 가득한 방도 있다. ㅎㄷㄷ.. 그 방은 안 가야지.)


순간적으로 진짜 병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하는 디테일.


바 위를 한 번 살펴보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역시 언제나 뭇 아이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주삿바늘이다. 물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필자는 어릴 때부터 주사는 기가 막히게 잘 맞았지만, 사실 주사를 맞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가치유(?!)를 하여 주사 맞을 일이 없었다. 대충 건강했다는 뜻이다. 암튼 무시무시한 주삿바늘 뒤로는 약 봉투가 보인다. 젤리나 과자를 약 봉투에 포장해두었는데 필자의 취향 저격이다. 심지어 저 6묶음이 2천 원이라니, 홀린듯 지갑을 열어 젤리와 함께 필터 커피로 케냐 아이스를 주문했다. 옆엔 베이커리가 있었는데, 저 빵을 보자마자 왠지 불치병도 치유될 것 같은 강한 힘을 느꼈다. 확실히 이곳은 병원이 맞다.


빵은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병원 1층 바에 뱅앤올롭슨 베오사운드2라니. 일단 귓병은 확실히 다 나았다.
장담하는데 밝은 낮에 이곳에서 사진 찍으면 무지 잘나올 것이다.


 격동의 주문과정을 지나 뒷문을 열고 나가면 필자의 옛날 살던 동네의 할머니 댁 뒷마당이 생각나는 공간이 나오는데, 날이 좋을 때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커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면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 자연치유랄까. 게다가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해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러 나왔다가 잠시 들러 목을 축이고 가기 좋을 듯하다. 하지만 이 야외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면 동네 꼬맹이들이 장난친답시고 담장 너머 주택 사이사이에 숨어 BB탄 총으로 쏠 것만 같은 보이지 않는 위협도 느껴졌다. 물론 지금은 그 아이가 커서 필자가 되어 더는 BB탄 쏠 일이 없겠지만.


저 튼튼해 보이는 유리문보다 왠지 까만색 배경에 금색으로 디자인되고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야 열리는 철문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의 2층 입구.
2층 실내 공간은 반려동물 입장이 금지 되어 있다.
옛날 감성 그득한 2층 실내


2층의 실내는 그야말로 옛날 감성이 그득하다. 이따금 잘살던 동네 부잣집 아들인 친구의 집도 생각이 나면서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방문했던 병원이 생각난다. 천장에 매달려있는 전등과 시간마다 중후한 소리로 정각임을 알리는 장시계가 엔틱한 느낌을 그대로 전해준다. 테이블과 의자는 새로 구비했겠지만 엔틱한 느낌을 해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심플한 것으로 선택했다. 의자들은 대체로 폭신폭신하나, 등받이가 없어 오래 앉아있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실제로 필자는 창가쪽에 자리 잡아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불편해 결국 등을 기댈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붉은 커피와 약 봉투에 젤리를 담아서 스테인리스 트레이에 받으니 왠지 약을 처방받는 느낌까지 든다.


망원동 소아과는 뎀셀브즈의 원두를 사용한다. 종로를 대표하는 커피 로스팅 컴퍼니인 카페뎀셀브즈는 뛰어난 바리스타들을 많이 배출해낸 곳으로 유명하다. 이제 곧 20주년을 바라보는 뎀셀브즈의 커피 맛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픈 몸에 한약이 흡수되어 건강한 몸이 되듯이 맛있는 커피가 흡수되니 스트레스 많던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제 이곳은 필자 전용 카페인 전문 병원으로 지정한다. 커피를 처방해준다면 평생 환자로 살아도 좋다.


상당히 맛있게 마셨던 케냐 아이스.
이곳저곳에 디테일을 두어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흔히들 병원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는 공간은 카페든 음식집이든 흰색 바탕에 빨간 십자가로 포인트 주거나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병원임을 티 내려고 열심히 꾸미는데, 이곳은 병원 그 자체였으니 티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서 디테일에 조금 더 신경 쓸 수 있던 것 같아서 진짜 병원에서 커피를 마시는 느낌이다. 시국도 시국인 데다가 망원동엔 요즘 사람들의 발걸음이 예전만큼 못한 것 같은데 망원동 소아과로 인해 망리단길도 다시금 부활하길 기대해본다.



※ 글, 사진 :  BW에디터지훈

instagram : @ljhoo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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