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든어제 Oct 04. 2021

아이가 등을 대고 잔다.

100일의 기적은 있다.

생후 30일

 신생아기가 끝나며 우리 아이는 등을 대고 자는 법을 잊었다. 특히 낮에는 양팔로 꼭 안아주어야만 잠을 잤다. 한 팔로 핸드폰이라도 볼까 싶으면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아이를 재울 때는 보고 있던 TV 프로그램이 끝나도 채널을 바꿀 수 없었고, 듣고 있던 팟캐스트가 끝나도 다음 콘텐츠를 틀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아이에게 매여있었다. 다행히 낮밤은 구별해서 밤에는 잠시지만 등을 대고 잠을 잘 수 있었다.


 50일까지 아이는 2시간에 한 번씩 맘마를 찾았다. 아이가 2시간마다 깬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그 뜻이 내가 2시간씩 자고 일어난다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깨면 기저귀를 먼저 갈아주었다. 용쓰기가 심해 잘 게우고 토하는 아이였기에 수유를 하면 트림 시킨 후에도 15-20분씩 안아 깊게 재워야 했다. 아이가 깊게 잠든 걸 확인하고 눕히면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이는 한 시간 뒤 일어날 것이다. 나는 밤새 한 시간의 육아, 한 시간의 잠을 반복했다. 다행히 평일 아침에는 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2-3시간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었고, 주말부부로 떨어져 지내던 남편이 오는 금요일 밤이면 조금 더 긴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생후 50일

  50일이 지나며 수유 텀이 길어졌고 이제 3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했다. 아이의 수유 텀이 늘어나며 나의 수면 시간도 한 시간 늘어날 것이란 예상과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아이는 여전히 바닥에 등을 대지 않았다. 바닥에 등을 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이를 눕히기 위해 무릎을 굽히면 아이는 고도를 읽기라도 하듯 몸을 비틀며 잠에서 깼다. 50일이 되자 소위 말하는 '등 센서'의 민감도는 최고조를 찍었다. 그리고 밤에도 등 닿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깊게 잠든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 눕히는 순간 아이는 눈을 번쩍 떴다. 재워서 눕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눕혀서 재워볼까 하는 마음으로 쉬닥법, 안눕법을 시도해보았다.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백색소음을 다 들어본 것 같다. 우리아이에겐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아이를 안고 방을 수십 바퀴 돌던 밤, 진한 커피와 피로회복제가 너무나 간절했지만 수유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수유를 위해 방에 마련해둔 작은 소파는 아이를 눕히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밤에 아이를 안고 쪽잠을 청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한 시간이라도 누워서 잘 수 있었던 때가 그리웠다.

 내 품에 안겨 잠든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웠지만 새벽 4시가 지나도 품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는 아이는 무서웠다. 밤이 되어 아이와 둘이 방 안에 남겨지는 것이 겁나기 시작했다.



생후 70일

 남편이 기적을 선물했다. 친정 부모님과 공동 육아를 한다고는 하나, 밤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평일 내내 잠 못 드는 나의 투정을 받아주는 것은 온전히 남편의 몫이었다. 다행히 남편은 나의 짜증 섞인 투정에 짜증으로 맞대응하지 않았고 그 안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읽어주었다. 그리고 찾아낸 답. '등을 대고 자지 않는다면 옆으로 누워 자자.'


 금요일 밤, 퇴근한 남편은 내가 임신하고 배가 나오면서 사용한 바디 필로우를 들고 왔다. 딱 아이가 옆으로 누울 수 있는 공간만 남기고 바디 필로우를 고정시켰다. 그날 밤 아이는 다섯 시간을 잤다. 아이의 칭얼거림을 듣고 시간을 확인한 순간,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휴대폰의 액정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남편에게 그가 '2021년 가장 잘한 일'이라고 무한한 칭찬을 쏟아냈다. 남편은 나에게 기적을 선물해주었다.



 희한하게도 낮에는 옆으로 눕히는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아이의 낮잠은 여전히 나의 손발을 묶어두었지만 아이를 재우고 나면 나도 '누워서, 길게' 잘 수 있다는 사실이 밤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며 아이의 팔다리에는 힘이 더 붙었고 바디필로우쯤은 가뿐하게 밀어냈다. 기적은 아주 짧았고 아이는 바디필로우를 밀어내며 더 큰 칭얼거림과 함께 잠을 깼다.



생후 100일

 정확하게 102일이 되던 밤, 뒤척이는 소리에 아이를 바라보니 역시나 팔다리로 힘껏 바디필로우를 밀어내 옆으로 누웠던 자세가 풀어져 있었다. 등이 바닥에 닿은 모습을 보며 얼른 옆으로 다시 눕혀야 하나 고민했지만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곧 깰 텐데 그때 일어나자,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자 라는 생각을 하며 눈꺼풀은 닫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났다. 정말 오랜만에 출근날 알람을 못 들었을 때의 긴장감을 떠올리게 하는 기상이었다. 왜 벌써 아침이지, 새벽에 아이가 우는 소리를 못 들은 걸까, 분명 곧 깨어났어야 했는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온갖 생각으로 복잡한 마음으로 돌아본 아이는 놀랍게도 등을 대고 자고 있었다. 100일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거짓말처럼 아이는 이날 이후로 낮과 밤 모두 등을 대고 잠을 잔다. 지금 이 순간도 아이는 등을 대고 누워 잠을 자고 있다. 밤 10시에 잠들면 새벽 3-4시쯤 꼭 한 번 깨어 맘마를 찾지만, 누워서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이렇게 잠시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손발의 자유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지난 몇 달의 수면 패턴을 정리하고 보니 아이는 100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이도 컸다. 내 생에 가장 길고 혼란스러운 100일이었지만 나의 아이에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이 소중하고도 귀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사랑하는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에게 자문해본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더 잘할 수 있을까?


 No. 나는 절대 시간을 되돌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작고 소중한 기적을 놓칠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세상에 너를 데려온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