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스름한 종이
그 남자는 말을 능숙하게 잘했습니다. 막힘이 없이 가이드를 설득했습니다. 여행사의 일정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를 찾아다녔습니다. 자유여행을 자주 다녀서인지 거침없더군요. 동네 카페나 초등학교, 개인이 관리한 작은 사원, 시장 안에 있는 식당 등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시골 안쪽까지 들어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문화 체험이라고나 할까요. 남의 나라나 우리나라나 거기서 거기더군요. 그는 인솔자를 꾀어 조카들과 같이 클럽에 가자 했습니다. 그 남자는 자신만만하게 덤벼드는 기개가 마치 30대 청년처럼 달려들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갈까? 말까? 망설였지요. 나이 든 사람이 젊은이 축에 끼어 망신살이 뻗치는 건 아닐까. 한편으로는 클럽 문화가 궁금했습니다. 로비에서 만나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른이 같이 가야 아이들이 아무 탈 없이 맘 놓고 놀 수 있으니, 우리가 보호자가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나와는 상관없으니 다녀오라 했습니다. 그 말이 서운했는지 "우리 광주 어디에서 만났죠? 제가 그림도 그려줬는데…." 그는 나를 알고도 모르는 척했더군요. 나 또한 처음부터 알아챘지만, 아는 체 안 했습니다.
가이드가 알아본 장소는 호텔에서 가까운 클럽이었습니다. 이른 밤이라 주변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화가가 되겠다. 서울로 상경했는데 건축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는지.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싶었는데 꿈은 이뤘는지. 그는 대답은 하지 않고 웃기만 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클럽으로 들어갔습니다. 듬성듬성 무리 지어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서서 맥주를 마시면서 몸을 가볍게 흔들고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이 북적북적 모여들었습니다. 음악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취기가 올라오자,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중앙무대에 몇 명이 올라가 춤을 추기 시작하자, 풍선이 사람들 머리 위로 둥둥 떠다니더군요. '저게 대체 뭐야?' 하고 물었더니 해피벌룬(신경가스를 주입한 풍선)이라 했습니다. 일종의 마약 성분이 들어있다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곳에서는 쉬이 볼 수 있는 장면이라더군요. 두려웠습니다. 어떤 결과가 불러올지 상상하니 클럽에서 뛰쳐나가고 싶었지요. 제가 이런 일에는 좀 예민합니다. 미성년 아들에게 이런 모습까지 보여주다니. 자기와 같이 왔으니 진짜 교육이라며 개의치 않았습니다. 대담하면서도 유들유들한 배짱에 놀랐습니다.
대전에서 세종으로 이사하면서 오래된 책들을 정리했습니다. 낡은 책을 뒤적뒤적하다가 시집 한 권을 집어 들었지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겼습니다. 혹시 압니까? 만 원짜리 지폐라도 나올지.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빛바랜 종이가 바닥에 떨어진 거예요. 바로 주었습니다. 책상에 엎드려 오른손 밑에 왼손을 얹고 한쪽 얼굴이 보였습니다. 입술 옆으로 침이 흘려있는 것을 펜으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더군요. 마치 실물을 복사한 것처럼. 얇은 책갈피에 고이 끼어져 있었습니다. 귀한 건 원래 꼭꼭 숨어 잘 안 보인다지요. 누르스름한 종이에 잠자는 내가 있더군요.
그 남자(라오스에서 만난)는 학원에 오면 수업은 안 듣고 매일 책상에 엎드려 잤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시름시름 졸려 나도 그랬습니다. 학교가 아닌 재수학원이라 짝꿍이 없는 혼자 앉는 한 줄 책상이었습니다. 바로 옆 책상이었죠. 어쩌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얼굴을 돌렸고 눈떠보면 그가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차마 서로 보기가 민망스러웠는지 미소로 답했나 봅니다. 어느 날 내 책상 위에 종이가(침 질질 흘리며 자는 그림) 놓여 있었습니다. 그해 가을, 그는 서울로 떠났습니다.
그 시절 공부는커녕 책상에서 잠만 잤던 빛바랜 기억, 누르스름하게 변한 종이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와 애달픈 사연이 있는 것도 아녔습니다. 옷깃만 스친 인연. 이렇게 우연히 만날 줄 몰랐습니다. 잘 살고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