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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ki Lee Feb 08. 2022

프라이팬으로 커피를 볶아요

옥상에서의 로스팅

“여보, 커피가 다 떨어져 가는데?”     


아내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매일 커피를 즐기는 아내는 집에 원두가 넉넉히 있어야 마음이 편한가 보다. ‘빨리 볶아 놓지 않으면 죽을 줄 알아!’ 쯤으로 알아들어야 가정이 평안하다.

    

원두는 볶은 지 사흘에서 보름 이내가 맛이 좋다. 갓 볶은 원두는 숙성이 덜 된 맛이 나고, 보름이 지나면 신선도가 떨어진다.  한 달에 두 번 커피를 볶는다. 나의 로스팅은 초라하다. 프라이팬같이 생긴 수망식 로스터와 휴대용 가스버너가 나의 로스팅 장비이다. 대개 예가체프와 케냐AA를 기본으로 하고, 다른 생두 하나를 추가하여 세 종류를 볶는다. 한 번에 100그램씩, 여섯 번 볶아 보름치 커피가 완성되면, 일부는 딸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아내와 내가 즐긴다.  

수망식 프라이팬(핸디 로스터)로 로스팅하고 있다

옥상에 매트를 깔고, 가스버너와 바람막이를 설치한 후 로스팅을 시작한다. 며칠 따뜻하던 날씨가 오늘따라 무척 춥다. 점퍼 지퍼를 끝까지 올린다. 프라이팬에 생두를 올리고 버너의 불을 최대로 둔다, 반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리고, 앞뒤로 두 번 당기는 웍질을 시작한다. ‘찰찰찰~ 쓱쓱~’ 웍질 소리가 경쾌하다. 곧 생두가 노랗게 변하고 열 받은 생두가 타닥타닥 소리 내며 터지는 팝핑이 일어난다.


이때쯤 프라이팬과 버너 사이의 거리를 더 띄워 불을 조절해야 한다. 불이 세면 원두 표면이 타버리거나 기름으로 번들거리고, 약하면 오래 걸릴뿐더러 커피 맛이 달라진다. 불 조절에서 중요한 것은 버너의 균일한 화력이다. 화력이 약해지면 경험에 의한 계산과 달라져 원하는 커피 맛을 내기 어렵다.


두 번째 생두를 볶으려는데 버너의 화력이 눈에 띄게 줄어 있다. 남은 가스를 확인해 보지만 묵직한 것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가스통 표면이 매우 차갑다.  추운 날씨로 통이 지나치게  냉각되어 가스가 잘 나오지 않는 것 다.  


가스통을 점퍼 안에 넣어 온도를 올리기로 한다. 가스통이 품에 들어오자 가슴이 서늘하다.  한번 로스팅이 끝날 때마다 가스통을 바꾸고는 차가워진 가스통 품기를 반복한다.

숯불 로스터 - 실패작이다

커피 맛을 조금 알게 되자 직접 로스팅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테라스가 있는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 온 후, 숯불로 로스팅하는 기계인 오토그릴을 25만 원 주고 샀다. 바비큐용인데 군밤이나 커피를 구울 수 있도록 로스팅 통이 옵션으로 들어있었다. 참숯에 불을 피워 기계에 넣고, 생두를 담은 로스팅 통을 장착하면, 모터에 의해 통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온도를 조절할 수 없어 로스팅할 때마다 결과물이 들쑥날쑥했다. 번 해보고는 창고에 처박아 두었다.     

가정용 로스팅 기계 - 역시 창고에 처박아 두었다

 

이듬해 70만 원쯤 주고 가정용 로스팅 기계를 추가로 사들였다. 전기로 작동하는데, 균일하게 로스팅되고 사용 방법도 간단했다. 다만 로스팅할 때마다 기계를 설치하고, 로스팅 후 청소하고 보관하는 것이 불편했다. 결정적으로 커피 맛이 약간은 비어있는 느낌,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 물론 내 입맛은 아주 주관적이다.



우연히 수망식 프라이팬(로스터)을 알게 되어 속는 셈 치고 4만 원에 하나 샀다. 바닥에 벌집처럼 구멍이 뚫려 있고 로스팅 중 원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윗면이 살짝 오므려져 있다. 연기와 흩날리는 껍질 때문에 아파트 실내 주방에서는 사용하기 어렵다. 옥상에 최적화된 로스팅 방식이다

수망식 핸디 로스터

완전 수동식이다 보니 로스팅 상태가 균일하지 않. 탄 것도 있고 덜 볶은 것도 섞여 있다. 이러니하게도 여러 원두를 섞지 않았는데도 탄맛, 신맛, 쓴맛의 조화가 생긴다. 게다가 직화 로스팅이어서 커피의 향과 맛이 좋다. 전기구이와 직화로 구운 치킨의 차이쯤 될까. 벌써 5년 넘게 수망식 프라이팬으로 로스팅하고 있다. 어쩌면 돈이 적게 들어서 좋다고 우기는 것일 수도, 혼자 커피 볶는 호젓한 시간이 좋아서 일수도 있다.     


평소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로스팅이 끝났다. 로스팅한 원두를 유리 밀폐 병에 담아 주방 선반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병에 가득 찬 원두를 보니 마음이 넉넉해진다. 딸에게 보낼 원두를 작은 박스에 포장한다. 내일 택배로 보낼 것이다.       

로스팅한 원두 - 보름치 분량이다

프라이팬으로 볶은 원두로 핸드드립 하여 커피를 내린다. 내릴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맛일까?’ 기대하게 된다. 내 입맛에는 프랜차이즈 커피보다 훨씬 맛있다. 덕분에 도시의 옥상 생활이 오늘도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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