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생존의 계절
가을이 되면 정원의 식물들은 이파리를 떨구고 겨울을 날 준비한다. 봄, 여름, 가을, 좋은 계절에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냈지만, 겨울에 생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옥상의 겨울은 생각보다 춥다. 25층이라 높고 탁 트여 있어 한겨울 서북풍을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 체감 온도는 지상보다 3℃는 낮은 것 같다. 식물에는 혹독한 계절이다.
옥상 식물은 대부분 화분에 심겨있다. 외기에 노출되어있어 식물의 뿌리도 대기 온도를 그대로 접한다고 보면 된다. 텃밭이나 산의 식물은 땅속에 뿌리를 둔다. 땅속 온도는 영하 10℃ 이하의 강추위에도 대기보다 따뜻하고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김장김치를 땅에 묻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부지방에서 충분히 월동한다고 알려진 식물도 옥상에서는 겨울나기가 힘들다.
여러해살이 야생화나 나무들은 월동에 신경 써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추위에 강한 식물만 골라 심는 것이다. 검색이 생활화된 세상이라, 특정 식물의 월동 가능 여부는 인터넷에서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내 옥상을 풍성하게 가꾸기 위해서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심게 된다. 나무 시장에 갔다가 어느새 트렁크에 실려있는 올리브나무나 유칼립투스를 보는 것도 예사다.
우리 옥상에도 다양한 식물들이 살고 있다. 몇 년간의 경험에 따라, 이제는 식물 선택에도 주의하게 되고, 초겨울이 되면 우리 집만의 월동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
우리 집은 식물을 4종류로 나눈다. 첫째는 노지 월동이 가능한 식물로 장미, 나무수국, 라벤더, 블루베리 등이다. 두 번째로 비닐하우스 월동이 가능한 식물로 란타나, 수국, 야생화, 로즈메리, 어린 나무들이다. 세 번째는 베란다 월동이 가능한 여러 다년생 초화류 들, 마지막으로는 실내에서 키워야 하는 식물들이다.
비닐하우스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난방시설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파트 옥상의 비닐하우스는 화재 위험 때문에 히터 등을 설치하기 어렵다. 하우스 안에 온도는 외기보다 2~3℃ 높은 정도이다. 바람만 막아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해가 나면 하우스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햇볕이 좋은 날에 밀폐된 하우스 안의 온도는 거의 40℃까지 올라간다. 식물이 받는 스트레스가 커지게 된다.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한다.
유리로 된 멋진 비닐하우스는 두 평만 해도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넓은 테라스라면 몰라도 열댓 평 남짓한 우리 집 같은 좁은 옥상에서는 쉽게 설치하고, 또 철거하여 보관할 수 있는 접이식 비닐하우스가 제격이다. 우리 집은 비닐하우스 두 개를 설치했는데, 큰 것은 8만 원, 작은 것은 5만 원 주고 사서 몇 년째 쓰고 있다. 3월이 되면 접어서 다락방 창고에 보관한다.
안방 베란다는 창을 열 수 있고, 어느 정도 난방이 되기 때문에 식물 월동에 가장 유용하다. 오전에 창을 열어 놓고 해지기 전에 다시 닫는다면 햇볕과 통풍 두 가지를 만족시킬 수 있다. 웬만한 식물은 베란다에서 무난하게 겨울을 날 수 있다. 다만 좁아서 식물을 많이 둘 수 없고, 가끔 물을 주기 때문에 습도가 높아서 베란다 벽에 곰팡이가 무성하게 끼게 된다. 봄이 되어 식물을 다시 꺼낸 후 반드시 곰팡이 제거를 해야 한다.
테라스에 들어가기 어려운 키가 큰 나무라든지, 온도를 10℃ 이상 유지해줘야 하는 식물은 거실이나 다락방 등에 둔다. 올리브나무나 겨울에 꽃을 볼 수 있는 초화류들이다. 노지 월동이 가능한 식물이라도 기본적인 보온 조치는 해야 한다. 바람을 막아주고 햇볕이 좋은 곳에 화분을 두면 좋다. 어려우면 비닐이나 헌 옷 등으로 보온 조치를 해 주면 좋다.
올해는 유칼립투스를 실내에 들이지 않고 해가 잘 드는 옥상 벽 옆에 두었다. 화분은 비닐을 씌워주고 몹시 추운 날에만 나무 전체를 비닐도 덮어주었다. 유난히 추웠던 올 1월도 잘 견딘 것을 보면 앞으로도 유칼립투스는 월동에 문제없을 것 같다.
옥상 식물 키우기는 긴 호흡으로 해야 한다. 다년생과 1년생 식물, 나무와 초화류 들을 조화롭게 배치해야 질리지 않고 즐길 수 있다. 그러려면 월동 대책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반려동물에 비하지 못하지만, 잘 키운 식물이 겨울을 나지 못하고 죽어 나가면 허무하다. 겨울은 식물이 쉬는 계절이 아니라 생존하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