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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ki Lee Feb 23. 2022

도시에서 장을 담가 볼까?

옥상 장 담그기

빵과 샐러드로 아침을 먹어온 지 꽤 오래지만, 하루에 한 번은 한식을 먹어야 속이 편하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라면 더욱 좋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식습관이라 바꾸기가 어려운가 보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담근 장으로 만든 음식을 먹었다. 엄마는 음력 정월이 되면 꼭 장을 담갔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큰누나가 역할을 대신했다. 결혼한 후로는 된장이나 간장을 얻어먹지 못했다. 장을 직접 담그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로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베란다가 좁아 장독을 둘 공간이 부족했다. 또 장은 시골에서 담그는 것이라는 인식도 강했다.     


마트에서 산 된장은 뭔가 맛이 부족했다. 옛 맛이 그리워 된장이 맛있다고 소문난 가게를 찾아다녔다. 대전이나 옥천, 세종의 맛집에서 맛있는 된장찌개를 먹고 나면 주인에게 사정해서 조금씩 된장을 샀다. 된장이 떨어지면 그 집에 다시 전화해서 택배로 받았다. 아쉬운 것은 택배로 받은 된장은 맛이 조금씩 부족했다. 마트 된장과 집 된장의 중간쯤이라 할까.      


옥상 테라스가 있는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 온 이듬해, 처음으로 장을 담갔다. 두 달 뒤, 장 가르기를 하고 맛을 보니 생각했던 맛이 아니었다. 텁텁하고 감칠맛도 부족해 마트 된장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혹시 된장 맛집은 조미료를 넣는 게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도 들었다.    

  

해가 바뀌어 묵혀둔 장을 다시 맛보았다. 맛이 조금 좋아진 게 느껴졌다. 3년이 지나 맛을 보니 어릴 때 먹던 바로 그 장맛이었다. 역시 장은 묵어야 맛이 드는가 보다. 아마 전통 된장 파는 곳도 3년이 아니라 1년짜리 된장을 팔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후 매년 음력 정월에 장을 담근다. 된장뿐 아니라 고추장도 직접 담가서 먹는다. 어느덧 장독대의 항아리가 아홉 개로 늘었다.    

 

장 담그기는 메주 만들기로 시작한다. 콩을 불려 삶고, 메주 모양으로 다듬, 따뜻한 방에 두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아파트에서는 힘들다. 그냥 잘 띄운 메주를 사서 장을 담그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주로 인터넷에서 메주를 사다 보니, 순창, 영월, 파주 등 해마다 구입처가 달라진다. 간수를 뺀 소금만 있으면 장 담그기는 무척 쉽다.     



조상님들은 ‘손 없는 날’을 택하여 장을 담갔지만, 우리 집은 양력 2월 중 따뜻한 날을 잡아 장을 담근다. 몇 년째 담그다 보니 항아리 수가 늘어나 올해는 조금만 담그기로 했다. 메주 4㎏을 준비했다, 소금, 생수, 참숯과 말린 고추 약간만 있으면 재료 준비는 끝이다.  

메주 4kg을 잘씻어 말린다

    

먼저 메주를 물과 솔로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려둔다. 커다란 양푼에다 소금물을 만든다. 달걀을 소금물에 띄워 500원짜리 동전만큼 뜨면 염도가 대략 18%쯤 된다. 씻어 놓은 장독에 소금물 걸러서 넣고, 메주와 참숯, 고추를 넣는다. 누름개로 가볍게 눌러 놓으면 장 담그기 끝이다. 그다음은 햇볕, 바람 그리고 시간이 알아서 장을 숙성시킨다.

    

두 달 뒤에 장을 가를 예정이다. 메주와 색이 검게 변한 소금물(간장)을 다른 그릇에 나누면 된다. 눅눅해진 메주는 으깨 된장 항아리에 담고, 간장은 한번 끓여 식힌 다음 간장 항아리에 넣는 것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요리 하나 배우기보다 쉽다.

새로 담근 장 항아리

     

묵은 간장이 충분한 해는 된장이 아니라 막장을 담기도 했다. 메주에다 보리, 고추씨 등 재료가 추가된다. 간장을 빼지 않아 된장보다 감칠맛이 좋고 빨리 먹을 수 있다. 당연히 된장보다 만들기가 복잡하다. 유튜브나 블로그에 보면 막장 비법이 많다. 취향대로 고른 후 따라 만들면 된다.  


새로 담근 장 항아리를 장독대에 둔다. 마음이 푸근하다. 올해는 장독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까 보다. 남서향으로 종일 햇볕 잘 드는 곳에 장독을 두었더니 장이 딱딱하게 말라갔다. 햇볕이 덜 드는 남동향의 처마 밑이 적당할 것 같다.  

   

장 담그는 집이 점차 줄고 있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사 먹는다. 시골 사는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장을 얻어먹을 곳도 없다. 도시에 살더라도 옥상이 있는 집이라면 장을 담글 것을 권한다. 재료를 믿을 수 있을뿐더러. 항아리들이 줄지어 서 있는 장독대를 보면 마음이 넉넉해질 것이다.   

  

귀촌을 준비하고 있다. 시골에 적당한 땅을 마련하면 콩을 직접 길러야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기른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메주를 띄워 장을 담그고 싶다. 가까운 친지들과 나누어 먹다 보면, 또 누군가는 장 담그기를 시작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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