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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ki Lee Mar 02. 2022

2월의 옥상정원

암중모색의 시기 그러나 즐거움은 있다

올해 2월은 유난히 추웠다. 남에서 훈풍이 불어오길 기대했지만, 계속되는 차가운 서북풍에 옥상 정원은 얼어붙었다. 예전엔 삼한사온이 있어 춥다가도 며칠 풀어지는 날씨에 마음을 녹일 수 있었다. 요즘은 이상 기온의 영향인지 한 주간 내내 추울 때가 많다. 그래도 3월이 가까워지니 따뜻한 날씨가 이어진다.

바짝 말라버린 2월의 국화

 2월의 옥상 정원은 삭막하다. 이파리를 다 떨군 관목들, 그리고 바짝 말라 손만 대도 바스러지는 국화 줄기, 이따금 부는 바람에 펄럭이는 비닐하우스의 소리마저 을씨년스럽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저기에서 생명이 움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화 줄기를 헤집으니 화분의 흙을 비집고 쑥같이 생긴 새싹이 올라오고 있다. 오월 초가 되면 10㎝ 크기로 자랄 것이다. 그때쯤 싹을 잘라서 꺾꽂이하면 여러 개의 새 국화 화분이 생긴다. 가을 정원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수국도 움을 틔우고 있고, 장미 줄기에도 여린 순들이 자주색으로 맺혀있다. 뒤편에 심어 놓은 블루베리도 가지마다 물을 올려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화초 씨앗을 뿌려 베란다에 두었다

2월 중순쯤 화초 씨앗을 조그만 포트에 뿌린 다음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두었다. 백일홍, 네모 필라, 다알리아, 메리골드 등. 여러 색깔의 백일홍 씨앗 중 핑크 백일홍만 발아에 성공했다. 조만간 포트에 나누어 비닐하우스에서 모종으로 키워도 될 것 같다.

      

미니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채소 씨앗도 뿌렸다. 루꼴라, 치커리, 양상추, 로메인 등이다. 추위에 강한 루꼴라가 가장 왕성하게 싹을 내고 있고, 다른 것들도 여리게 싹을 낸다. 집에서 3㎞ 인근에 10평 정도 텃밭을 얻어 농사를 짓는다. 4월과 5월 초에는 노지 텃밭에서 쌈 채소나 샐러드 거리를 얻기 어렵다. 그때 먹을 수 있는 신선한 푸성귀를 옥상 비닐하우스에서 얻고 싶은 마음이다.

미니 비닐하우스에는 샐러드용 씨앗을 파종했다

    

장미는 새순이 돋기 전에 전지 해주어야 하는데, 올해는 약간 늦은 것 같다. 묵은 장미 가지에서는 꽃을 많이 내지 못한다. 관목 장미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전지를 해야 한다. 굵은 줄기를 밑에서부터 30㎝ 정도만 남기고 톱이나 전지가위로 잘라 준 다음,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자른 부위에 소독제를 발라준다. 덩굴장미도 3년 이상 된 묵은 줄기를 과감히 잘라버리고, 줄기마다 잔가지를 잘라서 정리해 주면 된다.

짧게 전지한 관목 장미들

흙도 준비해야 한다. 커다란 통에 작년 화분에 쓰던 흙을 모두 붓고, 퇴비를 넣어 잘 섞은 다음, 2주 이상 두는 것이다. 실내에서는 냄새 때문에 가축분 퇴비를 사용할 수 없지만, 옥상에서는 잘 숙성된 것을 사용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퇴비 섞은 흙을 바로 사용하면 숙성과정에서 가스가 나와 식물의 뿌리가 상한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흙으로 새 화초도 심고, 화분 분갈이에도 이용한다.


화분에 쓰는 흙은 벌레나 병균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밭의 흙을 바로 사용하지 않는다. 옥상에 큰 정원을 꾸미려면 무게 때문에 가벼운 인공 흙을 사용한다. 하지만 화분에 쓸 정도라면 근처에서 구해도 된다. 나는 건축 현장에서 파낸 깨끗한 흙에 상토, 퇴비를 섞어 화분의 흙을 만들었다. 비율은 흙 50%, 상토 30%, 퇴비 20% 정도. 물 빠짐이 좋아야 하는 식물이라면 마사토를 섞으면 좋다.  

  


봄이 다가오니 수국에도 봉오리가 맺혔다

처음 옥상 정원을 꾸몄을 때는 빨리 꽃을 보고 싶은 마음에 3월 초부터 화훼농장에 다녔다. 추위에 강하다는 줄리아, 팬지 등도 3월 꽃샘추위를 이기지는 못했다. 몇 번 그러고 나니 정원이나 텃밭이나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상식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꽃도 좋지만, 정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얻는 소소한 기쁨도 크다. 2월의 마지막 날, 종일 옥상을 정리하고 청소했다. 묵은 때를 벗기며 반가운 봄을 기다리는 기분에 힘든지도 몰랐다.     


2월의 정원은 암중모색의 시기다. 비록 아름다운 꽃이나 푸르름은 없어도, 식물들은 햇볕의 기운을 몸에 축적하고 한다. 겨울의 추위에 움츠러든 것 같지만, 때가 되면 새 생명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걸 지켜보는 정원사의 마음도 식물과 동화된다.


2월이 있어야 꽃 피는 3월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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