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ki Lee Mar 17. 2022

유칼립투스, 옥상 월동에 성공하다

유칼립투스와 올리브 나무의 월동기

중부지방인 대전의 겨울도 혹독하다. 게다가 바람길에 자리 잡은 아파트라 25층 옥상은 한겨울에 체감온도가 영하 20℃까지 떨어지는 듯하다. 지난 1월은 유난히 추운 날씨의 연속이었다. 난방 설비가 없는 비닐하우스 안도 영하 5℃ 이하로 떨어졌다.

다락방 창밖에서 겨울을 나는 유칼립투스

    

옥상 테라스에 둔 유칼립투스가 걱정되었다. 화분을 두꺼운 비닐로 봉하고, 줄기와 잎사귀도 큰 비닐을 뒤집어씌워 놓았지만, 강추위에 견딜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바람에 휘청이는 녀석을 조바심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3년생 유칼립투스를 키우다 죽인 적이 있었다. 덩치가 커져서 베란다 월동이 힘들어서 겨우 내 거실에서 키웠는데 물 주기를 소홀히 해서 말려 죽인 것이다. 다시는 유칼립투스를 키우지 않기로 했는데, 아내의 유칼립투스 사랑을 말릴 수 없었다. 새로 온 녀석도 3년이 지나자 키가 화분을 포함해서 180㎝를 넘었다. 실내로 들이기엔 너무 컸다.  

   

미국 기준으로 식물의 월동 기준을 알 수 있는 ‘USDA Plant Hardiness Zone Map’을 찾아보았다. 유칼립투스는 8등급이었다. 즉 영하 12.2℃에서 영하 9.4℃ 범위의 지역에서도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정보였다. 옥상에서도 겨울을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서운 겨울 북서풍을 피할 수 있도록 남동향인 다락방 창밖에 녀석을  세워 놓았다. 매우 추운 날에는 큰 비닐로 나무 전체를 덮어 주었다. 참고로 대전의 겨울도  USDA  8등급 정도다.

                                            https://planthardiness.ars.usda.gov/

추운 날씨에 회녹색의 잎사귀가 단풍이 들어갈 때면 걱정이 컸다.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어 죽는 것 같다가도 낮에 햇살을 받으면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날씨가 풀리는 2월이 되니 이제는 충분히 겨울을 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올리브나무는 다락방 안에서 겨울을 났다

유칼립투스와 덩치가 비슷한 올리브 나무는 다락방 안에서 겨울을 났다. 지중해성 식물인 올리브 나무는 ‘USDA  Hardiness Zone 등급’이 10이라 영하 1.1℃~1.7℃가 월동 가능 온도다. 통풍이 잘되지 않는 방에서 지내느라 그런지 대부분 이파리가 말라가며 뚝뚝 떨어졌다. 이파리 몇 개만 달린 앙상한 올리브 나무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얼마 전 '야생동물 구조센터' 담당자의 인터뷰를 보았다. 나무 밑에 떨어진 새끼 새를 발견했을 때, 데리고 가서 보호해 줘야 하는지, 그냥 야생에 맡겨 두어야 하는지 물었다. 둘 다 일장일단이 있는데, 자기 생각은 힘들겠지만, 동물은 야생에 있을 때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식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햇빛과 바람이 부족한 실내에 있는 것보다 견딜 수 있다면 야외에서 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 물론 개인 욕심으로 야생 식물을 옥상에서 키우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옥상 월동에 성공한 유칼립투스

3월 초, 긴 겨울 가뭄을 달래는 봄비가 내렸다. 유칼립투스를 테라스의 가장 중앙, 잘 보이는 곳에 세워 놓았다. 겨울 추위를 이긴 녀석이 듬직했다. 올리브 나무도 다락방에서 꺼내 유칼립투스가 있던 자리에 두었다. 촉촉한 봄비를 맞은 녀석들의 이파리가 싱싱해졌다.  

   

정원을 가꾸며 가장 힘든 일은 내 잘못으로 몇 년을 키운 식물을 죽여 쓰레기 봉지에 담는 것이다. 아깝다기보다는 미안한 감정이 앞선다. 올해의 경험을 살려 내년엔 올리브나무의 월동도 시도해 봐야겠다. 그러려면 더 큰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2월의 옥상정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