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지방인 대전의 겨울도 혹독하다. 게다가 바람길에 자리 잡은 아파트라 25층 옥상은 한겨울에 체감온도가 영하 20℃까지 떨어지는 듯하다. 지난 1월은 유난히 추운 날씨의 연속이었다. 난방 설비가 없는 비닐하우스 안도 영하 5℃ 이하로 떨어졌다.
다락방 창밖에서 겨울을 나는 유칼립투스
옥상 테라스에 둔 유칼립투스가 걱정되었다. 화분을 두꺼운 비닐로 봉하고, 줄기와 잎사귀도 큰 비닐을 뒤집어씌워 놓았지만, 강추위에 견딜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바람에 휘청이는 녀석을 조바심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3년생 유칼립투스를 키우다 죽인 적이 있었다. 덩치가 커져서 베란다 월동이 힘들어서 겨우 내 거실에서 키웠는데 물 주기를 소홀히 해서 말려 죽인 것이다. 다시는 유칼립투스를 키우지 않기로 했는데, 아내의 유칼립투스 사랑을 말릴 수 없었다. 새로 온 녀석도 3년이 지나자 키가 화분을 포함해서 180㎝를 넘었다. 실내로 들이기엔 너무 컸다.
미국 기준으로 식물의 월동 기준을 알 수 있는 ‘USDA Plant Hardiness Zone Map’을 찾아보았다. 유칼립투스는 8등급이었다. 즉 영하 12.2℃에서 영하 9.4℃ 범위의 지역에서도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정보였다. 옥상에서도 겨울을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서운 겨울 북서풍을 피할 수 있도록 남동향인 다락방 창밖에 녀석을 세워 놓았다. 매우 추운 날에는 큰 비닐로 나무 전체를 덮어 주었다. 참고로 대전의 겨울도 USDA 8등급 정도다.
추운 날씨에 회녹색의 잎사귀가 단풍이 들어갈 때면 걱정이 컸다.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어 죽는 것 같다가도 낮에 햇살을 받으면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날씨가 풀리는 2월이 되니 이제는 충분히 겨울을 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올리브나무는 다락방 안에서 겨울을 났다
유칼립투스와 덩치가 비슷한 올리브 나무는 다락방 안에서 겨울을 났다. 지중해성 식물인 올리브 나무는 ‘USDA Hardiness Zone 등급’이 10이라 영하 1.1℃~1.7℃가 월동 가능 온도다. 통풍이 잘되지 않는 방에서 지내느라 그런지 대부분 이파리가 말라가며 뚝뚝 떨어졌다. 이파리 몇 개만 달린 앙상한 올리브 나무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얼마 전 '야생동물구조센터' 담당자의 인터뷰를 보았다. 나무 밑에 떨어진 새끼 새를 발견했을 때, 데리고 가서 보호해 줘야 하는지, 그냥 야생에 맡겨 두어야 하는지 물었다. 둘 다 일장일단이 있는데, 자기 생각은 힘들겠지만, 동물은 야생에 있을 때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식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햇빛과 바람이 부족한 실내에 있는 것보다 견딜 수 있다면 야외에서 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 물론 개인 욕심으로 야생 식물을 옥상에서 키우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옥상 월동에 성공한 유칼립투스
3월 초, 긴 겨울 가뭄을 달래는 봄비가 내렸다. 유칼립투스를 테라스의 가장 중앙, 잘 보이는 곳에 세워 놓았다. 겨울 추위를 이긴 녀석이 듬직했다. 올리브 나무도 다락방에서 꺼내 유칼립투스가 있던 자리에 두었다. 촉촉한 봄비를 맞은 녀석들의 이파리가 싱싱해졌다.
정원을 가꾸며 가장 힘든 일은 내 잘못으로 몇 년을 키운 식물을 죽여 쓰레기 봉지에 담는 것이다. 아깝다기보다는 미안한 감정이 앞선다. 올해의 경험을 살려 내년엔 올리브나무의 월동도 시도해 봐야겠다. 그러려면 더 큰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