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ki Lee Jul 27. 2022

100만 원 걸고 아내와 내기를 하다

때로는 도박을 해야 한다.


도박을 싫어한다. 아니 “도박 좋아하는 사람을 혐오한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돈을 두고 벌어지는 팽팽한 긴장감. 그 쫄깃쫄깃함 때문에 도박을 한다고 하지만, 남의 돈을 쉽게 먹으려는 그 속셈이 내 성정과 맞지 않는다.


딸에게 누누이 당부하는 말이 있다. “남자 친구나 남편감으로서 다른 것은 다 받아들일 수 있지만, 도박하는 남자, 폭력을 쓰는 남자는 절대 용인할 수 없다.”라고. 도박에 빠진 남자는  중독성 때문에 또 도박판에 기웃거릴 것임이 분명하고,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자는 무력에 의존하는 비겁한 생활을 반복할 것임이 자명하다는 게 경험으로 얻은 확신이다.


도박은 나를 피곤하게 한다.

직장의 초급 간부 시절. 도박을 좋아하는 팀장이 있었다. 그 팀장은 휘하의 조무래기 차장들을 데리고 고스톱, 포커 등 도박하기를 좋아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으슥한 가든 식당에서 저녁 회식을 한 후에 의례 판을 벌렸다. 판돈이 많이 걸린 것은 아니지만, 자정까지 이어진 그 판에서 돈을 따는 사람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참 치사한 팀장이다.


돈 잃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나의 선택은 오만 원 잃으면 본전이라는 마인드로 참여하는 것이다. 삼만 원 잃으면 이만 원은 딴 것이니 그런대로 마음이 편했지만, 아픈 무릎을 두드리며 일어날 때마다 참으로 허망했다. 어느 순간, 그런 나쁜 관행은 사라졌는데, 도박에 대한 혐오는 지워지지 않는다.


내기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운동도 돈이나 식사가 걸리면 더 열심히 하고 흥미진진해한다. 특히 여러 명이 참여하는 단체 운동이나, 상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탁구 등에도 뭔가 내기를 걸어야 열심히 한다. 나는 이것도 못마땅하다. 그래서 마라톤, 수영, 계단 오르기 등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선호한다. 사회성이 부족한 아주 지랄 맞은 성격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산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내기의 연속이다. 다른 회사와 매출 경쟁을 하고, 같은 직장 내에서도 승진과 평가에 목을 메는걸 보면 돈이나 출세를 걸고 내기를 하는 것과 다름이 다. 다만 생계와 관련이 없는 일상에서만은 도박과 내기가 없는 평온함이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내가 먼저 내기를 제안했다. 상대방은 우리의 쑤니씨. 거금 100만 원이 걸린 큰 판이다. 내기에 진다면 내 비상금 통장에서 돈을 빼내야 한다. 용돈을 절약해 모은 돈인데, 단 한 판에 날릴 수 있다. 만일 이긴다면 내가 30만 원을 받는 조건이다. 100만 원을 받아야  공평한데, 막무가내가 전매특허인 쑤니씨가 응하지 않았다. 결국 불공정 계약서를 쓰게 되었다.

  

쑤니씨와의 계약서. 자주 보는 화장대에 붙여 놓았다.

작년 시월에 쑤니씨는 신체검사를 받았다. 결과지를 받아보니, 고혈압 초기, 당뇨 초기. 콜레스테롤은 기준치를 한참 넘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이었다. 원인은 분명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제법 날씬했는데, 그 무섭다는 갱년기를 거치면서 체중이 많이 늘었다. 당연히 신체검사 지표들은 나쁜 방향으로 악화되었고, 몸 컨디션도 덩달아 나빠졌다.


체중을 줄이면 모두 해결될 것 같은데, 노력은 하지만 몇 년째 비슷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사실은 올해 3.31일까지 달성하도록 계약서를 썼었다. 하지만 3.31일에 쑤니씨는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았다. 실패하고도 30만 원을 내놓지 않았다.


“내가 안 줄이고 싶어서 그랬는가? 코로나 때문에 운동을 못해서 그렇지. 다 코로나 때문이야. 무효야 무효~!” 결국 목표일을 8.31일로 바꾼 2차 계약서에  서명하고는 다시 다이어트 모드로 들어갔다.


100만 원이 눈에 어른거리는지 요즘 쑤니씨는 운동과 다이어트에 열심이다. 저녁을 6시 이전에 간단히 먹고 14시간 동안 야식을 먹지 않고 공복을 유지한다. 수영 강습도 빠지지 않고, 유튜브 보면서 요가도 열심이다. 조금씩 빠지는 체중에 흐뭇해한다. 한 가지 문제는 살을 찌워야 하는 비쩍 마른 나까지 덩달아 살이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족  간에 내기는 여러 번 한 것 같다. 대학생 때 해외여행 비용을 요청하는 딸과는 TOEIC 성적을 걸고 내기했고, 아들과도 자격증, TOEIC 성적을 걸고 내기를 했다. 그 내기에는 내가 졌다. 돈을 잃었지만, 아들, 딸이 사회 진출하는데 약간은 도움이 된 것 같아 아쉽지는 않았다.  

아들이 대학생 때 토익 성적을 두고 맺은 계약서

내기는 분명히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지는 이 좋다. 남의 돈을 따는 것보다는 사회에 환원한다는 기분으로 잃는 것이 났다. 가족 간의 내기에도 내가 질 때 다들 행복해한다.


쑤니씨와의 내기도 내가 졌으면 좋겠다. 아니 져야 한다. 평생 친구인 아내와 오랫동안 사이좋게 지내려면 마땅히 적극 협조해야 한다.  다만 내기에서 일부러 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