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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ki Lee Oct 25. 2022

대추나무에 사랑이 걸릴까?

조금씩 엇나가는 우리 부부의  사랑


시내에서 독서 토론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좋아하는 책만 편식하다 보니 강제로라도 다양한 책을 읽고 싶어 가입했는데 만족스럽게 다니고 있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아내가 대전역 앞 중앙시장에 옷감을 끊으러 간다고 하며, 일을 다 본 후 픽업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가끔 시내에 나오게 되면 시내버스를 이용하는데 호의가 고마워서 그러자고 했다.


모임을 마친 후 아내에게 전화했다. 쇼핑 중이라며 30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단다. 대전 중앙로에 큰 지하상가가 있다. 다양한 상점, 사람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좋아 시내에 올 때마다 일부러 들른다. 천천히 상가를 구경하며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전통시장이 좋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이사 왔고, 그때 정착한 곳이 면목시장이었다. 살림집이 가게에 붙어 있었고 불편한 공동화장실 등 안 좋은 기억이 너무 많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왁자지껄한 시장 분위기에 곧 적응했고 활력이 넘치는 그곳에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지금도 가끔 전통시장에 오면 그때의 활력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중앙시장에 오면 꼭 사는 것이 방금 솥에서 만든 누룽지다. 아침에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이때 누룽지 한 줌 넣고 누룽지탕을 만들어 멸치볶음이나 매실장아찌를 곁들여 먹으면 속이 편안하다. 우리 집 냉동실에는 밀폐 용기에 담은 누룽지가 끊기지 않는다. 지갑을 열어보니 현금은 만원뿐이다. 전통시장에서 신용카드 쓰기는 눈치가 보인다. 누룽지 두 장을 사고 나니 5천 원이 남았다.

누룽지. 아침에 속편 한 것을 찾을 때 좋다


시장을 구경하며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주차 빌딩으로 걸어가는데, 도넛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도넛은 나의 소울 푸드 중 하나다. 면목시장에서 장사하던 형은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되면 나를 불러 천 원짜리 한 장을 주고 도넛을 사 오라 시키곤 했다. 막 튀긴 노릇노릇한 도넛.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함과 함께 행복감이 밀려왔다. 도넛이 먹고 싶어 형의 장사를 도와준 적도 있었다.

이것은 도넛이 아내라 꽈배기 같다.

오후 4시가 넘은 때라 시장기도 있어 도넛의 유혹을 이길 수 없었다. 남아있던 5천 원을 꺼내 도넛을 사려는데, 바로 옆 리어카를 보니 붉고 실한 보은대추를 팔고 있다. 아내가 좋아하는 가을 것 중 하나가 대추다. 특히 생대추는 사다 놓으면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운다. 장을 보고 무거운 짐을 들고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쓰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최애 도넛을 포기하고 대추 한 봉지를 사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내는 주차 빌딩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깨에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옷감 가게에서 산 물건들을, 다른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출출해서 먹을 것을 좀 샀다고 했다. 당연히 도넛이 들어 있기를 기대했다. 나의 도넛 사랑은 아내도 익히 알고 있다. 시장에 가면 도넛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도넛이 먹고 싶어 대전 인근의 오일장들을 순례한 적도 있다.


봉지를 열어 보는 순간, 실망이었다. 잘 익은 대추였다. 주차장 입구 가판대에서 파는 대추를 보고는 먹고 싶은 마음에 만 원어치나 산 것이다. 아! 우리 부부에게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감동적인 스토리는 무리인가 보다.

아내가 좋아하는 대추

아내는 때때로 이기적인 것 같다. 통닭을 시킬 때도 주저 없이 닭다리를 먼저 집어 든다. 팍팍한 가슴살이나 살이 없는 목 부분도 항상 내 차지다. 음식을 먹다가 싫어지면 접시를 슬며시 나에게 들이민다. 자기는 아이들이 먹다 남은 것도 입에 대지 않지만, 나에게는 남은 음식 처리를 강요한다. 아들, 딸은 아내의 이런 만행을 보고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인 아빠 탓이라며, 그대로 살라고 한다. 하긴 아들, 딸도 어려서부터 설거지나 청소하며 컸으니, 같은 피해자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남편만 믿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시골집에서 시작한 신혼생활을 아내는 힘들어했다. 조금 나아져서 사원아파트에서 살던 어느 날,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부친을 상의 없이 덜컥 모시고 왔을 때도 아내는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핑계로 친구와 둘이 해외여행 간 적도 있고, 사진에 빠져 주말마다 혼자 명승지를 찾아 돌아다녔다. 융통성도 없고, 밴댕이 소갈딱지 같이 속 좁은 남편이었다. 그때 아내는 모든 것을 다 참고 양보해주었다. 늦게나마 철이 들어 미안한 마음에 작은 것을 양보하다 보니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아내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많이 갖고 있다. 어디 가든지 주변 사람들이 아내를 좋아한다. 누나들도 아내를 끔찍이 생각해서 가족 모임 때도 손에 물을 묻히지 않게 하고, 좋은 것을 아내에게 양보한다.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는 나로서는 아주 신기한 일이다. 아마 전생에 왕비였던가 보다. 갱년기를 거치면서 더욱더 사나워진 아내는 요즘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오늘도 점심때가 훨씬 넘었는데도 정원 가꾸는 데만 여념이 없다. 결국 오늘 점심도 내가 차려야 한다.


어쩌겠는가. 남은 인생을 왕비를 모시고 무수리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내 팔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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