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2코스
○ 남파랑길 2코스 : 부산역→영도봉래산→태종대→흰여울마을→남포동 (약 17Km)
○ 일시 : 2024년 1월 15일(월), 10 : 20 ~ 16 : 20 (6시간)
○ 날씨 : 맑음, 영상 10℃, 풍속 1~2m/sec
남파랑길 2코스는 부산역에서 출발하여 부산대교를 건너 제법 큰 섬인 영도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다. 영도는 한국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언덕의 길을 따라 판잣집을 지어 살았고, 아직도 그 흔적들이 짙게 남아있다. 방치된 허름한 집들과 공존하는 재개발된 고층 아파트. 어색한 동거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영도의 역사를 대변해 준다.
부산역에서 부산대교까지 가는 길은 지루하다. 오래된 빌딩, 계속되는 노변 주차장. 여느 도시의 뒷길과 다를 것 없는 그 길을 겨울바람을 맞으며 10여 분 걷다가 보면 부산대교에 도착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부산대교에 올라서면 그 지루함은 이내 탄성으로 바뀐다. 좁은 해협을 따라 선박들이 줄지어 정박하여 있고, 멀리 보이는 부산항과 낮은 능선이 보여주는 풍광에 가슴이 시원해지며, 바다의 도시 부산에 도착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스마트폰에 카카오 지도를 띄어 놓고 길을 더듬어 가다 보면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를 지나 언덕길로 접어든다. ‘삼거리 슈퍼, 멕시칸 치킨, 세원 이용원.’ 세월을 거슬러 30년 전으로 돌아온 듯한 거리풍경. 언뜻 코끝을 스치는 하수도 냄새에 고향을 버리고 면목 시장에 터를 잡았던 어린 시절이 저절로 떠오른다. 가끔 악몽으로 나타나던 그때의 기억이 희미해진 것을 보면 세월이 많이 흐르기는 했나 보다. 유모차를 끌로 나타난 허리가 접힌 할머니가 힘겹게 경사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 풍경도 곧 사라지겠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눈에 담다 보니 봉래산 둘레길 초입에 접어들었다.
봉래산 둘레길은 마을 뒤로 산허리를 감싸며 어깨동무하듯 이어지고 있다. 마을 공동묘지였는지 봉분이 허물어 질듯한 허름한 무덤들이 모여있다. 지름이 채 1m도 되지 않는 작은 무덤들. 몸도 펴지 못할 좁은 공간이라 거기서 어떻게 쉬고 있을지. 고단했던 삶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마음이 쓰인다. 일련번호와 함께 ‘고 ○○○의 묘’라고 쓰인 소박한 목비가 그가 잡은 이생의 질긴 끈으로 여겨졌다.
‘영도해맞이 전망대’에서 본 부산항대교와 신선대부두는 현재진행형의 부산을 보여준다. 부산항대교를 달리다 고소공포증에 아찔했다는 사람이 많은데, 멀리서 보이는 다리 풍경은 오륙도와 어우러져 아름답기만 하다. 쾌적한 둘레길을 두 시간 정도 즐기다 보면 생뚱맞게 아파트 단지 길로 접어든다. 남파랑길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길이거니 생각하니 콘크리트 보도도 걸을 만했다. 남파랑길 이정표는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니 지도와 달리 엉뚱한 곳에 도착해 있었다. 제법 큰 돼지국밥집이 보이길래 들어섰다. 역시 부산에 오면 의식처럼 돼지국밥을 먹어야 하는 법. 국밥 한 그릇에 무겁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원래 남파랑길은 중리초등학교에서 중리 바닷가로 바로 가야한다. 영도를 더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더 많은 곳을 경유하도록 최근에 루트가 변경된 것 같았다. 동삼동패총전시관, 태종대 입구, 감지해변을 거쳐 태종대 오션플라이 테마파크 전망대에 올랐다. 도로 옆에는 주차한 차들이 끝없이 서 있었다. 광활한 남쪽 바다에 잠시 마음을 뺏겼다. 하지만 배낭을 메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인 듯. 어색한 마음에 곧 자리를 떴다. 예정시간보다 1시간은 더 걸려 중리 바닷가에 도착했다.
중리바닷가부터 반도보라아파트까지는 해안가를 걷는 절영 산책로이다. 남파랑길의 백미로 여겨지는 구간이다. 잘 관리된 데크와 계단, 그리고 자갈 해변. 서쪽으로는 송도와 암남공원이 바다 위로 펼쳐져 있어 걷는 내내 눈이 즐겁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365계단으로 접어들었다. 힘들게 계단을 올랐는데 남파랑길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바닷가 길로 계속 가야 했었나 보다. 흰여울 전망대가 나타났다. 멋진 조망에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 아래로 내려오니 흰여울 문화마을이다. 중년의 남자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예쁘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들이었고, 억지로 끌려온 듯한 남자 친구로 보이는청년과 외국 관광객이 섞여있었다. 커피를 한 잔 먹으려했으나 이방인이 된듯 해서 다시 해변길로 들어섰다.
길게 이어지는 방파제길과 깡깡이 마을을 걸으며 오늘 일정을 정리했다. 갑자기 걷고 싶다는 생각에 찾은 첫 남파랑길이었다. 1코스 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남파랑길 시작으로 영도를 걷고 싶었다. 40여 년 전 첫 직장을 얻어 부산으로 이사했었다. 어느 휴일에 친구와 찾았던 태종대. 회사를 떠난 지금, 스무 살 그때의 기억을 곱씹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여섯 시간의 트레킹 내내 행복했었던 것은 그 기억과 함께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