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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불어 사는 사회 Nov 17. 2021

승찬아,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래

특수교사 에세이

그동안 현장에서 다양한 사연을 지닌 학생들을 만나왔다.

장애라는 개성이 있는 아이들은 모두가 나에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 아프게 여겨지는 장애 중 하나가 있다면 근이영양증이다.

근이영양증은 근육이 갈수록 퇴화되어 점점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질환이다.  


유전성 질환인 근이영양증은 보통 취학기 초기에 발병해

근력을 점점 빠지게 하여 곧 휠체어 생활을 하게 만든다.      




6년 전에 처음 만난 승찬이는 중학생으로 이미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어머님 말씀으로 승찬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어느 날부터 자주 넘어졌다고 한다.


처음엔 그냥 몸이 약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넘어지는 일이 반복되니 여러 검사를 받으시고

근이영양증으로 진단받았다고 하셨다.


나도 학교다닐 때 지체장애 시간에 근이영양증에 대해 배워서

이론적으로는 증상과 예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만나게 되니 나도 모르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근이영양증은 현재까지 치료제가 없다.

물리치료 등으로 단지 진행을 최대한 천천히 늦추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승찬이를 처음 봤을 때 조금 의기소침해 보였지만,

난 승찬이가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기를 바랬다.


그래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언제든 참지 말고 말하라고 하고,

평소에도 친근하게 말 걸어주며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힘들면 쉬게 하고

도움반에 있고 싶다고 하면 언제나 도움반에 있게 하였다.


좋아하는 음악도 틀어주며 선생이 아닌 형(형이라고 하기엔 매우 늙었지만^^;)처럼

편안히 다가가려고 하였다.


점심식사랑 화장실 지원은 지도사선생님(보조선생님)이 도움을 주셨다.  


가끔 지도사선생님이 안 계실 때는 밥도 먹여주고 화장실도 데리고 다녀오며

승찬이랑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머지 않아 승찬이는 얼굴에 웃음을 띠기 시작했고,

나에게도 아무 거리낌없이 말을 잘 붙이게 되었다.


승찬이가 밝은 웃음을 되찾자 지도사선생님과 나는 같이 보람이 느꼈고 뿌듯했다.      




등하교는 어머님이 항상 차로 시켜주셨다.


처음에 어머님이 직접 휠체어를 내리고 싣고,

승찬이를 번쩍 들어 올려 차에 태우고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 어떻게 이 일을 매일 하실 수 있을까. 매우 힘드실텐데...

앞으로도 어머님이 감당하실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에 비하면 난 참 편하게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반성하게 되었다.


곧 나도 옆에서 도와드리긴 했지만

어머님이 짊어지는 무게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으리라.


등하교 시켜주시는 어머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난 어머님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길 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승찬이 어머님은 항상 긍정적이시고 예의바르셨다.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시며 다 좋다고만 말씀하셨다.

작은 일 하나에도 언제나 감사하다고 말씀하시고 고마워하셨다.


그런 어머님과 승찬이를 만난 것은 나에게도 큰 기쁨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승찬이가 학교 생활은 웃으며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갈수록 힘이 약해지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2학년 때까지는 휠체어에 계속 앉아있을 수 있었는데

3학년이 되어서는 가끔씩 힘들다고 눕혀달라고 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지도사선생님과 함께 승찬이를 조심히 들어올려 매트에 눕혀주곤 했었다.


그런 모습이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승찬이가 웃을 수 있게 일부러 농담도 하고 재밌는 얘기를 해주곤 하였다.


승찬이가 미소짓자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언젠가는 승찬이가 폐렴에 걸려 보름이 넘게 학교를 안 온 적이 있었다.

면역력이 약한 친구들에게 폐렴은 치명적일 수도 있다.


병원에 입원한 승찬이를 어머님과 승찬이 누나, 형이 번갈아 가며 하루종일 간호해주었다.


승찬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들고 지도사선생님과 병문안도 가서

승찬이가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게 힘을 보태주었다.


승찬이가 다시 학교에 나오자 도움반 친구들도 모두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렇게 승찬이는 즐겁게 학교에 다니며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졸업식날 어머님은 장한 어머니상을 받으셨다.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 나도 찡한 감동이 밀려왔다.

승찬이에게 좀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승찬이가 고등학교에 가서도 건강하게 아프지 않고 잘 다니길...

행복하고 즐겁게 생활하길 기도했다.


우리의 인연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만날 것을 다짐했다.      




승찬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3월 어느 날 오후,

어머님한테서 문자가 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학기초라 많이 바쁘시지요. 승찬이도 고등학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지도사선생님의 따스함이 지금도 느껴지곤 합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그때 대학원 수업 중이었는데,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살짝 강의실에서 빠져나와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승찬이는 밝고 씩씩하게 학교에 잘 적응하며 다닌다고 했다.

승찬이의 목소리까지 들으니 매우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      




이후 가끔씩 승찬이, 승찬이 어머님과 연락하며 안부를 여쭈었다.


승찬이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학교 다니는 게 즐겁고 마음도 편안하다고 하였다.

그런 승찬이가 참 씩씩하고 대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승찬이가 도움반에서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선생님들과 도움반 친구들이 잘 배려해줘서 괜찮다고 하였다.


고등학교 때도 폐렴에 걸려 오랫동안 학교에 안 나오기도 하였다.

그치만 승찬이는 역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으로 잘 이겨내었다.     




난 1년에 한 두번씩 방학 때마다 승찬이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과일을 사들고 집에 찾아갔다.


두 번째 갔을 때는 전에 없던 인공호흡기랑 의료기기가 눈에 띄었다.

뭐냐고 여쭤보니 어머님은 혹시나 몰라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준비해 놓으셨다고 하셨다.


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지만,

승찬이를 위해 어머님도 그렇고 나도 티내지 않고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를 만들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 날은 연락도 없이 갑자기 불쑥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어머님은 밝게 웃으시며


“우와 선생님 정말 잘 오셨어요. 승찬이가 좋아하겠는데요?”라며 환하게 맞아주셨다.


어느 날 방학 때는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간 적도 있었다.

그것도 두 번 이나.


아이들을 어디에 맡기고 갈 수도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장애를 간접 체험하고 배려심과 사랑하는 마음을

스스로 갖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데려갔다.


그때도 어머님은 정말 반갑게 맞아주시며 잘 하셨다고,

승찬이도 말동무가 생겨서 잘 됐다고 오히려 좋아해 주셨다.


어찌보면 당돌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어머님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베풀어 주셨다.


어머님은 늘 반갑게 맞아주셨고, 사들고 간 것보다 항상 더 많은 것들을 대접해주셨다.



     

올해 2월 승찬이는 그렇게 고등학교도 무사히 잘 졸업하였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거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졸업식 날에는 도움반 선생님의 배려로 도움반에서 학생들과 함께 조촐한 졸업식을 치렀다고 했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졸업식 사진을 보며,

승찬이가 이렇게 건강하게 고등학교 과정을 무사히 잘 마쳐서

너무나 다행이라 생각했고, 하느님께 감사했다.      




바로 어제 어머님께서 갑자기 전화를 주셨다.

아는 지인이 제주도에서 감귤 농사를 지으시는데 귤을 선물로 보내주신다고.


난 여전히 승찬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큰데

귤을 보내주신다니 그 마음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했다.


처음엔 사양했지만,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님의 마음이 너무나 크고 고귀했기에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맛있게 잘 먹겠다고 말씀드렸다.


승찬이와 어머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항상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 뿐이다.

하지만 몇 배로 다시 갚아드리면 되니까 미안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어야겠다.     




고등학교 졸업 후 원하는 전공과로의 진학이나

대학 진학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승찬이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승찬이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 원하는 꿈을 꼭 이룰 거라 믿는다.


올 겨울에는 아이들과 함께 승찬이가 좋아하는 거 사들고 승찬이 집에 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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