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연구원을 퇴사한지 1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지만 아직도 정말 엊그제 퇴사한 것만 같습니다. 지금은 특수교사가 되어 나름 보람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 기회에 그 시절을 한번 되돌아보고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지난 간 발자취를 잠시나마 더듬어 봅니다.
지금 이 시간, 짧기만 했던 연구원에서의 6년간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내적 번민이 많긴 했어도 연구원이 첫 직장이었고 30대의 대부분을 보낸 삶의 터전이라 잊을 수 없는 기억들 또한 많습니다. 다시 돌아가고픈 장면들도 추억의 사진첩을 꺼내듯 하나둘씩 떠오릅니다.
연구원에 정식으로 입사하기 전에 6개월 정도 계약직으로 일해 본 터라 많은 분들께서 저를 알아봐 주셨습니다. 또 그 당시 원장님 이하 선배님들께서 좋게 평가해 주시고 환영해 주셔서 아직까지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때는 연구원을 평생 직장으로 여기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평생을 함께할 각오로 들어갔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지금도 저 뿐 아니라 여러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그 당시엔 아직 젊은 날의 고뇌가 끝나지 않아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힘들어하고, 온갖 고민을 혼자 떠안듯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고 마음 한 켠에 고이 간직할 수 있는 기억들을 선사해 준 연구원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인사 드립니다.
연구원 다니면서 수많은 기억들이 있지만, 그 중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꼽으라면, 자원봉사로 중학생들을 가끔씩 지도했던 것과 몰래 산타 행사에 2번 참여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먼저 연구원 입사 후 언젠가부터 동네 주민센터에서 일하시는 복지사님 소개로 중학생들의 공부 지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1회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었는데, 사실 공부보다도 인성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이 오갔습니다. ‘우리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등에 대한 질문을 하며 아이들 스스로 인생의 목적을 깨닫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반성하고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게으름으로 인해 오래 못 한 것이 아쉬웠지만, 친근하게 따르는 아이들을 보며 보람도 느끼고 지금처럼 착한 마음이 커서도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안양 빚진자들의 집에서 주관하는 <몰래 산타 이야기>에 두 번 참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기억 역시 잊을 수 없습니다. <몰래 산타 이야기>는 자원봉사자 분들이 다문화 가정과 장애아동이 있는 가정에 산타 복장을 하고 나타나 미리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주는 뜻 깊은 행사입니다.
출발하기 전 ‘울면 안 돼’라는 캐럴에 신나게 율동을 익히고 선물을 꼼꼼히 챙기면서, 곧 아이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출발하면서 각자 무엇을 할지 역할 분담을 하고, 방문할 집 아이들의 인적사항과 선물을 꼼꼼히 챙겼습니다. 방문한 가정의 아이들은 대부분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었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부모님 모두가 외국인이거나, 어느 한 분이 외국인이셨는데, 아이들은 모두 한 결 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피부색은 조금 다를지언정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은 그대로였습니다. 고맙다고 꾸벅 절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같이 율동을 따라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오히려 우리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먹고 사는데 급급해진 나머지 주변 사람들을 잊고 살기 쉬운데, 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보면서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장애 아동들을 보면서 전혀 의식하진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특수교사로서의 꿈을 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몰래 산타 이야기>에 참여하면서 앞으로의 내 삶의 방향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이들이 커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선물보다 사람들을 더 반가워하는 부모님들과 아이들을 보며 나 자신을 반성하고 이들을 위해 더 많이 교류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보면서 지금 이들의 천진난만함이 앞으로도 변치 않고 유지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또한 장애 아이들을 보면서는 깨끗한 영혼을 가진 이들이 그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우리가 보호하여야 할 순수한 이 아이들이 커서도 세상 사람들의 사회적 차별 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몰래 산타 이야기>에 참여한 분들이 행사를 다 끝내고 났을 때 느끼는 감정은 바로 ‘보람이라는 한 단어로, 어쩌면 모두가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연말에 우리들의 작은 나눔의 손길은 세상을 더욱 밝게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맑은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의 순수하고 하얀 마음이 커서도 변치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요? 우리 어른들이 먼저 모범이 되어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배려한다면 이 세상은 정말 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산타할아버지 복장을 하고 노래를 불러주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어려운 이웃들의 손길을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를 요즘 시기에, <몰래 산타 이야기>는 힘들게 살고 있는 이웃을 위해 작은 사랑이라도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준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저는 우리 사회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강물에 던진 조그마한 조약돌이 파장을 일으켜 결국 강가에 전달되듯이, 우리의 작은 사랑 역시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느낌으로 전달되어 나중에는 사랑으로 가득 한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때 몰래 산타와 공부방에서의 지도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때 묻지 않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보며 이들이 인성적으로 올바르게 자라고 졸업 후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저 역시 정말 뿌듯함을 느낄 것입니다.
교단에 선 지금, 때론 나태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선생님이 되고 아이들이 인성적으로 올바르게 자라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서 - 1) NLP 심리치료 및 상담
2) 정서행동장애 학생 심리치료 및 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