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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기구를 타고 싶은 아이들

특수교사 에세이

by 더불어 사는 사회

2014년에 서울랜드로 현장체험학습을 간 적이 있습니다. 가는 날짜가 늦어져서 12월 초에 가게 되었는데 날씨가 꽤 추워서인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 학생들 6명을 빼고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날이 춥긴 했지만, 놀이기구 타려면 보통은 한참 기다려야 타기 마련인데 사람이 별로 없으니 이것저것 실컷 타겠다 싶어 내심 좋았습니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니 제일먼저 바이킹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다 타고 싶어 해서 타려고 하자, 직원분께서 아이들이 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 아이들 양 옆으로 보호자가 한명씩 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이 다 경증 지적장애 학생들이라 사실 보호자 없이도 얼마든지 잘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부 규정이 그러하니 따라야 했습니다.


저와 같이 간 지도사님이 아이들 양 옆에 앉아야 했으나 제가 바이킹을 못 타는 관계로 직원분께 양해를 구해 지도사님과 직원분이 아이들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저 때문에 하마터면 못 탈 뻔 했는데 저 대신 같이 타주신 직원분이 고마웠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지도사님도 사실 놀이기구를 안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아이들을 위해 타주신 거라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날씨가 꽤 추웠지만 아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신나게 소리지르며 탔습니다.


바이킹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하늘자전거가 보였습니다. 하늘자전거는 공중으로 나 있는 레일이 있고 그 위에 동그란 자전거 모양의 놀이기구에 두 명이 앉아 페달을 밞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놀이기구입니다. 재밌어 보이고 아이들이 타고 싶어 하기에 역시 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직원분께서 아이들이 장애가 있는 것을 바로 알아보시고 “이 놀이기구는 지적장애인들이 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까 바이킹보다 덜 위험해 보이고 똑같이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거라 전혀 문제될 게 없어 보였습니다. “아까 바이킹도 보호자 동행하에 같이 탔는데, 이것도 한 명씩 선생님들이 옆에 앉아서 같이 타면 안 되나요?”라고 물어보았지만, 내부 규정에 의해 이건 위험하니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장애가 심해 돌발행동을 한다거나 조금이라도 위험성이 있어 보이면 타려고 해도 제가 안 태우겠지만, 전혀 그런 아이들이 아니었기에 장애가 있다고 무조건 못 탄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 우리 아이들이 통제에 안 따른다거나 돌발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전혀 아닙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되니까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정 걱정되시면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할 시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서약서를 쓰겠습니다.”


직원분께서는 잠시 고민하시다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개인적으로는 태워드리고 싶지만, 지침이 명확하게 되어 있어서 태워드릴 수가 없네요.”라며 미안해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놀이기구도 못 타게 한다면 중학생인 우리 아이들이 탈 수 있는 건 정말 회전목마 정도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혹시 그럼 장애인은 못 탄다는 그 내부 규정을 좀 볼 수 있을까요?” 다행히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저는 용기 내어 부탁드렸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에 직원분은 내부 규정 문건을 가지고 오셨고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지적장애 및 발달장애인은 돌발행동을 할 우려가 있어서 탑승을 제한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 중증이고 통제가 안 된다면 아무리 타고 싶다고 해도 제가 태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장애 유형이나 정도,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위험하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하는 것은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그냥 갈까 하다가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면 안 될 것 같아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혹시 놀이공원 관련 책임자 좀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 직원분들은 정해진 규정을 단순히 따라야만 하기에 결정 권한이 있는 높은 분들하고 대화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저도 그냥 포기하고 나왔을 텐데 다행히 타려는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직원분은 어디론가 통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후 실무책임자가 오셨습니다. 책임자께서는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며 곤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 한번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었어요. 그 이후로 안전을 위해 장애인의 탑승은 제한하고 있습니다.”


“아 저희 아이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신연령이 낮아 보이지만 중학생들이고 뭐가 위험하고 안전한지 다 아는 아이들이거든요. 또한 돌발행동을 하지도 않습니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발생하면 제가 다 책임진다고 서약서라도 쓰겠습니다.”


안전 상의 이유로 탑승을 제한한다면 만5세 어린아이들의 탑승도 똑같이 제한하여야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5세 어린아이들은 보호자와 같이 탑승 가능하다고 되어 있고, 장애인만 보호자가 있어도 못 타게 하는 것은 모든 우리 아이들이 만5세 어린아이들만도 못하다는 인식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가 서약서를 쓰겠으니 안전에 대한 염려는 걱정마십시오. 우리 아이들이 만5세 아이들보다 똑똑한 건 제가 보장합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번갈아서 동행하여 탈 테니 탈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다시 간곡히 부탁드렸습니다.


지도사님께서도 우리 아이들이 겉보기보다 똑똑하고 절대 돌발행동을 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지원 사격을 해주셨습니다.


그러자 책임자께서는 마지못해 동의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서약서는 쓰지 않으셔도 되고요 그 대신 오늘 한 번만 봐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은 신나서 소리쳤습니다. 힘들게 얻어낸 승낙이었기에 ‘오늘 한번’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하늘자전거를 타는 동안에 책임자께서는 다른 기구를 담당하는 직원분들께도 전화를 걸어 “장애 학생들이 오면 그냥 탈 수 있게 협조해 주세요.”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달나라 열차부터 해서 덜 위험하면서 재밌는 놀이기구를 여러 개 탈 수 있었습니다. 점심도 맛있게 먹고 여기저기 구경도 하면서 재밌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권리인데 작은 규정 하나 바꾸기가 이렇게 힘들까요?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규정이 만들어지기는 쉬워도 바꾸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투쟁과 노력, 시간이 많이 소요되니까요.




2014년에 에버랜드에 놀러 간 홍OO(지적장애 2급) 양과 신OO(지적장애 1급) 군은 놀이기구 이용을 거부당하자, 부모님들이 운영회사인 제일모직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홍 양은 7년 동안 우주전투기를 이용한 바 있는 에버랜드 연간회원이고, 신 군 역시 4년간이나 이를 이용하여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직원분이 홍 양에게 우주전투기를 못 타게 하였고 부모님은 직원에게 “이미 7년 동안 이용한 바 있어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라고 말하였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로써 아이를 위한 즐거운 나들이가 차별로 인해 가슴 아픈 날이 되었다고 합니다.


신 군 역시 다른 날 우주전투기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었는데, 직원이 장애인임을 확인하고 탑승을 거부하였습니다. 신 군의 부모님 역시 자기 아이가 연간회원이고, 4년 동안 과거 수차례 아무 문제없이 이용했다는 말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피고는 44개의 놀이기구 중 우주전투기를 포함해 단 2개만 장애인 탑승을 허용하지 않고 있고, 우주전투기의 경우 돌발적 행동을 할 우려가 있어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탑승을 제한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안전사고의 위험성은 누구에게나 상존하는 것으로 장애인에게 더 많은 위험성이 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으며, 과거 이용 시에도 특별한 위험성이 노출되지 않았다는 점, 키 110cm 이하의 어린이도 보호자와 동반하여 탑승하는 것을 허용하는 점 등을 들어 이 같은 주장이 장차법 제4조(차별금지)와 15조(재화와 용역에서의 차별금지)를 위반한 것이라 판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각 300만원, 부모님들에게는 부와 모에게 각 100만원씩, 합계 1천만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2019년에는 어린이날에 청각장애인 유정아님 부부가 비장애인 딸과 함께 충북의 한 관광시설에서 놀이기구 ‘알파인코스터’를 타려다가 거부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매표소 창구 앞 안내판에는 탑승 제한 사유로 ‘장애인’이 적혀 있었고, 직원 역시 “청각장애인은 안내방송을 들을 수 없으니 탈 수 없다.”며 표를 팔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씨 부부는 알파인코스터를 타지 못하고, 혼자 기구를 탄 딸은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딸은 엄마에게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챙피하다.”고 했지만 엄마는 딸에게 장애는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차별당하는 모습을 딸에게 보이기도 싫었습니다.


유정아님은 어느 장애인 단체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습니다. 인권위는 조사 결과 알파인코스터 차량에 안전벨트가 장착돼 있고 가속과 제동을 하는 손잡이만 있어 조작이 간편하다고 봤습니다. 탑승 전 설명을 통해 응급상황 대처 능력을 높일 수 있고 안전표시판을 설치하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도 봤습니다.


또한 “청각장애인은 시야가 보장된 운행 과정에서 차량의 속도와 코스를 인지할 수 있다.”며 “48개월 이상 어린이도 탑승이 가능해 청각장애인이 놀이기구 운전에 미숙하다거나 안전사고 비율이 높다고 볼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유정아님의 인권위 진정 뒤 해당 관광시설은 청각장애인의 알파인코스터 탑승을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급커브 구간 7곳에 반사거울을 설치해 청각장애인이 방송을 듣지 않고도 스스로 안전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유정아님은 미국, 유럽, 일본의 놀이공원에서는 직원의 설명과 안내를 받고 여러 놀이기구를 즐겼다고 합니다. 오직 우리나라의 놀이공원들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턱대고 거부한 적이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장애인도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고 청각장애인도 자동차 운전을 능숙하게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동차 운전도 문제없이 잘 하는데 놀이기구 운전만 못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는 비장애인 중심적인 생각과 시설 때문에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놀이기구를 타는 건 부탁할 사항이 아닌 어찌 보면 당연한 권리인데, 여전히 우리 사회에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선입견이 존재하여 장애인에 대한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고 느꼈습니다. 장애 유형이나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탑승을 거부하는 것은 관리와 행정의 편리를 위함이지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몰릴 시간에 장애인이 있으면 일일이 장애 유형과 특성을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 만에 하나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전적으로 놀이공원 측에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조금 위험해 보이는 놀이기구는 보호자가 꼭 동행하고 놀이기구 탑승 시 보호자 의견을 꼭 들어보는 것입니다. 보호자가 안전하다는 의견을 진술하고 책임진다는 서약을 하면 태워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놀이공원으로서는 부담을 줄이고 내부 규정을 융통성 있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잘못된 선입견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진식(특수교사, 교육학박사)


< 잠재의식 변화를 통한 발달장애 행동 지원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800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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