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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불어 사는 사회 Mar 02. 2021

아픔을 공감하기

 특수교사를 하면 아이들 교육 및 지도 뿐 아니라, 학부모님과 상담할 기회가 상당히 많습니다. 

교사 1인당 맡는 학생 수가 많아야 6~7명 정도이니 아마도 일반교사보다 훨씬 학부모님과 면담의 기회가 많을 것입니다. 

그만큼 특수교사와 학부모님간 끈끈한 유대관계는 관계 형성 뿐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정말 중요하지요.


 학부모님과의 대화는 단순히 아이의 학교 생활, 교우 관계, 성적 등에 그치지 않습니다. 

때론 장애로 인한 어려움, 현실적인 제한들, 경제 사정, 자녀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모든 문제를 망라하여 대화를 나눌 경우도 있습니다. 


 얘기를 들을 땐 저 역시 깊게 공감하며 들어주려고 합니다. 저는 대화할 때 상대방의 처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부모님과 대화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장애는 어느 순간 해결되거나 나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은 자녀의 장애를 평생 안고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공감하며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저도 많이 부족하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학부모님의 처지를 정말로 내 처지로 여기고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매번 깨닫습니다. 

 물론 저도 상담이 끝나고 집에 오면 개인 활동을 하고 가정 생활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학부모님과 대화하는 시간 동안은 완전히 학부모님의 입장이 되어 가족이 되어 그들의 일원이 되려고 합니다.  

특수교사로서 학생을 학생이 아닌 내 자녀처럼 여기고 대할 때 학부모님 역시 크게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단 하루 만이라도 우리 아이보다 더 살면 좋겠다.”


 부모님들은 장애가 있는 자녀를 평생 걱정하며 삽니다. 특히 부모님 사후에 자녀를 돌봐줄 이를 걱정합니다.

 아무리 먼 미래의 일이고 복지 시스템이 좋아진다고 해도 자녀가 잘 지낼지에 대한 걱정은 매순간 불쑥불쑥 튀어오르는 불안한 감정입니다.


 자녀의 비장애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에는 모든 양육의 책임이 비장애 형제자매에게 돌아옵니다. 

 장애 자녀의 부모님은 비장애 형제자매에게 “우리가 죽으면 너희가 이 아이를 돌봐줘야 한다.”라고 어릴 때부터 주지시킵니다. 

 어렸을 때 비장애 형제자매는 자신도 보호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지만 장애 형제자매에 밀려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때로는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하기에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장애 형제는 이내 자신의 숙명임을 알고 이러한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 일찍 철이 드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환한 웃음 속에 감춰진 장애 자녀 부모님의 쓸쓸한 뒷모습을 가족 이외에 누가 제대로 알 수 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양보를 강요당한 비장애 형제의 아픔을 누가 제대로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저 역시 퇴근해서 가정에 돌아오면 이들의 걱정과 아픔을 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비장애인인 이상 장애인 가족이 겪는 아픔과 고통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공감하며 들어주고 눈물을 흘린다고 해도 결코 그들의 일부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점이 참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누구나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맞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문제가 진심으로 내 일처럼 여길 수 있도록, 감정의 공명이 일어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집에는 30년 된 안네의 일기가 있습니다. 학교다닐 때 학급문고에 있던 조그만 책을 집으로 가져온 것인데 오래 되어 많이 헤졌지만 이사다닐 때마다 이 책만큼은 항상 가지고 다녔습니다. 

 아마 백번도 넘게 읽었을 것입니다. 그 중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 있습니다. 

 은신처 가족들을 제 일처럼 도와주던 미프와 헹크, 엘리는 가끔 은신처에서 식사를 함께 합니다. 

 이들은 은신처 가족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안네 역시 이들이 자신들을 친가족처럼 대해준다는 사실을 잘 알지요. 

 하지만 식사를 하며 나누는 대화는 은신처 생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때론 미프와 헹크, 엘리는 그동안 있었던 파티, 축제, 회식, 놀러간 이야기 등을 하지요. 이들은 숨어사는 사람들이 아니니 당연히 이러한 얘기들도 했겠지요. 

 안네는 이들의 얘기를 들으며 부러워합니다. 식사를 할 때는 한가족이지만 식사가 끝나면 그들은 결국 집으로 돌아갑니다. 일시적으로 한가족이 될 수 있어도 그들은 결국 그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맙니다. 

 안네 입장에서는 이들이 매우 감사한 존재이면서도 한편으론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저 역시 아무리 공감을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저는 장애인 가족이 보기에는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공감하며 들으면 감정의 공명이 일어나고 감정의 공명은 영혼의 공명을 불러옵니다. 더욱 간절하게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울러 단순히 처지를 이해하고 아픔을 공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졸업하고 나서도 꾸준히 아는 것을 실천하는 능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들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여 더 나은 미래가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겪는 고민들은 어쩌면 장애인 가족 분들이 겪는 고민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것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서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들을 볼 때 결국 나중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벌주기 위해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또한 건강한 사람들 역시 하느님이 특혜를 베풀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를 현재의 우리로 태어나게 했는지를 분명히 깨닫는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존재의 이유를 깨닫고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안에 깃든 순수함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겸손하고 사랑하며 희생하는 삶을 사는 것이, 신이 우리를 만든 궁극적 목적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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