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불어 사는 사회 Mar 30. 2021

현우가 꿈꾸는 세상(1)

소설입니다.

 오늘도 기획팀에서의 업무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원래 어느 회사나 기획팀은 중추가 되는 부서이고 바쁜 부서이다. 현우가 일하는 연구원은 연구가 중심이 되는 조직이다 보니 기획팀은 서브 부서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연구업무를 조정하고 허드렛일로 제일 바쁜 곳은 바로 기획팀이었다. 

연구부서에 있다가 1년 전 기획팀으로 온 현우는 업무는 이제 손에 익었지만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많은 터라 늘 애를 먹고 있었다.


“현우씨, 지금 잠깐 내 방으로 오게”

“네, 부장님”


현우는 대략 짐작을 하고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부장님 방으로 향했다.


“자네 어제 처리하라고 준 문건은 잘 처리했나?”

“하려고 했는데요, 김박사님이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하셔서요.”

“뭐야? 그래서 아직 처리하지 못했어?”

“예 부장님, 김박사님께서 주시는대로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부장은 화를 벌컥 내며 말했다.


“현우씨, 왜 자꾸 그렇게 일처리 하지? 지금 자네가 일하는 곳이 자네 개인 회사인가? 여기는 조직이란 말이야, 조직! 자네 하나 때문에 조직 전체가 욕먹고 일정에 구멍이 나서야 되겠나? 도대체 한 두 번도 아니고 왜 이러나. 왜 자네 마음대로 일정을 늦춰가며 일을 하냐구?”

“......”

“자네 다신 그러지 말게. 알았나?”

“예 부장님”

“어디 한번 지켜 보겠어. 이만 나가봐”


 현우는 말없이 부장님 방을 나왔다. 그러면서 또다시 캐묵은 일에 대한 회의가 밀려 들어왔다. 

조직의 이익이 우선이냐 아니면 사람에 대한 배려가 먼저냐는 항상 현우에게 있어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열이면 열 조직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현우는 생각이 달랐다. 

먼저 조직을 우선시 하면 사람이 기계 부품처럼 다루어지는 것이 싫었고, 또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우선시 되어야 조직이 잘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래도 부장님이 약하게 다그친 편이다. 자리로 돌아온 현우에게 팀장님이 잠깐 부르신다.


“현우씨 잠깐 차한잔 하지”

“네 팀장님”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으며 한잔씩 나눠 들고, 둘은 현관 밖으로 나갔다.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 후 팀장이 말했다.


“현우씨 기획팀에서 일하기 많이 힘들지? 연구부서보다 훨씬 바쁘고 사람들 상대하는 일이 많아 힘들거야.”

“아닙니다 팀장님, 그래도 팀장님이 계셔서 전 참 좋습니다.”


현우는 속으로 팀장님에게 감사했다. 언제나 부장님에게 혼나고 올 때마다 팀장님이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현우씨가 순수해서 그래.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텐데...”

“네 맞아요, 팀장님. 제가 괜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도 몰라요”

“현우씨가 절대 버릴 수 없는 가치를 지키고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나도 잘은 모르지만 속으로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는 대략 알아. 그 가치를 실현하려면 어쩌면 이 연구원은 부적절한 직장이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나...나이도 있고 하니 그냥 적응하며 살아야지”

“......”


“세상에 현우씨 같은 사람만 있으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될텐데 말야” 

“아닙니다. 저도 제 이익과 명예를 위해 살고 있는 지도 몰라요. 연구원에 들어오고 처음에는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려고 하고 봉사활동도 하려고 했는데, 언제부턴가 저도 타성에 젖어가고 있더라구요.”

“그래,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게. 자 이제 들어가지”

“네 팀장님, 감사합니다.”


 부장님은 붙같이 무서운 아버지라면 팀장님은 부드러운 어머니 같았다. 

1년 전 기획팀에 처음 왔을 때부터 현우는 부장님이 늘 무섭게 느껴졌다. 늘 일에 지쳐 표정은 어두워보였으며 밝게 웃는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 부장님이 현우는 무섭게 느껴졌지만, 그럴 때마다 인자하게 웃으며 기운을 주신 분이 바로 팀장님이셨다. 


 현우는 이제 연구원에 입사한지 4년이 되었다. 처음에 3년은 연구부서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 여기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엔 그럴싸하고 좋아보이는 직장이었지만 현우는 늘 일보다는 사람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는 것 보다는 자기 일하기에 바쁘고 실적 쌓기에 열을 올렸지만, 현우는 그것보다는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아무리 바빠도 늘 웃으며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점은 연구원에 다니는 내내 늘 현우의 고민거리였다.      

 현우의 원래 꿈은 교사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취직이 잘 되는 경영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경영학도 적성에 맞는 듯 했지만, 가치있고 보람있는 학문이라고 여겨지진 않았다. 

 현우는 군 제대 후 대학교 3학년에 복학하기 전 진지하게 아버지께 말씀드린 적이 있다.


“아버지, 제가 요즘 계속 제 진로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요, 지금 전공하고 있는 경영학은 제 가치관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경영학이 그렇게 재미없어? 그래도 이제 2년만 더 다니면 되잖니!”

“아, 경영학이 재미없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평생 제가 좋아하고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요”


아버지는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현우가 반문했다.

“제가 아이들하고 얘기하고 노는 걸 좋아하는 걸 아시죠?

“응 알지. 그런데?”

“이제라도 늦기 전에 재수를 해서 사범대 또는 교대에 진학하고 싶어요.”

“......”


아버지는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경영학도 좋은 학문이지만, 제가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사람은 선생님인 것 같아요.”

“그래도 현우야, 이제 2년만 더 다니면 졸업하는데 뭣 하러 힘들게 또다시 재수하려고 그러니... 잘 된다는 보장도 없잖니? 나이먹고 공부하려면 힘들텐데, 그냥 지금 학과 열심히 다녀라.”     


현우는 부모님의 기대를 져버릴 수 없었다. 마음 한 켠에는 아쉬운 마음이 남았지만, 부모님의 만류 속에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실에 적응하며 전공을 계속 살리는 쪽으로 취직을 하고자 마음을 결정했다. 


‘나이를 더 먹고 시간이 지나면 뭐 지금 하는 전공도 괜찮게 여겨지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아픔을 공감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