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의 단상: 부끄러운 A+ 보다 떳떳한 A0가 낫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였습니다.
이제 졸업학점까지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4과목만 신청하여 수강하였습니다.
전공 2과목, 교양 2과목 신청하였지요.
4과목 밖에 안 들으니 공부 열심히 해서 학점 관리를 잘 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이 중에서 교양은 둘 다 중간시험, 기말시험이 없이 성적을 평가하는 과목이었습니다.
하나는 ‘생활한자’로 평소 노트필기 한 공책으로만 성적을 평가한다고 하였고, 또 하나는 ‘매스컴의 이해’로 조별 기말리포트로 성적을 평가한다고 하였습니다.
시험이 없다는 말에 이 두 과목은 수강생들이 매우 많았었습니다.
특히 생활한자는 인원이 400명 가까이 되어 학교에서 제일 큰 대강당에서 수업을 하였습니다.
전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모두 A+를 획득해 다음 졸업학기에는 꼭 전액장학금을 받고자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1학기가 끝나고 평점이 나왔는데 전공은 둘 다 A+가 나왔고, 교양은 둘 다 A0가 나왔습니다.
시험 안 보는 건 좋았는데, 노트 필기와 과제만으로 역시 최고 평점을 받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4.5 만점을 받지 않는 한 현재 상태로는 반액장학금이 유력했습니다.
그런데 매스컴의 이해는 조별 리포트로 평가를 받아 조원들이 다 같은 평점을 받았는데,
그날 조장인 친구가 오더니 교수님께 학점을 다시 평가해 줄 수 없는지 여쭤본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고학년이고 군대도 다녀와 학번이 높으니 교수님께 잘 말씀드리면 A+로 올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며 여쭤본다는 거였지요.
뭐 안 되면 그만이고 제가 찾아가는 것도 아니니 전 당연히 OK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조장이 다녀오더니 다행히 교수님이 우리 조원들 점수를 A+로 올려준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조장이 찾아가서 한번 다시 봐달라고 요청한 것뿐이었는데 점수를 올려주시니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저녁부터 제 마음 속에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제 한과목만 A0인데 이것만 A+로 올라가면 만점이 되니, 그렇게만 된다면 다음 학기에는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기 때문입니다.
저녁내내 ‘생활한자도 내일 교수님 찾아가 다시 한번 평가해 달라고 부탁드리면 혹시 올려주시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였고, 저는 그 다음날 찾아뵙기로 결심했습니다.
생활한자는 수업시간에 배운 한자 말고도 그냥 일반 한자들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충실하게 공책에 정리하는 것이 평가 기준이었습니다.
따라서 평소에도 틈틈이 자전에 있는 한자들의 생성 원리, 획수, 부수 등을 찾아 공책에 필기해서 두꺼운 공책을 꽉 채웠놓았었지요.
물론 A0도 잘 받은 거지만 다음학기 전액이냐 반액이냐를 생각했을 때는 꼭 A+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열망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치만 이 공책 그대로 다시 가져가면 왠지 점수를 올려주시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A0에 만족하지 못하고 A+로 올려달라니 교수님은 황당하고 괘씸(?)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잘못된 생각을 품고 공책을 한권 더 구입해 노트 필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2권을 필기해 제출한 것으로 위장하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오직 A+ 받아 다음 학기에 전액장학금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날 저는 밤 새도록 자전에 있는 한자들을 공책에 필기했습니다.
대략 밤 8시부터 그다음날 정오까지 거의 16시간을 책상에 앉아 한자 옮겨쓰기만 했습니다.
어쩌면 일생에 쓸 한자들을 그날 하루 만에 다 쓴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여 공책은 2권이 되었고 ‘고학번이라 잘 부탁드리면 A+로 올려주시겠지.’라는 생각에 전 매우 뿌듯(?)했습니다.
점심을 대충 때우고 전 교수님 연구실로 찾아갔습니다.
교수님 연구실에는 불이 켜져있었고 전 문 앞에서 들어갈까를 수십번 고민하고 망설였습니다.
막상 들어가려니 부끄럽기도 하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그냥 공책을 봉투에 담아 연구실 앞에 놓아두고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들어가서 말씀드리기에는 용기가 안 나고 그냥 가기에는 노력한 것이 아까웠으니까요,
저는 교수님께, 공책을 보시고 다시 한번 평가를 해주시면 좋겠다는 편지를 써서 공책과 함께 연구실 문 앞에 놓아두고 돌아왔습니다.
봉투를 놓고 저는 누가 볼 새라 얼른 뛰어서 내려왔습니다.
봉투를 누가 가져가도 모를 일이지만 더 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점수가 올라가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날 저는 하루종일 기분이 묘했습니다.
‘교수님이 공책을 확인하셨을까? 교수님은 내 편지를 받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뭐 이런 놈이 있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실까? 점수가 과연 올라 갈까?’ 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다른 일들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빨리 다음날이 되어 성적을 얼른 확인하고픈 마음뿐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떨리는 손으로 성적 확인을 클릭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A+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저는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 확률은 반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적이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 저는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4.5 만점이라 졸업 학기에는 등록금을 안 내도 되니까요.
물론 속으로는 조금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받은 학점이라 찔리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생활한자가 처음에 평가받은 공책이 아닌, 개인적으로 더 보충해서 만든 공책으로 다시 평가를 받았으니까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뭐 괜찮은 거지.’라며 애써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리게 되었다는 기쁨에 저는 양심의 가책보다는 기쁨을 더 크게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하며 그때 일을 거의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스승의 날이 되면 또는 삶의 순간순간 마다 이상하게 그때의 부끄러운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부끄러운 감정은 조금씩 커져갔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경제연구원에 들어갔는데 그때도 가끔씩 그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특히 스승의 날이 되면 그날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냥 처음의 공책으로 평가받았어야 했는데... 내가 떳떳하지 못했어.“라는 생각이 아주 가끔 가슴을 옥죄어 왔습니다.
그래도 바쁜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 금방 잊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다 연구원을 그만두고 3년의 투자기간을 거쳐 전 교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교사가 되고 나니 그때 일로 전 양심의 가책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살면서 거짓말도 많이 하고 남을 속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저 때문에 진짜 1등 학생이 전액장학금을 놓친 것이니,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전 그 생각이 날 때마다 마음이 매우 무거워졌습니다.
비록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정직해야 된다. 거짓말 하면 안 된다.”를 떠들면서 정작 나는 어땠는가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과연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가, 내가 떳떳하지 못한데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할 양심이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사가 되고 첫 스승의 날에도 전 생활한자 교수님이 생각나고 밤새도록 한자를 필기하는 철없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공책을 교수님 방 앞에 놓아두고 누가 볼 새라 뛰어내려오던 기억까지...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현 듯 고향 집에 있던 <부끄러운 A학점 보다 떳떳한 B학점이 낫다>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맞습니다. 부끄러운 A+학점보다 떳떳한 A0학점이 훨씬 나은 건데 그때는 그걸 몰랐습니다.
아니 알았어도 스스로 괜찮다고 정당화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교직 2년차 스승의 날이 되었습니다.
스승의 날이 되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학교때 일을 생각나며 무거워집니다.
저는 더 늦기 전에 교수님을 찾아가 용서를 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해보니 교수님은 명예교수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졸업한지 14년이 지났기에 젊던 교수님도 은퇴를 하셨지만 아직 학교에 연구실이 있었습니다.
저는 조교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교수님이 연구실에 계실 거라는 대답을 듣고 학교에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오후에 반차를 내고 음료수 한 박스를 사들고 오랜만에 모교에 갔습니다.
교수님 연구실 앞에 서자 14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문을 노크했습니다. 조교가 대답하여 아까 전화드렸던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교수님 방으로 안내받고 들어갔습니다.
교수님은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흰머리만 늘어난 것 같았습니다.
다른 교양과목들의 교수님 얼굴은 잊혀졌지만, 생활한자 교수님은 성함과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전 교수님께 교사라고 인사드리고, 찾아온 이유와 그동안의 있었던 일을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용서를 빌었습니다.
교수님은 기억하지 못하셨지만, 이런 제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셨습니다.
교수님은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오히려 이렇게 찾아와주어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저는 더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학생들 앞에 서는 교사로서 그동안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 떳떳하지 못했는데 교수님을 찾아 뵙고 용서를 구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교수님도 갑작스런 옛 수강제자의 방문에 기뻐하시니 저도 기분이 좋았고요.
그렇게 교수님과 한 시간여 대화를 나누고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저는 대학교때의 기억과 생활한자 교수님, 그리고 다시 찾아가 용서를 구한 그날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결론은... 정직하게 삽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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