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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Mar 27. 2022

우울증 일기 56. 버스

 버스 

마음을 추스르고 본격적으로 놀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수요일 이후, 목요일부터였다. 수요일도 감정정리는 제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이따금씩 분노가 울컥울컥 올라왔지만. 목요일은 대체적으로 괜찮았다. 화요일에는 광안리, 수요일에는 송도, 목요일에는 온천천을 걷고 싶었다. 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온천천의 벚꽃 상태도 봐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온천천을 걸으면서 대학생 때의 나를 떠올려보았다. 대학생 때가 진짜 ‘나’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이 해운회사에 입사한 나는 정말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나와 맞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도 아니었고 맡는 업무가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단순한 일에 매료되어서 3년 반을 거기에 부은 게 과연 잘한 일일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회사를 다녔던 3년 반이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정말 의미 없는 알바 생활과 다름없었다. 회사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매번 내가 회사일로 폭식을 할 때마다 회사는 ‘버스’라고 말해주셨다. 나에게 있어 그 회사는 종착지나 목표가 아니었다. 완전한 수단이었다. 글 쓰는 삶을 살기 위한 경제적인 수단이었다. 그래서 버스였다. 버스는 교통수단이고 목적지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3년 반동안 이 버스를 탄 것이다. 이 버스가 자리도 널널하고 이상한 사람들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안 보여서. 하지만 하루는 이 버스의 누구 때문에 화가 나고. 이 버스에 누구 때문에 우울하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의사선생님은 버스에 있는 사람에게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버텨왔다.  


나는 예술학과를 나와서 시나리오 작성을 시작해서 웹소설, 웹툰 스토리작가의 꿈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3년 6개월 동안 전혀 다른 업무를 하고 살았다. 단순한 업무였고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 시간에 글을 썼다. 애초부터 글을 쓰는 업무를 하지 못한 것은 나에 대한 자신이 별로 없어서였다. 글 쓰는 일에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았다. 밥벌이와 연관 짓게 되면 모든 일이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라는게 나의 생각이어서. 밥벌이와는 최대한 멀리. 취미의 하나로 남겨 두는 게 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아닐 때, 그것 취미로 취급 받을 때는 그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적어졌다. 그 많은 시간동안 나는 성장했을까. 올 초해 이력서를 써보았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텅 비어있었다. 업무상 연계성이 없어서였다. 


동생도 내가 이 회사를 다닐 무렵 엇비슷하게 제품 마케팅, 디자인 팀으로 들어갔는데 3년동안 실력을 많이 쌓아서 지금은 능수능란하게 업무를 하고 있었다. 힘들어도 같은 시간 정면으로 부딪혔으면 나는 이력서에 좀 더 다른 것을 채워 넣을 수 있진 않았을까. 열심히 살아도 방향이 맞지 않는다면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가 없다.


버스를 타겠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일인지, 내가 가고자 하는 목표에게 너무 늦게 도달하게 만든 요인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판단 내릴 수도 없다. 그당시에 나는 일정한 수입이 필요했다. 일정한 수입없이 글을 쓰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나 불안하고 우울증이 여전히 날 괴롭혔다. 

그래, 그때 거길 선택했던 건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합리적인 판단이었어. 3년 전으로 돌아가고 내 판단은 아마 바뀌지 않았을거야. 그럼 됐어. 이제 내가 하기로 한 일을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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