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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Mar 23. 2022

우울증 일기 55. 부당해고


2022년 3월 18일 금요일 나는 아주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된다.


회사에서 자네를 권고사직 조치 하기로 하였네.”


나는 황당했다. 내가 뭘? 내가 뭘 잘못했다고 사직을 제안하는거지? 나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그 회사는 12명이 다니는 중소기업인데 그중에 회장과 사장, 부장은 가족 및 친척 관계였다.

사장은 회장의 아들이었으며 부장은 회장의 사촌인 것이다. 맞다. 그 가족회사다. 나는 이 회사를 3년 하고도 6개월을 다녔다.


처음에 이 회사의 단순한 업무에 만족했다. 그전에는 유아용 콘텐츠 제작회사를 다녔는데 너무 힘들었다. 창작의 고통이 심했다.

그런 것에 비해서는 이 일은 뭔가를 새롭게 창조해낼 필요없고 맨날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 되므로 그 간단함에 매료됐다.

하지만 간단함이 만족스러운 것은 딱 일주일이었다. 나는 곧 지루해졌고 반복되는 일상이 싫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버티게 해주는 것은

업무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쓰는 글이었다. 나는 나를 돌아보기 위해 글을 썼다. 자존감과 우울증을 주제로 하여 계속 연구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공장의 부속품처럼 무쓸모한 존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옆에 여직원이 한 명 있었는데 같이 부대끼던 1-2년은 별탈 없이 지냈다. 물론 그 여자는 사사건건 내가 잘못하고 실수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같은 직급인데도 불구하고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상사 행위를 했다. 나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등 말이다. 지시적이고 고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는 시간에 그 여자의 일을 도와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기꺼이 도와주었다. 하지만 올해 1월에서야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나도 바쁜 시간에 업무를 지시했고 나는 그 여자가 하면 안되겠냐고 항변했다. 그러자 자기가 시킨일이라며 왜 안하냐며 따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계기로 말싸움이 시작됐고 사이가 틀어졌다. 최근들어 또 다시 그여자는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내가 대꾸하자 자기는 나랑 일 못하겠다며 부장에게 하소연했다.


평소 나를 썩 마음에 들지 않아하던 그 부장은 내 입장을 들을 것도 없이 나를 버리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심사숙고도 없이 그 여자의 말만 듣고 하루만에

권고사직을 결정내려버렸다. 그 여자의 말에 힘을 실어준 것은 내가 회사에서 남는 시간에 쓰는 글이었다. 그 여자는 내가 회사에서 글을 쓴다고 얘기해버렸고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사장은 여러가지 면을 볼 때 나를 내치는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해고를 당할만한 사유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자고. 카톡하고

심지어 그 부장이 영화를 보고 있는 것도 목격했다. 말도 안되는 내로남불. 그런 내 행동이 회사에 경제적 손실을 끼쳤고, 해고할만한 사유가 되냐고 물었다.

아니랜다. 그런 증거는 없단다. 그냥 오너의 판단에 내가 회사에 안맞는다고 판단했단다. 그거 뿐이었다. 이유가 그거였다. 나는 납득할 수가 없어서 권고사직을 거부했다.

납득할 수 없다고 했고 회사를 계속 다니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옛날사람인 부장은 오너와 경영진이 결정하면 노사관계는 제맘대로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권고사직은 그냥 좋게 사직을 권하는 거란다. 근로자가 거부할 권리는 없단다. 해고라는 게 강하게 당장 나가! 하는게 해고란다.

나는 그 설명을 듣고 이 사람이 얼마나 무지하며 말이 안통하고 몰상식한 사람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법적 해고 사유로 충분치 않다.

경제적 손실을 끼친 것도 없고 업무상 불편을 준것도 아니라고 제 입으로 말했으니 원. 그냥 사람이 싫다는 거였다. 그 여자랑 부장 말고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게 없었다.

그냥 그 부장이 사장의 사촌이라는 것과 부장은 나보다 그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는 점 때문에 내가 퇴사해야한다는 거였다.


부당해고 신고를 할까 합의를 볼까 계속 고민했다. 퇴사를 종용하면서 오갔던 각종 비난과 인신공격들을 생각하면 정말 소송으로 가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고 싶었고 긴 시간동안 이 일에 대해 계속 번복하면서 고통받고 싶지는 않았다. 진창에서 그들과 같이 구르기 싫었다.

금요일에 그 얘기를 듣고 너무 화가 났지만 폭식하지 않았다. 폭식할 가치도 눈물을 흘릴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가치없고 하찮은 상대들이라 눈물이 아깝고 화를 내는 시간이 아깝다고 여겼다.


나는 이럴 시간에 글을 쓰고 미래를 준비해야해.


나는 오늘 퇴직합의서를 썼다. 그들이 무서워서도 부당해고 구제신청 소송 과정이 까다로워서도 아니다.

더 이상 가치 없는 이 쓸모 없는 벌레만도 못한 것들에게 내 시간을 빼앗길 수가 없다. 내가 아무 일도 안하고 있으면 모르겠지만 나는 해야할 일이있다. 글을 쓰고 생각해야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해야한다. 그래서 합의를 했다. 내가 합의한 것은 그들의 생각이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인 것이지. 미래의 나를 위해, 무너진 자존심과 받은 상처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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