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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Mar 14. 2022

우울증 일기 54.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아, 맞다. 그때도 우울증 있다면서.”

“네가 뭐가 우울할 게 있는데?”

“네 말 듣기 싫어. 넌 너무 부정적이야. 기빨려.”      


내가 이 말을 남에게 들었다면, 전혀 관심 없던 남에게 들었다면, 나는 오늘 이 일기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나를 가장 이해해주길 바랐던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나는 힘든 것을 잘 이야기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해봤자 소용이 없어서 포기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난 우울증을 앓게 됐다. 극심한 우울감과 무기력함, 그리고 살고 싶지 않은 충동을 느꼈다. 이런걸 겪고 있어도 난 이야기 하지 않았다. 무관심한 부모에게는 불신이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나 선생님이나 교회 사람들한테 말하면 이상하게 볼까봐. 남들 다 힘들게 사는데 나만 약한 소리하는 걸까봐. 그래서 꽁꽁 숨겨두고 말하지 않았다.      


우울증에 대한 자각이 있고 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고작 1년 정도이다. 우울증을 앓았던 기간은 10년이 넘었는데 자각한지는 최근 1년 사이다. 그전에는 나에게 닥쳐온 이 증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나는 진료를 받고 점차 나아졌고 잘못된 생각의 틀을 깨기 시작했다. 조금 나아져서야 깨달았다. 나는 아팠구나. 그것도 많이. 그제야 내가 불쌍해졌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의 비밀 상자를 조심스럽게 공개했다. 첫 번째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했고, 두 번째는 위로가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조심스럽게 내 아픈 마음을 펼쳐 보였더니 돌아오는 말은,     



“아, 맞다. 그때도 우울증 있다면서.”

-아, 그냥 가벼운 증상 취급,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음.      

“네가 뭐가 우울할 게 있는데?”

-아,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조차 하지 않는 무심함     

“네 말 듣기 싫어. 넌 너무 부정적이야.”

-아, 도와달라는 요청을 거절하는 매정함      

이런 것들이었다.  


나는 꽁꽁 감싸두었던 부위를 치료하기 위해 붕대를 푸르고 약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도리어 돌아오는 건 상처 부위를 쓰라리게 만드는 소금 같은 것이었다. 

나는 가족이 나의 우울증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고, 나를 불쌍히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내가 예민해서라고, 그 정도면 누구나 겪는 일인데 왜 힘들어 하냐고. 내가 너였더라면 그 정도 문제는 쉽게 해결하고 잘 살았을거라고. 그런 식으로 말했다.      


처음에는 가족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 오히려 날 칭찬했다. 이렇게 우울함 속에서도 일상생활을 하고 하고자 하는 것들을 하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인정해주었다. 

내가 겪는 아픔도 엄살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아픔이고 그 고통의 크기도 전혀 상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틀린 것은 나를 안답시고 넘겨짚으며 말했던 그 사람들이었다.     


물론 내가 예민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엄살 피우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지적한다고 해서 내 병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예민한 피부여서 상처가 난 상황을 예를 들어보자. 살갗이 벗겨진 피부에게 “이게 네 피부가 예민한 탓이야”라고 원인을 말해봤자 나아지는 건 없다. 상처가 난 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필요한 건 약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다 내 문제를 자기 문제처럼 생각하고 걱정해주고 해결해주려고 하는 건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결국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내가 아닌 타인이 겪는 고통은 남의 고통일 뿐이었다.      

내가 이 우울증 일기를 쓰게 된 이유의 절반은, 우울증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다. 그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에 대해서 모른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 얼마나 살갗을 찢고 뭉개고 짓이기고 괴롭히는지 그걸 모른다. 그러니까 혹여나 타인의 무지한 말을 듣는 사람이 있거든, 상처 받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그냥 흘려들어라. 들을 필요도 없다.      


나는 네가 힘들게 뭐 있냐는 말을 하는 엄마를 향해 외쳤다. 

이 아픔은 내 아픔이니까, 그게 뭐가 아프다니 어쨌다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이 고통은 내가 느끼는 고통이니까 이게 가볍다니 무겁다니 평가하지 말라고. 

내가 느끼는 고통이라고.      

악에 바쳐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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