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기분과 우울증의 차이는 뭘까.
누구나 우울한 기분은 느낄 수 있다. 안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면 우울함을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건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나같은 경우 갑작스러운 퇴사를 통보받고 동료직원간의 불화와 회사의 몰상식한 태도를 겪었다. 그 사건들 속에서 나는 화가 나고 분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슬펐다. 이럴 때 우울증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뭘까.
그것은 ‘스스로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냐, 없냐’의 차이다. 과거의 나 같았으면 우울한 상황을 머릿속에서 연속재생 했을 것이다. 내가 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된다. 그 상황을 피하려고 하지 못하고 온갖 우울했던 순간들을 다 끄집어 내고 곱씹게 된다. 마치 자석이 서로 다른 극을 끌어당기는 힘처럼 자동적이고 절대적이다. 우울증에 빠져 있는 상태란 이런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재 우울을 모으지 않는다. 나는 일부러 웃긴 것을 보려고 하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한다. 스스로 머릿속에서 화가나고 분하고 억울했던 그 사건이 재생될려하면 다급하게 중지버튼을 누르고 있다. 자책을 할 것 같으면 계속해서 ‘내 잘못이 아니야’ 라거나 ‘괜찮아’라고 계속해서 나에게 말해준다. 스스로를 돌보는 시스템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드디어, 드디어 말이다. 상처가 나면 스스로 약을 바르고 낫기 위한 행동을 한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상처에 뭘 붙일 힘이 하나도 없다. 아무 힘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상처를 그대로 놓고 곪고 썩어들어 가게 된다.
지금의 난 꽤 괜찮은 상태인 모양이다. 스스로 우울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니깐 말이다. 이것은 감정을 덮어놓고 묻어두고 살피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와는 다르다. 건강한 태도는 내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사려깊게 돌보는 것이다. 내가 지금 현재 슬픔을 느끼고 있구나. 불안을 느끼고 있구나. 우울하구나. 이렇게 말이다. 3년 반이나 일한 회사에서 갑작스레 권고사직을 통보받고, 통보받은지 삼일만에 나가라고 협박아닌 협박을 받은 상황을 받아들이기에는 하루 이틀가지고는 부족했다. 물론 사람마다 같은 상황이라도 서로 회복하는 속도는 다르겠지만 나는 일주일이 걸리고 있다. 아직도 회사일이 꿈에 나타난다. 분하긴 분하다. 분한 것은 잘못된 것도 아니고 병도 아니고 건강하지 않은 상태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우울증인지 아닌지 판단하는데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만 판단 내릴 수 없다. 적어도 2주이상은 지속적인 우울감을 느껴야 우울증으로 의심해볼 수 있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도 우울함, 불안함, 무가치함, 무기력함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면 정상적인 감정 반응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여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럴때 내가 이상해졌다라던지.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당혹스러움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괜찮은데 나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으니까 나만 이방인이 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괜찮다. 안심해라. 나는 그런 분들에게 먼저 당황할것도 자책할 것도 없다고 말해드린다.
어느 하루는 나는 새롭게 알게 된 사람에게 나를 설명해야할 일이 있었다. 난 나의 전반적인 기분이자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감정인 ‘우울’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썼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고.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 뭔지 아냐’고 질문했다. 그분은 그런게 대체 뭐냐는 반응을 보였다. 의사분들이나 상담사분들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런 반응이었다. 공감받을 수가 없어서 나는 이 기분과 상태를 제대로 표현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 한편 단순한 우울이 아닌 병적인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임에도,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지각하지 못하고 이도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분들은 일단 지금 상황도 힘든데 자신의 상황을 정의내릴 수 없어서 혼란스러움도 더해진다. 나도 내 병을 인식하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왜 다른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는 일을 나는 계속해서 곱씹고 있는걸까. 내가 정말 나약한 것일까. 그렇게 자책하는 일을 많이 했다. 아니다. 그것은 우울증 때문이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책하는 생각방식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
나는 꽤 좋아졌다. 스스로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곧 스스로 감정을 돌보고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머지 않아, 곧, 곧 올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에서, 자신의 우울함이 단순한 우울한 기분의 문제인것인지 아니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오는 우울함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만일 후자라면 나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많이 아프구나라고 먼저 걱정해주고 병원을 가서 전문의와 상담을 받아보기를 꼭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