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해결해줄 타인이란 없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 나의 감정 중 90%는 ‘외로움’이 차지한다. 우울감은 올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외로움은 항상 있는 것 같다. 외로움이 몰려올 때마다 나는 우울해지고 삶을 비관하기 시작한다. 나에게 있어 살아가는 것은 이 외로움의 고통에 시달리는 일이다. 항상 이 외로움에 시달릴 것만 같다.
처음에는 친구가 없어서 인 줄 알았다.
물론 나는 학창시절에 친구가 없었다. 1-2명 있었던 게 아니라 ‘아예’ 없었다. 내 친구들은 드라마나 만화 속 세상의 캐릭터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허상 속 인물이 맺는 인간관계를 대리체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얕고 깊게 알기 시작했다. 물론 중,고등학교때 제대로 된 사회성을 키우지 못한 탓에 깊은 친구보다는 얕은 지인이 많은 정도였다. 어쨌든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로움에 시달렸다. 특히나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경험은 ‘사람들 속에 있음에도 외로움을 느끼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카페에서 5명의 동아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치면, 나는 그 속에서 이방인이 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 순간의 대화가 재미가 없고 낯설다. 왠지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보지 않는 것 같으며 눈길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 그런 현상이 내가 못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외모가 주는 혐오감에 사람들이 나를 안 좋아하고 나는 혼자가 되는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고 오류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는 근거가 없다. 근거 없는 느낌에, 슬프고 우울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니깐 사람들 속에 있어도 그렇게 이방인처럼 느껴지거나 동떨어진다거나, 관심 받지 못할까봐 공포스럽고 외롭다는 느낌은 덜 하게 됐다.
하지만 실제로 친구를 만나지 않는 시간은 어떨까. 몇십년을 혼자 지내왔으면서 생각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못견뎠다. 그동안 친구 없이 대체 어떻게 살았던건지 싶을 정도로. 그러니까 매순간마다 폭식을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려고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담사와 상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친구가 없어요.”
“정말로 친구가 없어요? 이솔님은 어떤 친구를 원하세요?”
“음, 시간 날 때 나와서 같이 놀 수 있는 친구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상담사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친구는 저도 없어요.”
아,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 상담사 분도 대인관계가 좋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약속을 잡아서 만나는 친구들이지, 바로 나와라해서 나오는 친구는 저도 없어요. 사실 그렇게 되기란게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거죠.”
상담사의 말을 이해했다. 내가 심심할 때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를 원하는건 참으로 소박한 일인줄 알았는데,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내가 심심한 순간 친구는 퇴근을 해야하고, 야근이 없어야한다. 또한 타인과의 약속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놀러 나올 수 있는 적당한 거리에 있어야한다. 내가 부산에 있는데 친구가 서울에 있으면 안되지 않은가. 친구가 술을 마실 수 있어야 하고, 놀러 나오고 싶다는 여유로운 마음도 있어야한다. 이 시대에 그 모든 것을 성립하기란 꽤나 까다로운 일인 것이다. 내가 놀고 싶을 때 그 친구는 놀기보단 집에서 쉬고 싶을 수도 있다. 또 그 친구가 놀고 싶을 때는 내가 집에서 쉬고 싶을 수도 있다. 내가 심심할 때 가볍게 놀 수 있는 친구 하나 바라는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엄청난 것을 원하는 일인 것이다.
나는 그 상담사와의 대화를 통해서 외로움이란 감정을 해결해 줄 존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에서 생각하는 바, 외로움을 해결하는 건 스스로 해야하는 일인 것 같다. 자신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유지할 수 있어야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관심과 초점이 바로 나 자신에게 맞춰있어야 외롭지가 않다. 하지만 타인이 와서 나를 놀아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외로움을 느끼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물론 친구와 타인과 함께해서 즐거운 시간도 있다. 혼자 밥먹는 시간보다 타인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먹는 밥도 맛있다.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타인과 같이 있는 게 나혼자 있는것보다 즐겁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