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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Apr 18. 2022

우울증 일기 61. 유난이 아닙니다.


“유난 떨지마.”


힘들어하는 나에게 나는 매정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 일도 없었다.

아침에 되어 눈을 떴다. 그리고 하루를 시작했다. 이불에서 일어나기가 너무 싫다. 회사에 가기 싫다. 밍기적 거리다가 겨우겨우 일어났다. 답답하다.  출근을 했지만 아무 감흥이 없다. 지긋지긋한 책상,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 내 일 아닌 일정으로 채워지는 달력.  남에게 휩쓸려 가는 삶. 내 시간을 바친 대가로 받는 월급. 내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나는 대체 여기에 얼마만큼 일할 수 있는걸까. 누군가가 나에게 지적을 하면 지적을 했던 일이 하루종일 머릿속에 맴돈다. 내가 그렇게 부족한걸까. 나는 이 회사를 나가면 제대로 밥벌이나 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무능하다고 느껴진다.  기나긴 시간을 끝내고 퇴근하고, 딱히 만날 시간이 없다. 저녁을 어떻게 떄워야할지 고민이다. 혼자 밥을 먹기도 싫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찾아 헤매기도 버겁다. 지친다.  밥을 먹고 나면 엄청난 외로움이 찾아온다.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 왜 이런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애꿎은 휴대폰을 든다. 지인들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열심히 쳐다본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것 같다. 나만 정체되어 있고 나만 물먹은 솜마냥 무기력한것 같아.


너무 힘든데, 무엇이 힘든지조차 명확하지가 않다. 무슨 사건이 일어난게 아니니깐. 그런데도 내면에서는 힘들고 외롭다는 소리만 해댈 뿐이다. 무엇이 힘드냐고 물어보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답답하다 .


“유난 떨지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치열하게 생각해보지 않는 나를 탓하며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힘들어 하고 있는 거 다 유난이라고. 왜 각박한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렇게 매일매일 어린아이같은 소리만 해대는거냐고 윽박지른다.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데, 뭐가 그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들 다 당연하게 살아가는거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건데.


별일이 없는데도 슬플 수 있다. 다른 사람 다 이겨내는 일인것 같은데 나는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울증이다. 눈물이 마구마구 쏟아지지 않더라도, 실없는 농담에 가끔 웃는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울증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우울증은 결코 유난이 아니다.  아픈 것이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알기 전에 나는 그렇게 나한테 윽박질러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했다. 감기에 걸린 사람한테도 혼내지 않는데. 나는 나에게 그렇게 매정하게 굴었다. 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더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것이 병이고 내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점차 나아졌다.


우울증은 유난이 아니다. 마음이 아픈 것이다. 내가 힘들고 병든 것이다. 나를 감싸 안아줘야하는 신호다.

혹시나 아픈 자신에게 왜 아프냐고 혼내고 있다면, 손가락질 하고 있다면. 이제 그만 멈추고 자신을 안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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