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어느정도 나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동안 삶이 저주스러웠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낫다. 나는 꽤나 삶이 소중하다는 인식을 하게 됐으니까. 뭐 특별히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3월부터 삶은 소중한 것이고 신으로부터 내려온 축복이라고 되뇌었다.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외우듯이 했다. 그렇게 안느껴지더라도 했다. 비록 지금 느껴지는 감정이 우울함이더라고. 삶의 대부분이 불만족스럽고 외롭다고 느껴지더라도.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자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 십여년간,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순간들마다 나는 삶을 저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병이 심각했었다는게 느껴졌다. 매순간마다 고통스러웠고 숨쉬고 있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만하고 싶어서 계속 울었다. 살아 있다는 게 너무 무섭고 불안하고 외로웠다. 나는 잘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늘 겁에 질렸다.
하지만 삶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보기로 하자,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십여년간 우울의 늪에서 빠져 있으며 매일같이 ‘죽고 싶다’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생긴 변화였다. 나는 다리가 부러져서 깁스를 오래하다가, 깁스를 풀게 된 사람처럼 뭔가 삐그덕 거렸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기분이었고 냉동상태에 있다가 해동된 기분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걷고 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걸었고 쉼없이 걷고 있는데 나혼자 십여년간 누워 지낸 기분이다. 그러다가 이제 좀 나아져서 깁스를 풀고 어기적 어기적 걸어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색하고, 동작 하나하나가 부자연스럽고 느렸다. 정말 먹는 것, 자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했다. 먹는 것은 오랜 폭식과 거식의 반복으로, 일정한 식사량이 없었고 잠은 도중에 깨거나 불면 등으로 수면의 질이 떨어져 있었다. 이것부터 회복해야했다.
의사선생님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일상이 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상과 비일상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상이 없었다. 돌아갈 곳이 없는 기분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뒤로 되돌아 갈 수는 없었다. 이제 해야할 일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사는 법’이 궁금해졌다. 옛날에는 직접 사람들에게 그들의 하루를 물어봐야겠지만 요즘은 영상이 잘 되어 있는 시대라 편하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의 일상 브이로그를 보면 됐다. 시험 문제에 답을 적기 위해 옆에 있는 친구꺼를 컨닝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나는 연예인이나 대단한 사람들의 삶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찾아다녔다. 30대 초반의 여자, 혹은 백수, 직장인, 글을 쓴다고 하는 사람 등등 나와 비슷한 점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을 훔쳐보았다. 공통적으로는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하루를 보내고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고, 운동을 했다. 그리고서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들었다. 아무도 그 사이에 폭식을 하고 구토를 하거나, 삶을 저주하면서 울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이렇게 살면 되는구나 싶었다. 이렇게 쉬운 일인데 그동안 왜 그렇게 무서워했던거지?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게 아니었다. 생활을 위해 돈을 벌고, 그런 다음 친구들과 가족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거나 취미활동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매일 같이 파티를 하며 놀러 다니고 돈을 펑펑 쓰는 그런 삶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사람, 평범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만의 방이 하나 있고, 밥과 반찬 한 두어개로 식사를 하고 돈을 벌고 얘기 나눌 친구가 있는 삶. 그냥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이 올린 일상 영상을 보고 대리만족하거나 타인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한다. 내가 본 브이로그에서 제일 만족스러운 건, 자기만의 스타일로 꾸민 자취방에서 간소하게 하지만 적정량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돈을 벌고, 여가를 보내다가 잠이 드는, 그런 브이로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