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훈련기 10. 인정

인정받기 위해 살았던 삶

by JINSOL

인정


어렸을 때는 난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했다. 난 내가 화가가 될 줄 알았다.

유치원 때 원아들의 얼굴사진과 함께 장래희망을 적어 놓은 표가 있었다. 나의 사진 밑에는 ‘화가’라고 적혀 있었다. 주변에서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았고, 자랑스럽게 내 특기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점차 나보다 동생이 그림을 더 잘 그리는 다는 사실과.

내가 대회에서 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말았다.

그림 그리는 일은 좋았다. 그렇지만 잘 그리지 못했다. 그래도 그리는 게 좋았으면 계속 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동생이 더 주목받자 나는 연필을 놓았다.

내가 그림을 그렸던 이유는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인정받지 못하는 영역은 더 이상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다른 것을 찾아 나섰다.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국어나 수학 문제집을 푸는 편이 나았다.

숙제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일은 힘들지 않았다. 읽은 내용을 기억하기만 하면 됐다.

성적도 곧잘 나왔고 반에서 순위권 안이었다. 나는 그게 내가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몇몇 아이들은 나를 ‘공부 잘 하는 애’로 인정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공부에 집중했다.

공부가 좋은 게 아니었다.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흥미 있는 게 아니었다. 단지 교과서 내용을 암기해서 시험을 잘 맞으면 좋은 성적이고 나온다. 그러면 나는 내가 가치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중학교 때도 이어졌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일 년에 네 번이나 내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생겼고, 동시에 부담감도 컸다.

나는 자진해서 학원에 들어갔다. 성적이 질까봐 겁이나서였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포기하고 공부에 매진했다.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유흥은 주말에 보는 드라마가 전부였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내가 가진 것은 성적 등수였고, 친하다 할 만 한 친구가 없었다.

성적 등수가 높다고 친구들이 나에게 연락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나를 찾을 때는 급하게 숙제한 것을 베끼러 올 때 뿐이었다.

난 아이들이 나눌 수 있는 추억들도 없었다. 그래서 소풍이나 수학여행이 제일 싫었다.


반에서 공부할 때는 몰랐는데, 그렇게 야외 활동을 하면 난 혼자라는 게 뼈저리게 느껴졌으니깐.


성적이 잘 나와서 행복했냐고? 안타깝게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전교1등을 하자 학원에서는 이를 홍보하기 위해 현수막에 이름 적어서 걸어 놨다.

엄마는 친척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고 나도 어깨가 으쓱했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성적은 인정받아도 나라는 존재가 인정받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적이 어떻든 간에, 학교 수행평가를 했든 안했든 간에 서로 수다를 떨고 놀러 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서로 웃고 떠들고 노는데 등수가 필요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원했던 것이 ‘주변의 호의적인 반응’ 인건 맞았지만. 그게 공부나 실력으로의 ‘인정’은 아니었다.

능력에 대해 인정 받는 것, 그것은 따뜻한 친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편안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고 난 허무함에 빠졌다. 난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고, 나의 가치를 올리고 싶어서 공부를 했다.

그래서 졸업장과 함께 교과우수상을 받았지만 그 인정은 아무 쓸데 없어보였다.

그 교과우수상보다,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같이 모여드는 아이들 무리가 부러웠다.

팔짱을 끼고 같이 사진 찍는 그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제야 나는 내가 중학교 내내 잘못된 가치를 좇아 달려왔다는 걸 깨달았다.


중학교 졸업식 후, 나는 내가 받은 교과우수상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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