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첫단계, 나 받아들이기(수인)
첫단계, 나 받아들이기(수인)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폭식이라는 방법을 선택하는거죠.”
“….”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번뜩 든 생각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였다.
의사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이 드세요?”
“네?”
“폭식하는 자신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한심해요.”
한심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아무리 슬펐어도, 아무리 외로워도 그렇지. 왜 소모적이고 아프고, 살이 찌는 선택을 하는 걸까. 왜 나는 나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자책하고 있는 중이었다.
의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이렇게는 생각해볼 순 없을까요? 얼마나 힘들었으면….이라고요.”
“네?”
나는 의사가 내 말에 동의할 줄 알았다. 나와 같이 왜 절제를 하지 못하고, 옳지 못한 방법으로 우울과 불안을 해소 하려고 하는가 타박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뜻밖의 말이었다.
“그 우울과 불안의 크기가 얼마나 컸으면, 단시간 안에 그렇게 음식을 꾸역꾸역 먹었을지요. 맛있는걸 떠나서 그 정도면 괴로움이 컸을텐데. 그 괴로움보다 우울과 불안의 크기가 컸던 거죠.”
나는 놀랬다. 의사는 내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나 자산에게 질타를 던지고 있었다. 왜 그랬냐고,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냐고. 넌 정신력이 약하다고. 의지가 약하다고 그렇게 비난했다.
하지만 의사는 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고 내 행동을 이해해주었다. 오늘 처음 본, 그것도 남일 뿐인 의사가 말이다.
나는 북받쳤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이렇게까지….”
“물론, 그 행동이 옳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정도까지 했을까 하고 이해해주는거죠.”
의사가 차분하게 말했다.
“이런걸 수인이라고 해요. 나를 받아들이는 거죠. 내가 얼마큼 아프구나. 내가 이렇구나. 내가 이 상태구나.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게 치료의 시작이에요.”
의사가 패드에 수인이라는 단어를 적어 내려가며 말했다.
의사가 그렇게 말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가 증오스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먹는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하다니. 성숙하지 못한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의사는 계속해서 나를 이해해보자고, 안타깝게 여겨달라고 부탁했다.
나를 받아들이는 것. 있는 그대로 생각하는 것. 그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됐고 나는 늘 아팠는지도 몰랐다.
제일 친한 친구인 바로 ‘나 자신’이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로웠던 것이다. 마음의 우울과 불안을 나눌 수 없고 거부만 당해온 것은 바로 내가 나 자신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아픈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 수용하는 것.
그게 우울증 치료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