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일기 11. 상담사를 만나다

by JINSOL


앞서 쓴 우울증 일기는 우울증이 다 나아져간다는 느낌을 받아서 썼던 것이다.


난 내가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고 내 기분과 감정 그리고 생각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언어로 나타낸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각이 복잡하게 되면 말이 잘 안나오고 글도 잘 안써진다는 것이다. 잘 정제된 언어의 산물들로 남았다면 더 이상 감정의 소용돌이가 아니라 단순한 '기억'에 가까워진다. 한동안 내가 작성했던 글들은 이미 객관화된 나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고, 나는 더 이상 그 모습들에 크게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 예를 들어 폭식을 하고 있는 나, 폭식에 제거 행위까지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예전에는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드러내기 싫고, 감추고 싶은 감정만 크게 올라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를 내보이고 그 모습이 어째서 왔는지 차분하게 스스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의 의미다.


뭐 장황하게 길게 말했는데, 요약해서 말하고 싶은 게 뭐냐면 난 우울증 일기를 쓰는 행위가 내가 완치에 가까워져서 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우울감이 떨어져서, 난 내가 괜찮아지는 줄로만 알았다. 우울증 일기를 쓰면서 잘 정제된 언어로 나타내니까 난 나아진줄 알았다.


게다가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됐고, 맨날 놀러 다니고 음식 먹고 카페 다니고 이래서 삶의 즐거움을 맛본 것 같았다. 연애도 하고 (잠시 잠깐이었고 연애는 끔찍하게 끝났다) 아이패드도 샀으니까 (응?) 그래서 나는 내가 이제 완전히 나은 줄 알았다.


분명 옛날보다는 나아진 게 맞는데, 완치에 가까운 건 아닌 것 같다.


이는 내가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요즘 내가 우울증을 위해서 하고 있는 새로운 것이 있다면 25회로 이루어진 심리 상담을 받는 거였다. 병원에는 콩나무 시루 처럼 사람들이 뺵빽이 앉아 있어서 상담 시간도 짧았다. 상담 시간이 긴 병원을 가고 싶었으나 요즘에 정말 아픈 사람이 많은건지 가는 곳마다 문전성시였다. 상담을 오래 해준 병원이 있긴 했지만 너무 멀어서 포기했다.


그런데 심리상담을 받으니 더 많은 이야기들 깊은 이야기들을 할 수가 있었다. 거리도 있고 코로나시국이라 ZOOM 화상회의로 상담을 한다. 한 3회째 되서 나는 나의 내면에 있는 빙산을 발견했다. 내가 꽁꽁 묶어두었던 상처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상담사는 그렇게 말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지하실이 있다고. 그 지하실에 들어가기가 무서워서 얼른 나와버리고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고. 사람의 무의식에 그렇게 아픈 기억들이 저장되어있다. 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간다면, 더 이상 무섭지 않고 지하실에 내려가볼 수 있다고. 상담사란 그런 존재라고 말했다.


상담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했다. 답은 내 안에 있다고 했다. 상담사는 그 답으로 이끌어가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그래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건 나 자신이라고 했다.


상담사를 처음 만나고 난 생각은, 내가 이 병을 얕봤다는 생각이다. 나는 아직도 내 안의 상처가 수두룩하게 남아 있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창은 그대로 굳건히 서 있는데 현재에 감정이 나아졌다고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담사가 말하길, 우리 내면에 있는 감정을 들여다봐주지 않으면 그 감정은 없어지지 않고, 내면에 쌓인다고 했다. 그 쌓인 감정이 다른형태로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의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맞는 것 같았다. 나의 내면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쓰레기같은 감정덩어리들이 너무나 많았다.


나는 그렇게 상담사의 손을 잡고 지하실, 쓰레기더미창고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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