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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Nov 11. 2021

우울증 일기 26. 보이지 않는 문제

보이지 않는 문제


내가 중학교때까지 만났던 문제들은 간단했다. 대부분 국어, 영어, 수학 등의 문제들이었다. 개념과 공식이 있고 법칙대로 시키는대로 하기만 하면 해결되는 문제들이었다. 문제가 영 해결 되지 않을 때는 답지를 볼 수 있었다. 내가 맞닥뜨리는 문제들이란 그런 것들이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갔을 떄부터 문제집들은 더 어려워졌다. 국어는 지문이 길어졌고 영어는 모르는 단어가 늘어났고 수학은 복잡한 공식이 나타났다. 나는 헤메기 시작했다. 문제의 답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걸렸다. 답지를 보아도 왜 이 답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답을 외우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문제집에는 없는 또 다른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외로움이라는 문제가 올라왔다. 중학교때 친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매일 같이 공부하고 학원가고 일정량의 공부를 하고 나면 주말에는 혼자 놀았다. 드라마를 보거나 만화를 보면서 말이다. 혼자 노는게 재미있었다. 외롭지 않았다. 친구 문제는 그렇게 나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나서부터 외로움이 커졌다.

같이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노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친구를 어떻게 사겨야하는지 잘 몰랐다. 어렸을 적에는 잘 지냈는데, 사춘기이후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에게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다.


그 문제를 풀지 못하자, 대가는 컸다. 외로움은 크게 밀려왔고 세상에는 나혼자밖에 없는 느낌이 들었다. 슬퍼지기 시작했다.


이와중에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데, 오직 공부하고 중간 기말고사 시험쳐서 나오는 성적이 내 모든 것인데. 그 성적마저도 떨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혼자서 이 성적을 올려야할지 막막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한숨만 나왔다. 속이 답답해지고 더부룩했다. 가슴이 꽉 죄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호흡기에 문제라도 있는가 싶었다.


나는 상황을 절망했고 비관하기 시작했다.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할지도 모르고 막막함만 느꼈다.


막막함, 불안감, 외로움, 슬픔, 두려움, 자괴감


나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것이 '문제 상황'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간단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감정은 괴물처럼 커져만 갔고 나는 싸워서 이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울증이 찾아왔고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고통을 느끼는 나에게서 떠오른 아이디어는 이것을 해결할 방법은 '삶을 끝낸다'였다.  ESC버튼을 누르는 것이, 강제종료 버튼을 누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생각을 다양하게 할 수 없다. 정말 해결책은, 탈출구는 죽는 것이 유일해보인다. 그래서 매일같이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문제들을 꺼내놓는 작업이었다. 성급하게 '죽음'을 답안지에 쓸 게 아니라 문제를 잘 보고 답을 잘 생각해보자라는 것이다. 그전에는 문제가 뭔지 조차 모른 상태에서 고통 받고 있었더라면, 이제는 무엇이 나에게 고통을 주는지 펼쳐 보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문제의 답은 다른거였다. 굳이 극단적인 답안을 쓰지 않아도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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