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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Nov 23. 2021

우울증 일기 27. 바라는 것


자기 대화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질문이 있다.


"듣고 싶은 말이 뭔가요?"


이거였다. 


예를 들어 A랑 싸워서 상처 받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있다. 싸웠을 때의 감정은 말하기 쉬웠다. 억울했고, 분했고, 섭섭했고, 미웠고, 슬펐다. 


그런 감정을 이야기 하고 나면, 상담사는 으레 이렇게 질문했다.


"A에게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나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듣고 싶은 말 따윈 없었다. 원하는 게 없다고 느껴졌다. 상대방이 저렇게 나에게 적대적으로 나왔는데 내가 뭘? 무시가 최선.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원하는게 있어도 상대방이 들어줄거 같지 않았다. 그럴 바엔 내가 포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난 내 주위 사람들에게 늘 같은 대답이었다. 


원하는 게 없다라고...


그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상담사가 도와주었다.


"A가 날카롭게 했던 말은 감정적으로 나온 것이고, 여전히 A는 당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마음은 사실이었다고,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나요?"


상담사가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자, 그제야 내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절, 무시 이런게 아니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A랑 잘 지내고 우정을 나눴으면 하는 거였다. 


듣고 싶은 것이 뭐냐는 질문은, 결국 내 욕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냐. 어떻게 하고 싶냐. 


나는 이 질문에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우울증을 앓는 동안, 나는 늘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놀고 싶은 것도 없고 친하게 지내고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무기력한 것이다. 


무기력은 욕구와 관계가 있다.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경험을 계속해서 하다보면, '나는 역시 안 돼.' 이런 생각이 학습된다. 무엇을 해도 될 것 같지가 않은데 어떻게 힘이 나겠는가. 무기력하고 좌절하다보니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데, 그 욕구를 억누른다. 그러다보면, 삶이 행복해지지가 않는다. 


한 편 욕구의 좌절은 마음 속에 '상처' 라는 형태로 남게 되고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난 내가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슬프고 외로운 이유가 나 스스로 내 욕구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보살피고 아낀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를 물어봐주고 제대로 채워주는 일을 하는 것도 포함된다. 부모에게 원하는 바를 말하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만족감을 느끼고 부모에게 애착을 느끼는 것처럼 나 스스로가 나의 부모가 되어주어야 한다. 

또한 아기였을 때 욕구를 표현하는 수단은 감정이었다. 배가 고프고, 잠이 오고, 기저귀가 불편할 때면 우는 것으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한다. 성숙해질 수록 언어를 통해서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욕구라는 점도 덧붙여서.) 

그래서 자기 대화를 계속해서 하고 있고 글로, 언어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원하는 것은 확실하다. 이 우울증이란 병에서 벗어나는 것. 건강한 삶을 사는 것.

나의 삶을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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