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솔 Nov 29. 2021

우울증 일기 28. 고슴도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고슴도치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함께 모이자, 서로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게 된다는 것 말이다. 


나는 외로웠고 가시도 많았다. 그래서 모임에 나갔지만 결국 내 가시가 상대방을 찌르기도 하고 상대방의 가시에 내가 찔리기도 했다. 그렇게 아픈 순간들이 2021년 9개월간 지속됐다. 이제는 함께 있어 즐거운 것보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더 많아지자 나는 이제 그만 이 모임에 안녕을 고했다.


아침마다 단톡창에 올라오던 인사도, 늘상하는 말인것 같았던 '맛점하세요'라는 말도 없는 하루를 보낸다. 아무도 곁에 없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어서 어색하고 외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가시에 찔린 상처가 너무 많아서, 좀 아물기까지 기다려야할 것 같다. 그러다가 아물고 그 살갗이 단단해지면 더이상 찔려도 안아프겠지. 그리고 나에게 있는 가시를 제거하면 더 이상 싸우지 않겠지. 


극심한 외로움울 견디다 못해, 모임을 만들고 운영했다. 하지만 여기서 깨달은 것은 절대 내가 건강하지 않다면, 이 외로움은 사람이 있다고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해결해줄수 있는 것은 그 찰나, 순간 뿐이었다. 아니, 내 마음이 건강하지 않는다면 그 함께하는 찰나의 순간 조차도 집중하지 못할 수 있다. 행복하지 못할 수 있다. 홀로 이방인이 된 그 기분을 또 느낄 수 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기분을 오락가락하게 만드는 이 병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 병이 그렇게 만들 것 같았고.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내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거라고 생각해버렸다. 


직접 모임을 통해 부딪혀본 바 깨달은 것은 내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충분히 사람들과 잘 어울렸으며 사람들은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조차 알지 몰랐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밝고 쾌활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말수가 없는 남자 동생에게 계속 말을 걸자, 그 애는 그렇게 말했다.


"모두가 누나같이 활발한 건 아니에요."


나를 활발하다, 쾌활하다라고 묘사하는데서 어색함을 느꼈다. 남들 눈에 나는 그렇게 비치는구나. 매일을 허무하다고 여기며 죽움을 꿈꾸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매일같이 우울함이란 올가미에 목을 졸려 켁켁거리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거야. 


내 모습이 다 드러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이해 받으리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내 어두운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나는 같이 농담따먹기나 하고 가볍게 만날 사람이면 족했다. 그 모임은 그런 목적에 잘 부합했다. 우리는 쓸데 없는 이야기들을,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떠들어댔고 같이 시간을 보냈다. 


모임을 하고 있다고 하니까 의사선생님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외로움을 달랠 길을 마련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하지만 난 또 이렇게 말했다.


"그치만 뭐가 남을지 모르겠어요."


의사선생님은 말했다.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에 대해서 미리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없어요. 그냥 흐르는대로 내버려둬요."


이 모든 것을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병만 아니었더라면, 나는 좀 더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즐거워했을지 모른다.  아니 그 순간만큼은 즐거웠어. 그 즐거움이 오래가지 못했을 뿐이지.  좀 더 오래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까? 좀 더 따뜻했을까? 


모르는 일이다. 


나도 너도 가시가 있으니깐.









작가의 이전글 우울증 일기 27. 바라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