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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Dec 10. 2021

우울증 일기 29. 긍정의 시작


2021년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지 생각해보고 있었다. 내가 2021년에 하고 싶었던 것은 우울증을 고치는 것이었다. 우울증에 대한 자각은 2020년 10월에 있었다. 살제 병원에 간 것은 2018년이니, 우울증에 대한 자각은 꽤나 더뎠다. 

병원에 간 건 폭식증 떄문이었다. 폭식증을 고치고자 했다. 고치고 싶은 이유는 내 건강 때문이 아니었다. 음식을 한꺼번에 많이 먹는 바람에 체중이 늘어 나는 것을 막고 싶어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이어트가 목적이었다. 


"아니, 그렇게 많이 먹고, 억지로 토하기까지 하는데, 지금 다이어트가 문제야?"


라고 해야 정상인걸까...?


아쉽게도 난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억지로 토하느라 목구멍에 피가 나더라도, 우선 살이 안찌는 게 더 중요했다. 


왜...? 우울증으로 그토록 만사 무의미하게 느꼈으면서, 살 빼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 무슨 가치를 느꼈던걸까.


살이 빠지면 인간관계가 좋을 줄 알았고, 관계속에서 사랑 받는 사람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친구간의 관계도 원만하고, 이성으로서도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사랑을 받으면 행복하겠지. 


사랑받지 못하는 삶은 쓸모 없어. 


원하는게 너무 강렬했던 탓일까. 예쁘면 행복하겠지, 예쁘면 사랑받으니깐. 행복하겠지. 이 생각이 너무나도 강렬한 탓에. 사랑 받지 못하면 불행하다라는 생각도 강렬해졌다. 못생겼으니깐 사랑받지 못하겠지. 불행하겠지. 


난 현재 사랑받지 못하고 있고, 그러므로 현재의 내 삶은 쓸모 없어.


이게 내가 삶에 대한 무가치감을 느끼게 된 경위다. 


결국 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친밀감에 큰 가치를 두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나는 중,고등학교 사춘기시절에 제대로 된 교우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나는 겁이 났었고 인간관계는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굉장히 떨어져 있었기 떄문에 친구를 쉽게 만들지 못했다.  실제적으로 마땅히 친구가 없었고 소통할 사람이 없었던것이다.


외로움은 사실이었다. 


그 외로운 상황을 비관하고, 더 이상 아무런 친구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 홀로 갖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장례식장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극단적인 상상이 시작됐다. 


외로움을 인식하고 내가 외로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난 감정을 다루는데 미숙했다. 그래서 그 감정에 압도되기만 할 뿐이었다.  밀려오는 감정의 이름이 '외로움'이라는 사실조차인지 하지 못했다. 


압도됐을 때는 정말 발등에 불이라도 난 것 같았고 고통만 가득해서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진정을 할 줄 몰랐다. 그러니 대책을 마련할 방법도 몰랐을 수 밖에. 불 난 집에 불을 끄기 위해서는 다량의 물이 필요했다. 그것이 폭식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은 적당한 친구를 만들고 소톻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것이 해결책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제대로된 해결책을 선택하지 못했고 임시방편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억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음식으로 꾸역꾸역 누르는 것이다. 하지만 고립되어있는 상황은 여전했으므로, 외로움이라는 불씨는 어느새 또 다시 사라났고, 물을 계속 붓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대학 생활을 하고, 동아리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의도했든 아니든 사람들과 만나게 됐다. 나는 그때도 내가 외롭다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였다. 의식하지 못하는 갈망만 있을 뿐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과정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대인관계는 "그 사람 마음에 드는 것" 이 전부였다.  서로 상호작용하는 거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상대방 마음에 드는것에 급급했다. 사람들 맞추는데 신경썼으므로 나는 사람을 만나고나면 만족하지 못하고 피곤한 상태가 됐다. 사람들 맞추기에만 신경쓰니까 당연한 거였다. 사람을 만나도 피곤하고, 만나지 않으면 외로운 그런 상태가 지속되서 괴로워했다. 


사람을 만나보니 알겠더라. 


외로움도 사실이고 어디 사회에 속하고 싶은 마음도 정상이고, 친해지고 싶은 것도 정상이고 심심한 것도 정상이더라. 내 욕구가 당연한 것이고 그런 욕구를 채우는 것이 이상한 것도 아니더라. 

친해지려면, 나 자신이 바로 서야 되더라. 나 자신이 하고 싶은것 하기 싫은것 정도도 당연히 이해하고, 상대방도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있다는 것 이해하는게 필요하다는 걸. 단순히 외모가 어떻다는게 문제가 아니더라. 


꽤 나쁠 것 없는 삶.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나는 느꼈다. 나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현재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도 느꼈다. 더 이상 타인이 부재해서 생기는 외로움은 없었다. 그러자 왜 그동안 나는 삶을 그토록 저주하고 비관해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는 삶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했다.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살아왔다. 나쁠 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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