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제일 심했던 때를 꼽자면 20살 여름방학이었다.
나는 그때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잠이들지도 못했다. 먹을 의욕이 없었다. 잠이 들지도 않았다. 하루하루 미쳐가는 것 같았다.
순간순간 고통스러워서 고통을 잊기 위해서 무작정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매일 하루 4시간 이상을 걸었다.
2학기에 복학하고 나자 나는 살이 쏙 빠져 있어서 학과 아이들을 놀라게 했다. 차도에 뛰어들고 싶었고 바닷물에 뛰어들고 싶었다.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나를 치고 가길 바랐다.
적극적으로 죽을 용기는 없었다. 불안해서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신경을 책이나 다른 매체에 돌려보려고 해도 돌려지지 않았다.그렇게 즐겨 읽던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난독증이라도 걸린건가 싶어 난독증 관련 책을 사기도 했다. (난독증인데 난독증 책을 사서 해결하려했디니!)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생지옥이었다. 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져있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드래곤볼에서 말하는 시간과 정신의 방이란게 이런게 아닐까.
내가 해야할 일 , 내가 하고 싶은 일, 앞으로의 계획 등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수업이 다끝나면 나는 집에 가는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집에들어가면 뭐가 달라지는건지 의아했다. 집에 왜 가야하는지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것도 이상했다. 집에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엄마는 나에게 무관심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가서 누워 있는 것도 싫었다. 잠이 드는 행위도 싫었다.
혼자 있는 것을 즐겼던 것도 아니었다. 혼자 있으면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사면초가였다. 어디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런 나를 잊는 것이었다. 다른 장소, 다른 환경 내일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하기 등
주의를 나에게서 옮겨 다른 사람들에게 집중했다. 나는 늘 집중하고 신경쓸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무작정 교회 모임에 나갔다. 교회사람들에게 신경쓰면서 살았다.
교회사람들이 주는 관심과 친밀함을 집중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오롯이 나혼자 있는 순간이 되면, 나는 밀려오는 고통과 슬픔과 우울과 무기력함에 비명을 질렀다.
아침이 되면 녹초가 되어 일어날 힘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바늘로 나를 콕콕 찌르는거처럼 한순간도 이 땅에 발을 붙이기가 싫었고 숨을 쉴 때마다 폐에 가시가 들어가는 기분이라서
신경을 다른데 돌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정도로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며 살았고 다른 사람들 속에 나의 구원자가 있기를 바라며 살아갔다.
그 가운데서 너를 만났다. 너는 밝고 장난치기를 좋아했고 늘 놀고 싶어했다. 돈을 벌지 않는 시간이면 사람들과 어울려서 무언가를 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나에게 장난치기를 좋아했고 나도 그 장난을 곧잘 받아주었다. 외로움과 외로움이 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나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사귀게 됐다. 나는 믿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있는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그래서 신뢰를 해서 내가 건넨 말은 이거였다.
“죽고 싶어.”
반복되는 내 말에 그는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다. 그당시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몰랐다. 지금 와서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랑 있는 시간을 즐거워하지 않고 죽고싶어 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나는 배신감이 들거 같다. 왜 나랑 같이 있어주려 하지 않는 거야. 섭섭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부정적인 감정을 그에게 토해냈다. 아, 그래도 그는 나를 사랑해주었다. 나를 아껴주었다. 넌 몰랐겠지만 난 그당시 너무 아픈 사람이었다. 그래서 너를 사랑하지 않은게 아니라, 사랑을 할 수 없는 마음 상태였다. 그래서 미안해.
나는 그와 함께 놀러다니면서 점차 희망이라는 마음을 품었던것 같다. 자존감도 높아지고 나 자신을 조금씩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하나 따라하기 시작했다. 나를 사랑하는 걸 말이다.
나는 점차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학교에서 시나리오 수업을 받았다. 수업은 너무나 재밌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글쓰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엇다. 재밌었다. 교수님은 내 글을 읽고, 글쓰는게 재밌냐고 대뜸 말했다. 나는 그말이 좋았다. 내 글에서 내가 즐기고 있다는게 느껴지다니. 그런 마음이 전해지다니. 너무나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글을 통해서 나를 만들어갔고, 글을 써서 새로운 세상에 닿기를 원했다. 점차 나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자 해야할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으니깐 공모전을 찾아다녔고 글을 어떻게 하면 잘쓸지 책을 살펴보았다. 카페에 가서 집중해서 글을 썼다. 다음날 글쓰기 위해서 잠을 잤고, 밥을 먹었다.
살아있어야 하니깐, 돈을 벌러 다녔다. 하루 스케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이어리를 샀다. 다이어리에 잠자는 시간을 표시했다. 일하는 시간도 표시했다. 밥먹는 시간을 칠하고 나면 남는 시간이 생겼다.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 시간을 위해 살아남은 것이다. 하루가 생기고 일주일이 생겨났다. 한달이 생겨났다. 다음 공모전이라는 걸 위해, 미래라는 게 생겨났다.
그렇게 버텼다. 그렇게 삶을 살아왔다.
직장에 다니고 돈이란 걸 벌면서 생활이 여유로워질때쯤 나는 내 어깨에 짐이 덜어진 기분이 들었고 동시에 멍해졌다. 폭식과 구토는 멈춰지지 않았다. 나는 이대로 가단 정말 살이 너무 찔거같아서
(건강이 걱정된게 아니라 외관이 걱정되서) 섭식장애병원을 갔다. 그 병원에서 이 폭식의 원인을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나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약을 먹기 시작했고 상담을 했다.
언제 먹고 싶어지냐, 어떨 때 먹게 되냐부터 이런 감정이 들때는 그런 감정을 그대로 느껴보라는 것. 그리고 그감정과 그 일과 폭식은 아무 논리적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인식했다.
치료를 하는 중에 코로나가 왔고, 거리가 있어서 그 병원 방문이 어려웠다. 코로나때문에 우울증이 심각해졌다. 한의원을 찾아갔다. 침치료와 한방치료를 했다. 하지만 차도가 보이지 않아 다시 다른 병원을 갔다. 약물 치료를 1년정도 했다. 그래도 폭식과 구토는 여전했다.
나에게 밀려오는 부정적 감정이 우울증 때문이라고 인식한것은 불과 작년이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 같은데 난 우울했고 외로웠고 죽고 싶었다. 그제야 나는 이게 병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할수 없는 일이라는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약물을 먹고 폭식과 구토를 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폭식과 구토를 정말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뭐라고 해도 소용이없다. 집에 엄마가 있어도 폭식과 구토를 했다. 나는 더이상 안될 것 같아 게스트하우스를 예약 해버렸다. 4인실에 있으면 좀 괜찮지 않을까. 내 집이 아니니깐 배달도 못시킬거고, 구토도 못하겠지. 그런 기대로 말이다.
나의 삶은 우울증과의 싸움이었다. 내 삶이 우울증으로 점철되어있었다는게 슬프기도 하고, 허무하기도하다. 같은 시간 다른 사람들은 이것저것해놨다면 나는 우울증으로 병원비로 약값으로 폭식으로 인한 음식값으로 돈을 허공에 뿌려댔고 ..건강도 망치고 …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낸게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냐싶다. 이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때의 감정과 기분 생각을 세세히 떠올려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버텨오는지를 기록하는 일이 또 다른 아픈 누군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것이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의 목표 중에 하나는 우울증 완치였다. 아직 완치까지는 멀어보이네.
2022년은 정말로 꼭 완치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