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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Feb 09. 2022

우울증 일기 42. 가난함


12살이 되기전까지는 물질적인 어려움을 몰랐다. 아버지는 직장을 다니셨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셨다. 아버지는 배에서 조리장 일을 하셨다. 우리는 아버지가 벌어오는 월급으로 생활했다. 그 시절 난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딱히 주변 친구들과 무언가가 비교되거나 하지 않았다. 좋은 옷을 입거나 좋은 장난감을 가진다거나 좋은 책가방을 가지고 있는 그런 아이들은 드물었다. 있다고 해도 그런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이 없었다. 나에게 돈이란 간식거리 사먹을 수 있는 동전 몇 푼의 의미였다. 


12살 가을에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아버지는 소통이 잘 안되시는 분이었다. 여러가지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분이셨다. 그밖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다. 어머니는 고민 끝에 이혼을 결정하셨다.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결혼한 어머니는 딱히 사회 경험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마땅히 없었다. 그런 어머니가 자식 둘을 맡아서 혼자 키워갔다. 아버지는 양육비를 제때 챙겨주지 않았다. 배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일년에 두 어번, 이삼백만원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별다르게 돈을 벌 방법을 찾지 못한 어머니는 국가의 도움을 받았다. 사화에서 만들어낸 구제제도를 이용한 것이다. 엄마는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고 국가의 지원금을 받아 생활했고 국가에서 알선해주는 일자리에 나갔다. 내가 고등학생때  어머니의 수입은 70만원. 그것으로 세 식구가 생활했다. 한 달에 한번 시켜먹는 치킨이 우리 가족의 외식이었다. 

대학교가 되어 친구들을 사귀면서, 그 아이들이 일주일에 치킨을 먹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라는 걸 안 순간 난 혼란에 빠져야 했다. 


고등학교때까지 학교에 경제적으로 기초수급자 관련 서류를 내야할 때면 난 부끄러웠다. 선생님들은 내 처지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을 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야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될거야. 그래서 무시당하지 않을거야. 이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야. 


하지만 고등학교 공부는 어려웠고 성적은 떨어졌다. 중학교때까지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었다. 고등학생의 학원비는 너무 비쌌다. 30만원이 넘었다. 우리 생활비의 절반이다. 혼자 공부하기로 해보았지만 나는 감정을 컨트롤하기 어려웠고 불안에 잠식당했다. 외로움과 불안과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나의 가난함은 시시하다. 별 다른 반전은 없다. 

가난했던 한 사람이 힘든 시절을 이겨내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도 하고. 덕분에 좋은 대학에 입학해 성공했다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야지 했다. 하지만 난 그런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다. 대학교 학비는 국가에서 해결해준 덕분에 다닐 수 있었다. 감사해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하면 됐었던 것이었는데 그 시절 나는 가장 우울했다. 늘 죽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살았고 땅바닥에 누워서 무기력하게 있었고 아무일도 하지 못했다. 조금 힘을 내서 일어나보려고 해도 다시 무너지기 일쑤였다. 대인기피증, 우울증, 폭식증 그것들로 인해 아르바이트를 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대학교 시절도 난 가난하게 보내야했다. 점심 값이 아까워서 굶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의 마음은 너덜너덜하고 아팠고 용기도 없었다. 이 긴 터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도 난 알아차려줄 수가 없었다. 울기만 했다. 삶은 나를 배반하고 나를 외롭게 했다. 지독한 고통이 몰려왔다. 고통 가득한 삶을 위해서 내가 노력을 한다는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더 이상 용기내기도 싫었다. 


가난은 내 마음 속의 커다란 상처다. 가난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살고 싶었다. 가난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다. 하지만 생활이 어려웠던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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