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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Feb 06. 2022

우울증 일기 41. 뭐가 그리 심각해


난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무기력'하게 되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경우 밖에 없었다. 원래 주말 계획은 가득했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무엇을 공부해야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 그림과 글을 연습하는 시간을 계획했다. 그 다음 운동도 해야되서 산책하는 시간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언제나 실패로 돌아갔다. 금요일 밤 혼자서 다량의 폭식을 하고, 몸에 힘이 없어진 채로 나를 자책하며 땅바닥에 누워 있게 되는 주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럴때면 세상이 다 싫고 멀어지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특별히 뭔가를 하고 있는건 아니었다. 이건 계획에 있었던 것이었다. 특별히 뭔가 하지는 않기가 내 주말계획이었다. 그러자 의식이 분명히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느긋한 상태를 즐기고 있었다. 보통의 나라면 뭘 해야할지 몰라 불안해 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공부를 하면서도 이게 맞는지 혼란스러워서 집중하지 못한 채 아무것도 못하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오늘 하루 내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회사에 짤리는 것도 아니고 수입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돈이 휙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간관계가 갑자기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뭔가 사소한 거 하나가 어떤 큰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는 생각이 잘못됐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삶을 이어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또 다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뭘 어떻게 살아야하는걸까?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인생에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게 정신건강에 좋은걸까? 


내 병의 원인은 내가 삶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매 순간 심각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좋았던 순간도 나빴던 순간도 다 기억하고 있다. 좋았던 순간은 소중해서 추억으로 어떻게든 담아내고 싶었고 나빴던 순간도 상처가 되어 마음에 남았다. 그게 다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삶이 나에게 주는 것들, 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난 진지하게 임했다. 


근데 오늘은 그게 내 실수였던거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 억울했다. 진지했는데, 신이 주신 삶을 소중하게 여겼을 뿐인데 진심으로 응했을 뿐인데. 그게 오히려 나를 낙담하게 하고, 삶에 환멸과 무의미함을 느끼는 지경까지 되게 하다니. 주신 삶에 의미 있을거라며 믿었고 가치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건지 항상 질문하며 살았다. 


"뭐가 그리 심각한거야? 그냥 살아 있으니까 사는거지."


내 질문에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 말에 화가 났다. 너무 가볍게 여기는거 아냐?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애들이 맞는거 같아. 


적어도 오래 생존하려면, '살아 있으니까 사는거지' 라는 태도가 필요해보였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건강이 무너져 빨리 이 생을 하직할 것 같았다. 


그게 나는 너무나 아이러니 했다. 나는 진지했는데,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열심히 살려고 나를 채찍질했는데. 마치 모범생처럼 숙제란 숙제는 모두 해오고, 아이들과 노는 것보단 선생님 말씀을 잘듣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근데 오히려 대충 살아야 생존하기 쉽다라니! 


인생을 하나의 농담으로 여겨야했었다. 일어나는 일들 모두를 농담처럼 가볍게 여겼어야 했다. 난 너무 진지했다.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던 것일 수도 있다. 다 움켜쥐고 싶어했던 것일 수도 있다. 화목하고 풍족한 가정, 다정하고 재밌는 친구들, 뛰어난 학업과 멋진 외모를 가진 삶! 인생에 꿀 수 있는 꿈들은 다 꾼 것일 수도 있다. 다 가지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나는 크게 좌절한 했겠지. 


내뜻대로 되지 않으면 받아들일 줄도 알았어야 했는데,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계속 거부했지.

그래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은 다른 의미로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모습을 반영하는 걸거다.  


가볍게 여기면서 적응을 했어야 했던 일인데, 나는 너무 진지했던 것 같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아. 열심히 하면 이를 악물고 악을 바락바락 쓰면 될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이제 다 내려놓을려고. 

그냥 하나의 농담으로 여기려고.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왜 내려놓는데? 

 - 살아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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