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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Feb 01. 2022

우울증 일기 40. 살고 싶어


체한 건가 싶었다. 이틀을 끙끙대며 앓아누웠다. 


오래간만에 무서웠다. 


위가 너무 아픈데 난 위암으로 죽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렬히 들었다. 10년을 넘게 폭식하고 구토를 해왔는데, 위가 멀쩡할까 싶었다. 


오래간만에 죽는 게 무서웠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봐야하는데 이러다 죽는 건가 싶었다. 불현듯 나에게 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 게 놀라웠다. 그게 새로운 사람이나 취미인건 아니다. 


늘 하고 있었고 늘 생각해왔던 ‘글쓰기’였다. 그렇다고 글쓰기에 대성공한 것도 아니다. 내가 쓴 장르소설에 대해서 다량의 피드백이 왔다. 한편 내가 제안한 아이템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기도 했다. 완전 좋은 것도 아니고 완전히 나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보다. 더 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나보다. 너무 행복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게 너무 좋았다. 예전의 나라면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꼭 하고 싶다. 글을 쓰기 위해서 시간을 다시 벌고 싶었고 돈을 벌어서 생활을, 삶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자 죽기 싫었다. 죽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한동안 나는 아픔에 무뎠다. 그렇게 무뎠으니깐 스스로 상처내도 된다고 생각했지. 먹고 또 먹고 게워내고 위가 아파도 식도가 아파도 목에서 피가 나도 아무렇지 않게 무정하게 무자비하게 이 짓을 반복했지 


하지만 지금은 몸을 일으켜 어떻게든 책을 찾고 싶었고 연구 하고 싶었고 레퍼런스를 찾고 싶었고 어떻게 기술을 쌓아갈지 생각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것이, 내가 상상한 것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큼이나 재밌는 게 없었다. 나는 이런 일을 원했던 것이다. 그전에는 할 수 없을거라고 단정 지었다. 그래서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아파서 그릴 수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미래를 그리지 못해서 아팠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지금의 나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꿈만 있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해서 내가 살고 싶다고 생각이 든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전에도 늘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독한 외로움이 나를 괴롭혔다. 이 일을 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할까? 나는 여전히 늘 외로울텐데. 그런 생각들이 나에게 매일같이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람은 많고 어떻게든 어울릴 수 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변하지 않으며, 잠시 놀고 지나갈 사람들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자 더 이상 심각하게 외롭지는 않았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살아있고 싶었다. 


살아서 아침 해를 맞이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수다를 떨고,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퇴근해서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주말에는 드라이브를 가고.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오후 햇빛을 만끽 하고, 봄에는 흩날리는 벚꽃을 보고 여름에는 광안리에 가서 바다를 실컷 보고 가을에는 공원에 가서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겨울에는 신나는 눈썰매를 타고 


살아서. 살아서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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