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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Jan 27. 2022

우울증 일기 39. 내가 건강할 때


태어나서부터 내가 우울했던 건 아닐거다. 나는 내가 건강할 때를 떠올려 보았다. 까마득했다.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면서 우울해 하는 일 없이, 삼시세끼 잘 챙겨먹고, 과식하는 일 없이, 구토하는 일 없이, 밤에 불을 끄고 편안히 잠들던 때가 언제였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일단 20대와 30대는 아니었다. 10대시절로 돌아가야한다. 고등학교 때는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보냈으므로 그때도 아니다. 

아마도 중학교 때까지는 난 그렇게 우울에 빠져 살지는 않았고, 오히려 계획적이고 규칙적으로 살았다. 


초등학교때부터 난 성실한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는 빠짐없이 다 해갔다. 부모의 도움을 받은 적도 없다, 스스로 숙제를 해갔다.      

선생님이 가져오라고 한 준비물은 알림장에 꾹꾹 눌러써서 밤에 잠들기 전 가방을 챙기며 거듭 확인했다.      

숙제도 완벽했고 준비물도 완벽했다.      

게다가 시간 관리도 잘했다. 해야할 일부터 먼저 했고 그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늘 숙제나 시험공부 부터 먼저 하고 난 후 다른 것들을 했다.  책을 읽거나 TV로 만화나 드라마를 보는 등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책상에만 앉아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교 후 아이들과 곧잘 어울려서 동네 일대를 쏘다니며 놀았다.      

매일 아침 같이 등교하는 친구가 있었고 학원이나 어딘가를 가도 혼자가 되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노는것에도 즐거움을 느꼈다.      

학원은 스스로 갔다. 피아노 미술 컴퓨터 수학과 영어를 배우는 학원 한자 속독 등등 학원이나 방과후 프로그램 등 다양하게 했다 부모가 하라고 해서 한 적은 없다.     

내가 스스로 흥미를 느껴서 하고 싶다고 한 것이었다. 물론 모든 영역에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배우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었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난 후 가뿐하게 숙제를 하고 책이나 TV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 아침 해가 뜨는 것이 당연했고 그것이 싫다고 느낀 적이 없으며 만족스럽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외로움에 허덕이지도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당연했고 자연스러웠으며,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다. 무의미하다거나 왜 해야하는건가 라던가. 또 다시 시작되는 하루가 지겹다던가. 내일이 무섭다던가.  

그런 생각과 감정은 몰랐던 때였다.     


아니 이렇게 건강할 때가 있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되어 버린거지?


그렇게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았했던 네가 왜 혼자 있는 걸까? 

왜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걸까. 

아이들과 어울리기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 시간에 공부를 해야할 것 같았다. 놀면 안될 것 같았다. 또 돈도 쓰면 안될 것 같았다. 왜? 

우리집은 가난하니깐  

돈이없어서 나에게만 미래가 없어서 그걸 대비하기 위해 생산적인 일을 계속 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래서 불편해서 혼자가 되는 걸 선택했더니 외롭더라. 혼자가 됐다는 게 또 다시 상처가 되어서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자신이 없고 겁이나는데, 도망치고 싶어서 도망쳤는데, 도망쳐서 집에 혼자 있으면 두려움은 가실진 몰라도 외로움이 찾아왔다. 


난 자존감이 낮아졌다. 가정형편과 내 외모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급기야 사람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 불편함을 피하고 싶어 혼자되는 것을 택했다. 처음에는 편했다가 혼자라는 외로움이 계속되자 온몸이 시려웠다.


혼자 사는 세상이 계속되자 하루하루 슬프고 우울했다. 삶의 의미가 사라졌다. 


무언가를 하는 것에 어떠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야하는 이유도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내일 아침을 위해 잠을 자야하는데, 그 내일 아침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라는 허무함이 찾아오자 잠자는 것도 싫었다. 


모든 것이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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