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극도로 심한 때는 20살때였다.
참 그래서 그 때가 아쉽다. 다른 아이들이 답답한 고등학교 생활을 벗어나 이제 막 장밋빛 인생을 그리고 있을 때 나는 우울했다. 외모를 꾸미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알바를 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학과 아이들과 친해지고 동아리 활동도 하던 시기에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기력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었다. 그 사람들이 싫은 것이 아니라 내가 싫었다. 나는 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은 나를 싫어할거라고 생각했다.
첫 신입회 환영회때, 가만히 아무말도 못하는 나에게 어떤 선배가 말을 걸어왔다. 그 선배가 왜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냐고 하니깐 나는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이랑 어울리기 싫어요."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발언이다. 나는 겁이 없었던건지 정말 사회성이 떨어졌던 것인지 대선배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이랑 안어울리고 싶어도 어울리는 게 사회생활인 것을. 하지만 난 중고등학교를 혼자 공부만 하면서 지내왔고 안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같이 지내지 않았다. 그래서 맞춰주는 법도 몰랐고 맞춰가는 법도 몰랐다.
그렇게 첫 신입생 환영회에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가만히 있어야 했다.
내가 사회성이 있냐 없냐의 문제를 떠나, 일단 나는 나의 우울함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했다. 어울릴 의사가 없었고 사람들이 무섭기만 했다. 무기력한 증세가 심해서 걸핏하면 지각하거나 결석했다. 늘 지각하고 수업에 참여도 안하고. 아무말도 안하고 내성적으로 있는 아이를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2학년때는 그래도 어찌 마음을 추스려서 학교 생활에 적응해보려고 했다. 동기들이 어울리는 술자리에도 한 번 끼어보았다. 그 자리에 있던 친구가 술이 좀 취해서 말했다.
"너는 우리가 싫니?"
왜 같이 안노는건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아이의 관심과 아쉬움이. 고맙기도하고 퍽이나 슬프기도 했다.
너희가 싫은게 아냐.
나는 그때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나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새학기가 되면 난 늘 설렜다. 봄이 좋아서 그런건지 새로 시작하는 새학기가 좋아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교정에 떨어지는 벚꽃이 좋았고 과잠바를 입고 삼삼오오 모여서 가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난 늘 보면서 한편으로 그들을 부러워했다. 과방에 모여서 같이 과제를 하다가 저녁을 배달시켜 먹는 모습이라던가. 시험이 끝나고 학교 근처 술집에 가서 술을 먹는다던가. 내가 그 속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물론 몇 번은 그 비슷하게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난 계속 병을 앓고 있었고, 지속적으로 어울리지는 못했다.
난 늘 혼자다녔다. 아이들이 학과 수업을 같이 들을 때도 난 혼자였고, 교정을 늘 혼자 걸었다. 밥도 혼자먹거나 혼자 먹는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서 굶거나 해버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더욱 우울해졌다. 세상이 아무도 날 모르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 난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서, 더더욱 난 유령이 된 기분이었다. 이 세상에 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중고등학교 때는 혼자 공부하느라. 대학교 때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느라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 난 현재도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나마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동호회 사람들이 나를 보면 왜 친구가 없냐고 의아하단 듯이 묻는다. 그럴때마다 난 분명한 대답은 하지못하고 멋쩍게 웃으며 얼버무린다.
그냥, 그렇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