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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Jan 20. 2022

우울증 일기 37. 두려움


"그정도면 누구나 힘들 수 있는거지!" 


엄마와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난 후에, 내 머릿속에는 이 말이 맴돌았다. 


내가 그토록 힘들어하고 어려워했던 문제들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가벼운' 문제처럼 취급받아서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화가 나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머리를 한대 맞는 느낌도 들었다. 화가 난 이유는 내가 심각하게 생각해온 문제가  폄하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쁜 거였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은 이유는, 내가 어렵게 보았던 문제가 누군가에게는 쉽고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고민했던 문제가, 사실 고민할 가치가 없는 문제 일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것이 날 충격받게 했다. 


우울하고, 문제가 어렵게 보이고, 난 아무것도 안될 것 같고 망한 것 같고 그렇게 느껴지는 게 이 병이다. 안경에 푸른 필름이 덧붙여 져서 세상이 다 푸르게만 보이는 병. 우울이라는 필터가 씌어져 쉽게 지나갈만한 일도 어려워보이고 슬퍼지는 병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우울증이었던건가 싶긴 하다. 유년시절에 친구 한 명과 다툰 적이 있는데 그 친구와 싸우고 나자 세상이 온통 내 적이 된 것 같았고, 날 비난할 것 같아 극도의 불안을 겪었다. 그 아이의 부모가 찾아와 나를 혼내는 상상도 했다. 아이들이 나를 외면할거라는 생각도 했다. 


아아, 나는 그저 내가 상상력이 많은 줄 알았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상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대학교에 원하는 학과에 가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퇴직한다고 했을 때는 길거리에 나앉는 상상을 했다. 내가 우울해하자 동생은 지금 당장 거지가 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우울해하냐며 타박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을때, 나는 아무 근거없이 내가 회사에서 짤릴 거라고 생각했다. 코로나에 걸려서 회사에 못나오고 회사는 나를 헌신짝 취급하듯이 버리겠지. 몇주간 불안했고 먹고 사는 일이 무서워졌다. 안되겠다 싶어 다른 회사 경리로 취직하려고 회계 자격증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코로나에 걸리지도 않았고 잘리지도 않아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결국 나의 두려움 덕분에 자격증 하나가 더 생기긴 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난 정말 극단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두려웅은 나의 원동력이었다. 시험 전에 "하나 틀리면 어떡하지. 뭐 하나 어떡하지. " 이런 걱정으로 교과서를 몇 번 더 보게 만들어주었고, "가난해서 어떡하지. 먹고 살려면 공부를 해야해" 라는 두려움으로 책상 앞에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과 불안이 이제는 나를 집어 삼킨 것 같았다. 긍정적인기만 한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은 대책을 생각하게 해주는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여도 얼마 가지 못했다. 두려움 때문에 안될거라는 생각이 몰려와서, 나는 쉽게 낙담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 문제였다. 해결책이 있는 문제들이었고, 묵묵히 그 해결책을 실천하면 해결될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렵게 바라보고 안될거라 지레 포기했으며 겁을 먹었다. 안되고 실패할거라는 상상이 자동적으로 됐고 (내가 미리 확신해버린) 실패에 상처 받기 싫었다. 


무언가 호르몬의 문제로서,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게 있을거고 그거는 약을 먹으면서 치료가 되겠지만. 약을 먹으면서도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드는건, 아마도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것 같다. 나는 상담을 통해서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상담사가 수용하기도 하고 태클을 걸기도 한다. 태클은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었다. 상담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생각을 바로잡는 행위. 


엄마의 말 대로, 내 문제가 별 문제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파왔던 것은 분명 사실이고, 힘들었던 순간이었던건 맞지만... 그게 못살 이유까지 되겠니?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게 살지 않아야할 이유가 될만할까? 너는 그 시간동안 웃고 즐기고 사랑했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을거잖아. 


살지 못할 이유까진 아니었던 것 같아. 


드디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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