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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Jan 17. 2022

우울증 일기 36. 호소



"밤에 뭘 그리 먹냐?"


새벽사이에 음식을 배달 시켜 먹는 나를 보고 엄마가 한 소리 했다. 


"그렇게 토하다가 몸 다상한다."


화장실에서 켁켁 거리고 나오는 나를 보며 엄마가 혼내듯한 말투로 말했다.


"왜 그러는건데 대체?"

"우울증 떄문이야."


나는 사실 엄마에게 말하기 싫었다. 우울증 떄문이든 뭐든 간에 나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 엄마에게 말하기 싫었다. 엄마는 분명히 관심없이 무신경한 투로 퉁명스럽게 말할 것이고 그러면 난 상처 받을게 뻔했다. 한편 나는 실날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엄마는 유튜브도 많이 보고 여러가지 매체를 많이 접하는 사람이라 혹시나 우울증에 대해 이해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조금의 기대를 한 것이다. 


"그거 의지 문제 아니야? 그리고 너무 노력 안하는거 아니야?"


하지만 엄마는 내가 상상하는 최악의 반응을 했다. 나는 더 이상 말하기 싫었다. 나는 다리가 부러져서 아픈 것과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그것과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그래, 그 의지! 의지로 고통을 참고, 걸을 수는 있어도 아프지 않아지는게 아니란 말이다. 병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의사중 한 분은 내가 의지가 굉장한거라고 했다. 극도의 우울을 앓으면서 일상 생활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꿈을 향해 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나는 그 말이 떠오르자 의사보다 날 이해를 못하는 엄마가 야속했고 지금까지고 고군분투한 내 노력이 무시 당하자 억울했다. 


"엄마가 대체 나에 대해 무얼 안다고.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오는건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악에 바쳐 말했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엄마에게 힘든 일을 말해본 적이 없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얘기할 때마다 내 감정은 무시당했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힘든게 당연하고, 공부를 하다보면 어려운 걸 만나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엄마는 너무나 어른인 엄마 시점에서만 생각하고 나에게 말을 했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니?'


나는 처음 겪는 일이었고 인생에서 맞이하는 끔찍한 고통이었고 이것을 잘 다루고 해결해 줄 어른이 필요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그런 엄마면서! 지금 이순간 이렇게 나에게 훈계를 하고 노력을 운운하고 의지를 입에 담는 것이 기가 차고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서 무슨 생각이 드는데?"

"살기 싫다고.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별 볼일 없다고 느껴지고 숨쉬는 것도 싫고 하루하루 매초 시간이 흐르는것도 진절머리나! " 

"뭐때문에 그렇게 된건데?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못생기고 집도 가난하고 부모는 이혼했지, 친구도 없고 돈도 없고!"

"그만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문제지!" 


난 기가 찼다. 대체 말싸움을 하자는건가? 논리 싸움에서 이기고 싶은건가? 이 사람의 의도가 난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건 내가 느끼는 부분이고 감정은 주관적인거고 그걸 슬프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덜 슬프게 느끼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도 아프다고 해서 내 아픔이 사라지는건 아니잖아!"  


나는 항변했다.


엄마의 의도는 안다. 엄마가 내가 나아지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런 말을 꺼냈다는건 알지만 너무나 예상 그대로 퉁명스럽게 말했고, 나의 의지와 노력을 운운하는 레퍼토리를 이야기하자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차라리 그냥 못본 척 해주고. 아무말도 하지 말아줘. 그게 도와주는거야.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 마음에 담아뒀던 상처를 별문제 아닌거처럼 여기는 태도가 너무 경멸스러웠다. 자기 잣대에서 판단했을 때 별 볼일 아닌 거 같아도 그게 사람마다 어느 시기에 어떻게 닥쳐왔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닌가. 

나는 바락바락 엄마 잣대로 나를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이건 내 기분이고 내 느낌이니까! 


사실 내가 이렇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겪을 까봐여서다. 

우울증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이 상황에 대해서 우울증 환우를 배려하는 말을 했으면 좋겠다. 


우울증에 걸린 채 살아간다는건 부러진 다리를 이끌고 산을 오르는 일처럼 느껴진다.  한 쪽 다리 뼈가 산산조각이 나서 가만히 놔둬도 아픈데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걸을 때마다 아프다. 한 발짝 디딜때마다 아프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걷는 길을 걸어도 아프다. 훨씬 더 아프게 느껴진다. 단순히 민감한게 아니라, 성정이 그런게 아니라, 본질이 그런게 아니라, 


다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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