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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Feb 11. 2022

우울증 일기 43. 중학생 때를 그리며


2016년 8월 13일 난, 토익시험을 치기 위해 부산의 모 중학교를 방문했다.  


시험을 치러온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굉장히 여유로웠다. 다들 책상 위에 한가득 펼쳐놓고 마지막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필통이랑 신분증 하나 떡 올려놓고는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시험에 만반의 대비를 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서였다. 토익 공부 해야한다 노래를 부르고, 일명 빨갱이 파랭이로 불리는 모 토익 입문서 책을 사 놓은 지 2년이 넘어가는 데 말이다. 2014년에 책을 사서, 2014년 12월에서 2015년 2월까지 꾸준히 공부하는가 싶다가, 이 핑계 저 핑계로 덮어두었다.

이렇게 준비가 안됐던 난 그저 천천히 교실을 관찰 했다. 중학교에 온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딱딱 정해진 시간표와 입시 준비를 위해 매일같이 달려 오던 그때의 기억은 거의 사라졌었는데. 이 교실에 들어온 순간 잠재웠던 기억들이 다시 들어왔다.


시간표를 붙여둔 책상. 낙서. 앞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의자 받침대. 게시판에 나온 시험일정이라든가. 공지사항들. 시험 치기 위해 일렬로 줄을 맞춘 책상. 감독 선생님이 들어오고 시험에 임하는 응시자 수를 칠판에 적었다. 그리고 조용한 교실 속에 앉아 있는 나.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던 중학교 시절. 평일은 학교 숙제, 학원 숙제 공부를 하는 날로 딱 정해놓고 주말에는 열심히 만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던 나. 그 시간을 딱딱 정해놓고 공부했고. 한번도 하기 싫은 마음이 든 적이 없었다. 시험기간에는 모든 걸 제쳐두고 알아서 시험공부에 열중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열중하는 데는 별 무리 없었다. 제일 싼 레쓰비 커피를 마시면서 밤을 지새워도 싫고 귀찮은 마음에서 하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시험 당일 그 일렬로 배치한 책상에 앉았고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 있거나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복습했다. 시험관이 들어오고 교과서도 다 집어 넣으라고 하고 문제지를 배부 받는다. 그 순간 문제지와 OMR카드는 드디어 나의 실력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때,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전교 등수가 나왔다. 어째서인지 그 때 나의 머리를 뎅- 하고 크게 울렸던 생각이 있었다.

‘내가 공부한 것들은 다 무슨 의미인 거지?’

내가 공부했던 것들이 모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고등학교 입학 후 공부에 점점 집중하지 못하고 야간자율 학습 때 책을 읽었다. 공부가 하기 싫었다. 시험공부를 할 때면 원래는 기본 두 세 번은 다 보고 기출문제 풀며 복습을 해놨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기보단 하기 싫어서 자꾸 미뤄댔다. 평일에도 미드를 보거나 만화를 보았다.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었다. 최대한 미루고 싶어서, 집중할 수 없어서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책을 읽으며 공상을 하는 시간을 보냈다. 스트레스와 압박이 계속됐는지 속이 좋지 않는 등 소화장애에 시달려 항상 가스로 빵빵해진 배에 고통스러워했다.

이렇게 고등학교 시기는 전교 30등을 웃돌았고 ‘시험’은 더 이상 나를 위한 무대가 아니었다. 고통의 장이었다. 미래에는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로 인한 불안감은 커져갔었다.

여차저차 우여곡절 끝에 목표했던 대학교에는 입학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 들어보는 학과. 애초에 가고자 했던 학과도 아니어서 나는 적응할 수 없었다. 꾸역꾸역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둥 하다가 1년 정도를 휴학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용기내어 시작하게 됐고 나는 점차 세상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의식은 자라나는 것 같았다. 그러자 깨달았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아무것도 준비돼있지 않았던 것. 재미있는 시나리오 수업. 나의 적성에 대한 생각. 돈을 벌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등등. 듣고 집중하면 할수록 넓어지는 세상의 세계. 그동안 내가 몰랐던 것들. 간과했던 것들까지도. 모든 게 입력되기 시작하니까 나는 혼란스러웠고 무엇이 맞는 것인지 어려웠다. 나는 글쓰고 싶다는 꿈이 현실화 될 수 있는지 실험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열심히는 하지 못했다. 중학생때처럼 열과 성의를 보이진 못했다. 뭔가 항상 불안했고 집중하지 못했다. 중학교때처럼 딱 할 때 하고, 안 할 때 안했던 그러한 순간들이 없었다.


나는 그때의 기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열심히 열중해서 공부하고, 공부한 만큼의 결과는 맞힌 문제 개수 만큼 나왔다. 성적이 증명했다. 시험은 내가 얼마만큼 열심히 했는지 즉각적을 볼 수 있는 도구였다. 하지만 그런 입시과정을 완전히 떠난 대학생활부터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정리가 되지 않았다. 잘했다, 내가 무언가를 했다라는 결과는 결코 시험결과로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신앙, 인간관계, 대학교 점수, 쌓은 경험 등등 전부다 말이다. 심플하지 않고 답도 없던 것들. 나는 그것들에 휩쓸려 정착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방향도 없이 살아갔던 것 같다.


이제는 인생을 좀 정리하고 내가 가야할 길과 목표치와 공부해야할 범위를 딱 계획적으로 세워서 그것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중학교 중간고사 대비하듯이 말이다. 그 순간만큼은 최선의 집중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스트레스 풀며 보내야되겠다고. 그때만큼이나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이다.


뜨거운 2016년 여름, 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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