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꿈에서 깨어났다.
난 금요일 오후부터 이불에서 뒹굴거리기 시작해서 토요일 하루 종일 이불에 있었다가 일요일이 된 오늘에서야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멍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고 난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왔던 것인지도 감각이 흐려졌다.
하나 느끼는 것은 망망대해에 있다는 것이다. 내 삶을, 내 현재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보라면 폐허로 그릴 것이다.
주위에 누가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희미하게 느껴졌다. 마치 모자이크처리, 블러처리 해놓은것처럼 그 사람들은 희끄무레했다.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의 얼굴도 희끄무레했고, 싸운 이후로 연락이 없는 동생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보았던 친구는 뭘하고 있을까 하는 간단한 생각을 했고 4개월동안 친하게 지내고 있던 친구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이 사람들을 대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혼자 있는 일이 그렇게 괴롭고 외로울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너무나 혼란스럽고 불편하다. 혼자가 너무 편하다. 아무에게도 연락 없는 이 순간이. 누구와도 이야기할 필요 없는 이 순간이 너무 좋다.
지금 우울한 게 아니다. 삶이 좋다. 무언가에 구속받지 않는 기분이고 난 어디로든 어떻게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홀가분하다. 그러니까 내 최종목표가 그냥 ‘살아있기’가 돼버리니까 오늘도 반쯤은 이 목표를 달성한 것 같고 나는 할 일이 없다고 느껴졌다. 물론 게으르게 돼 버렸지만.
그런마당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조심스레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나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내 주변의 있는 사람들은 현재 살아있는 것은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더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무언가를 더 가지려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 사람들의 일상은 어떠한 규칙이 있어 견고한 집같은데 나는 거적데기 하나 걸치고 있는 상황이다. 언제 바스라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집이다. 그래도 나는 만족한다.
그치만 그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사실대로 얘기 헀다간 동정의 눈초리나, 불쌍하다는 연민을 가장한 멸시를 듣게 될 것 같았다. 그게 싫었다. 그래서 당분간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한편 내적인 혼돈 또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는 이유를 더했다. 오늘의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에는 정답이 없어 보이고 일정한 체계도 없어 보이며 규칙도 모르겠다.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차 보인다. 롤이란 게임을 하면 맵이 정글처럼 생겼는데 내 캐릭터 일정 반경을 넘어서면 어두워서 뭐가 뭔가 안보인다. 그럴 때는 시야를 밝혀주는 ‘와드’를 켜놓고는 한다.
이 혼란이 갑작스럽게 온 것이 아니다. 애초에 삶은 혼란이었고 불이 켜지지 않는 상태였다. 그냥 내 주위 반경 밝은 상태에 있는 그 주위에서 맴돌고 사람들 만나고 놀고 먹고 자고 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가끔씩 얘기를 하다가 와드 저 너머의 세상에 대해서 얘기를 하게 되면 대부부은 ‘잘되겠지 뭐’ 라든가 ‘그건 그때가서 생각해보지뭐.’등등 이란 말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들었다. 나는 와드 저 너머의 세계의 어두움에 불안을 떨곤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못했다. 점점 다가오는 어둠이 공포스러웠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비명을 질러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주어진 커리큘럼과 답안지가 가득한 세상이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대학교에서부터 망망대해에 놓인 기분이었다. 혼란에 혼란.
서른 살이 넘은 지금에서도 난 느낀다. 이 혼란을.